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just wanna hang around you
극한의 아름다움이나 다정함은 사람을 두렵게 한다.
특히나 다정은 아무리 노력해도 면역이 안 생겨서, 이딴 걸 아예 기본으로 탑재한 인간은 내게 있어서 가장 위험한 아킬레스건이다.
나는 비교적 멘탈이 약한 편이라 사소한 스트레스에도 쉽게 정신을 못 차리는데, 그럴 때 가장 효과적인 약은 술과 영화이다.
나는 약간 재수 없게 보일 수 있는 이상한 영화 취향이 있다. 바로 한국 영화는 절대 안 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10명 중 8명이 재미있다고 하는 영화도 보지 않는다.
아마 여러분들이 다들 알고, 한 번쯤은 봤을 유명한 한국 영화는 다 안 봤을 거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유행에 좀 뒤처지는 나에게 딱히 불만은 없다.
개인적으로 일본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데, 잔잔하면서 가식적인 일본 특유의 냄새가 나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가식은 숨기지 않고 대놓고 드러나게 될 때 오히려 사랑스러워 보인다(그러나 그걸 가식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매국노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제이팝을 듣고 있다.
이상하게 뭐라고 하는지 이해도 안 되는 섬나라 사람들의 음악은 내가 우울할 때마다 마음 놓고 울 수 있게 만든다. 속을 살살 긁어서 울고 싶게 만드는 게 그들만의 위로 방식인가, 싶었다.
특히나 kirinji의 보컬 호리고메 야스유키는 뭔가 계속 한숨을 쉬는 느낌이다. 울음을 참는 건지, 한숨 그 자체로 목소리를 내는 건지 아리송한 느낌이 참 좋다.
그의 馬の骨(말의 뼈)라는 앨범 속 燃え殻(잿더미)라는 곡을 좋아한다. 모든 앨범 중 나에게 있어 가장 다정하게 느껴지는 곡이다.
이를 테면 내가 피가 굳어 생긴 딱쟁이를 뜯고 있을 때, 약을 발라 주는 대신 옆에서 같이 떼 주는, 그런 방식의 위로를 사랑한다.
그의 목소리가 주는 다정함은 내가 원하는 방식의 위로와 흡사해서 가끔 일부러 피를 내 딱쟁이를 만들어 오기도 한다.
극한의 다정함이 주는 위험함이 바로 이런 것이다.
나는 귀차니즘이 정말 심하다. 끈기도 없고, 인내심도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런치라는 플랫폼에서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단순하게도 반강제적으로 꾸준히 글을 쓰면 이런 루저 같은 마인드가 좀 고쳐지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역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더니, 못 본 척 계속해서 업로드를 미루다가 알림 폭탄을 받고 몇 달 만에 다시 키보드 앞에 앉았다.
아무튼 무언가에 쫓기듯 글을 쓰려다 보니 너무 화가 나서 도저히 못 쓰겠다. 예술가들이 왜들 그렇게 정신병에 걸렸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압도적인 힘을 갖고 싶다.
이를 테면 언젠가는 제3외국어로 묘어를 하게 되는 것(아무래도 그들은 세상을 구해야 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들끼리도 말이 안 통하는데, 사실 알고 보면 이미 나는 고양이들의 언어를 할 줄 아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잠깐 하다가 말았다.
오늘 끄적거린 글처럼 이렇게 두서없이 아무 의미 없는 삶을 꾸역꾸역 살아가는 게 좀 지쳐서 정말 솔직하게 당장 이번주 안으로 죽고 싶은데, 아직 못 마셔 본 와인도 많고 집에는 아직 다 못 마신 위스키가 남았고 당장 오늘은 맥주 두 캔 정도 마시면서 좋아하는 일본 영화를 하나 볼 계획이라 안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