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애 상실의 시대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길 원하면서 나만의 사적인 영역은 말하기 싫다.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누구보다 관대하다. 그런 나도 내가 지겨운데 타인은 오죽할까.
왜 모든 인간은 괴로움을 티 내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프라이버시가 중요하다면서 피딱지가 앉은 내 치부를 알아주지 않으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우리는 조금 이해가 안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 이유로 다이빙을 한다는 한강 다리에는, 지금 힘들면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이야기를 들어주겠다는 문장이 적혀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그마저 수화기를 들면 없는 국번이라는 음성이 나온단다.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기에 수화기를 들었는데 내 이야기 같은 건 듣기 싫다는 말을 다시 들어야 하는... 개인주의가 이제 여기저기서 만연한다.
최근 다시 친하게 지내자고 찾아온 그 친구(실제 사람은 아니고 우울이라는 정신 나간 내 감정의 애칭이다)도 사실은 그런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 좀 고장 난 나에게 찾아오면 있잖아... 따위의 인트로에 바로 눈물부터 터뜨리니까.
나만큼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놈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사실 듣지도 않고 호들갑부터 떠는 것 같긴 하지만).
이 친구는 자꾸만 내가 정리되지 않은 글을 업로드하게 만든다. 여러 모로 쓸모없는 놈이다.
외롭기 싫어서 자꾸만 사람을 찾고, 사랑을 하려고 노력하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은가 보다.
누군가의 체온과 가까워질수록, 내 온도가 높아지려고 할 때쯤 갑자기 누가 날 망치로 깨 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극단적으로 차가운 것에 닿으면 오히려 따뜻함을 느낀다고 한다).
이쯤 되면 다른 해결책이 있을까 싶어 짱구를 굴려 봤는데, 돌고 돌아 고양이가 최고라는 결론밖에 못 낸다.
나는 동물우월주의로 가득 찬 인간이다.
어제는 오랜만에 책을 새벽까지 읽었다.
차분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자고 일어나면 하루를 그러려니 하고 보내려고 마음먹었다.
출근하자마자 실패했다.
나만 유별난 건 아니니까, 다들 이러고 사니까 딱히 아쉽진 않았다.
그래도 내 애인만큼은 나를 좀 유별나게 대해 줬으면 했는데, 그 친구 역시 이러고 사는 인간인지라 정신 사나운 하루를 보내느라 바빴다.
그래서 좀 더 속이 상했나 보다.
야근하고 도착한 집에서 나를 온몸으로 반기는 고양이를 보자마자 눈물이 나왔다.
와중에 배가 고파 햇반을 돌리고 설거지를 하면서 엉엉 우는 내가 좀 웃겨서 그냥 더 울었다.
아무래도 2025년 2월의 날씨가 생각보다 너무 추워서,
몇 주 전까지만 해도 8시간 동안 따뜻하던, 애인이 준 핫팩이 오늘은 80분 만에 식어버려서.
햇살을 좋아하는 고양이가 지내는 우리 집도 겨울은 피할 수가 없어서 그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