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코 Sep 18. 2024

길이 없는데 어떻게 걸어가나요

몇 살을 먹든 지겨운 편 가르기

오늘은 도저히 긍정적인 글을 쓸 기분이 들지 않는다.

지금 적고 있는 이 글이 오히려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줄 수 있을 것 같다.




구구절절 상황을 설명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가출을 감행하고 내 고집으로 밀어붙여 독립했다.

그냥 당시에는 그 방식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이기적으로 생각해서, 내가 살고 싶었다.

안 그래도 끊임없이 쌓이는 스트레스를 온전히 혼자 풀 공간이 필요했다.



2024년의 추석 연휴는 나름 길었다.

연휴 마지막 날, 자취방에 있는 고양이가 신경 쓰여 하룻밤 더 자지 않고 가겠다고 했다.

(물론 본가에 있는 동안은 따로 펫시터분께서 돌봐주셨다)

자취방 근처까지 데려다주신다는 아빠 말에 같이 이야기도 할 겸 알았다고 했다.


괜히 그랬다. 그냥 바로 내려서 갈걸.


아빠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결국 다투고 말았다.

내가 이용하는 펫시터 시스템에 대해 잘 모르시는 아빠 입장에서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사실은 그냥 혼자 지내는 딸 걱정이겠지. 끝까지 쓸데없는 고집으로 혼자 나가서 살고 있으니 괘씸하기도 하겠지.

근데 그런 생각이 안 들었다. 그냥 심술부터 났다.

처음에는 걱정 같지 않은 아빠 말투에서 심술이 났고, 그건 그대로 내 말투에서도 나왔다.

나라고 혼자서 편하게 지내는 것도 아닌데, 나도 힘들고 슬픈 건 마찬가지였는데 왜 또 나한테 화살이 꽂히지.

그래서 또 다퉜다. 역시나 옛날에 지독하게 다퉜던 이야기가 다시 들려온다.

지금도 아빠 머릿속의 나는 그때의 미성숙하고 멍청한, 할 줄 아는 건 실수뿐인 딸이다.

평생 내가 노력해도 그때의 그 모습으로 남아 있을 것 같아서 허탈했다. 내가 여기서 뭘 더 해도 바뀌지 않겠구나.


아빠 마음에서 나는 마이너스밖에 없다고 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말을 듣자 힘이 쭉 빠졌다.

허탈하다. 그냥 너무 허탈해서 차에서 내리면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집까지 걸어가면서, 집에 도착해서 고양이를 챙기고 집을 청소하면서 계속 울었다.

중학생 때나 지금이나 난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다. 그래서 난 꿈을 가져 본 적이 없다.

대학생 때는 내가 사는 이유가 뭔지 도저히 모르겠어서 책을 정말 많이 읽었는데, 아직도 모르겠다.



혼자를 좋아한다고 하면서, 사실 혼자 있으면 우울한테 잡아먹힌다.

하루 종일 우는 것도 지치고 싫어서 의지할 만한 사람을 찾게 된다.

그 상대는 대부분 애인이지만... 그렇다고 내 애인에게 이런 감정을 말하진 않는다.

그래도 그만 울고 싶은 마음은 여전해서 옆에 있을 사람이 필요하다.

사람이 싫다면서 사람을 찾는 내가 웃겨서 싫다.


사람이 얼마큼 울어야 더 이상 흘릴 눈물도 남아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직 나는 한참 멀었나 보다.

과장 조금 보태서 오늘 하루 종일 우느라 머리가 너무 아프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눈알까지 뻐근해서 그만 울고 싶은데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내가 뭐라고 남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겠는가.

그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나는 그럴 만한 사람이 아니다.

세상에는 내가 없어도 잘 살 수 있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


이제 딱히 내 편이 없는 것 같다는 기분은 날 너무 슬프게 한다.

이전 03화 우리의 기념일을 축하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