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걸 먹으면 마음에 여유가 생깁니다
나는 산소호흡기처럼 전자담배를 물고 산다.
확실히 연초와는 다른 느낌이다. 내장이 차가워지는 기분이다.
나는 이상하게 살짝 땀이 나는 날씨를 좋아하는데, 그래서 여름을 가장 좋아한다.
연초를 태우면 속이 따뜻해진다. 겨울만 되면 손이 시뻘게져도 골목에서 줄담배를 태우곤 했다.
하늘을 향해서 뻐큐(...)를 날리고 싶을 때 도저히 할 게 없었다.
스무 살의 나는 담배도 피우지 않았고, 술도 마실 줄 몰랐다. 유흥과 관련된 모든 것을 싫어했다.
물론 아직도 클럽은 한 번도 안 가 봤다. 앞으로도 가지 않을 것 같다. 그곳은 뭐랄까... 나에게는 우그러진 철물점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나는 쇠끼리 부딪히는 소리를 끔찍하게 싫어한다.
대학교를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기숙사에서 과제를 하고 있는데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집에 있는 오렌지 하나를 왜 가져갔냐며, 이래서 딸년은 키우는 게 아니라고 하셨다.
난 오렌지 하나를 챙겨 왔다는 이유로 한순간에 불효자가 됐다.
그날 나는 더원 오렌지라는 담배를 샀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학생증을 민증 삼아 보여 드렸고, 주차장으로 걸어가 한 대를 태웠다. (라이터를 켜는 방법도 몰라서 몇 번이나 실패했다)
기침이 너무 심하게 나서 버릴까 했는데, 쓸데없는 짠순이 기질이 발동해서 끝까지 다 태우고 버렸다.
지금은 제발 담배 좀 그만 피우라는 소리를 담배 피우듯이 듣는 애연가다.
대학교 이야기가 나와서 생각난 한 가지 이야기인데, 나는 대학교 기숙사 뒷골목을 좋아했다.
열 시가 넘어가면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곳을 걸어 다니지 않았고, 근처에는 큰 절이 하나 있었다.
매일밤 그곳을 산책했는데, 어렴풋이 연등이 보이면 이어폰을 빼고 천천히 걸었다.
앞으로도 계속 언급하겠지만 나는 우울증과 심하게 친하게 지내던 때가 있었는데, 아무리 산책을 해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아 무작정 절 안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더 고요하고 거대했다. 구석에 앉아 가만히 스님이 읊조리는 불경을 들었다. 향 냄새가 너무 좋아서 연초를 태우듯이 숨을 쉬었다. 그냥 그렇게 거대한 부처님 조각상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심장이 너무 무거운 기분이 들어서 딱딱한 바닥에 앉아 울었다. 흐르는 눈물만큼 심장이 가벼워질 거라고 생각했다.
한 아주머니께서 방석을 하나 가져다주셨다. 나를 보고 살짝 웃으셨고, 편하게 쉬고 싶은 만큼 쉬다가 가라고 말씀하시고는 다시 돌아가 절을 하셨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도저히 눈물이 멈추지 않아 그냥 나왔다.
아주머니는 도망치듯 나가는 나를 보고 따라 나오시면서, 힘들면 또 와도 괜찮다고 하셨다.
나는 그 이후로 절에 가지 않았다.
불교신자는 아니다.
그러나 향 냄새의 기억은 아직도 강렬해서, 가끔 그때와 비슷한 향의 인센스를 피워 놓기는 한다.
나는 내가 썼던 글이나 일기를 전부 모으고 책 읽듯이 다시 보는 습관이 있다.
이제 보니 숙취가 뭔지도 모르는 열아홉 살 때 잘도 그런 말을 썼다.
그래도 이때는 내가 술보다 담배를 더 좋아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