엄마의 하루는 내 사흘이야

엄마는 그래도 행복해야지

by 요코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어디선가 인간의 하루는 반려동물의 사흘과 같다는 문구를 읽은 적이 있다.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 출근하는 내 시간은 오전 여덟 시, 회사에서 여덟 시간 근무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또다시 오후 여덟 시.

나는 하루에 반나절만 내 고양이가 없는 공간에서 호박색 눈동자를 생각하면 된다.

내 고양이들은 하루 하고도 반나절 동안 적막 속에서 내 발소리가 들리기만 기다린다.


생각해 보니 기분이 묘했다.

나는 일주일 중 5일만 고양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잠시 집을 비우고, 내 고양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날 10일 동안 기다린다.

세상에 필요도 없는 쓰레기들의 몇십 년을 모아서 내 고양이 인생시계에 적립해 두고 싶다.


나이라는 걸 한두 개씩 먹어가면서 느끼는 점이라고는 갈수록 내 편이 없어진다는 것뿐이다.

머리에 가득 찬 잡생각들을 떨쳐내려고 아무 의미 없는 쇼츠와 릴스를 몇백 개 정도 보고 나면, 그나마 꾸역꾸역 붙잡고 있던 코딱지만 한 지식도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

자극적인 요소 없이는 일 분도 못 버티는 내가 뜨개질을 시작하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한 건 오로지 고양이가 곁에 있어서였다.


고양이와 함께 지내면서 원초적인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인지, 인간에게 더욱 흥미가 없어졌다.

만약 모든 인간관계를 다 끊고 내 고양이들하고만 평생 지낸다면 지금보다 더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요새 그 친구가 심심한가 보다.

최근 들어 종종 놀러 와 자꾸 지칠 때까지 울게 만들어서, 현실도피라는 핑계로 또 과음을 시작했다.

어제는 빈속에 좋아하는 와인을 한 병 비운 뒤 그대로 게워내고, 오늘은 속이 쓰려서 똑바로 서 있지 못했다.


이 개같은 우울 속에서도 인간을 억지로 살아 있게 만드는 고약한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 아이들이 먼저 떠나게 되면 내가 어떻게 살게 될지, 살아갈 수는 있을지 잘 모르겠다.

그전에 과음으로 위에 빵꾸 뚫려 내가 먼저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겠다.



내 고양이는 내가 어디 있든 항상 곁에 있으려고 한다. 가끔은 품에 안긴 채 본인의 행복한 기분을 주체 못 하고 내 온몸을 살짝 깨물기도 한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