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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Mar 11. 2024

MOMENT

찰나(刹那), 찬란한 그 순간

[SHOOT THE MOMENT] 2024. 3. 11. SELF-PORTRAIT. PROCREATE IPAD. DRAWING by CHRIS



사진에 매료된 이유는 '찰나(刹那)의 순간'을 잡을 수 있다는 흥분 때문이었다. 현대의 사람들은 손에 신의 눈꺼풀을 가진 것에 감사해야 한다. 시간을 감각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포터블 아이(PORTABLE EYE)'는 흩어진 시간을 하나로 모은다.  

 

The reason I was fascinated by the photo was the excitement of capturing the 'momentary moment' (刹那) in it. Modern people should be grateful for having the eye of god in their hands. The 'PORTABLE EYE' that can sense time captures scattered moments into one.



사진은 인생의 틀이 답답했던 시기에 세상으로 다가가는 새로운 창구로 느껴졌다. 공간이란 육체의 그물에 갇힌 영혼은 살갗을 찢고 나갈 수 없다. 지나면 다시 오지 않을 시간에 대한 갈증은 시간을 하릴없이 보내야 하는 나에게 사진이란 숨 쉴 구멍을 찾게 만들었다. 어렸을 때 타인이 찍어줄 때만 나를 카메라 앞에만 세웠지, 스스로 나의 사진은 찍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증명사진을 빼고 나를 카메라 앞에 세우는 게 의미롭지 않았다. 요즘처럼 카메라가 탑재된 핸드폰이 있어서 필름의 낭비 없이 찍었다가 쉽게 지울 수 있는 만능형 블랙박스가 없었기 때문에 화면을 바로 볼 수 없는 필름 사진은 피사체의 선택에 있어 신중함을 요구했다. 사진기도 고가였고, 계속 갈아 끼워야 하는 소모품이었던 필름 가격도 고려해야 했고, 사진을 찍은 뒤에는 현상과정을 거쳐서 인화 뒤에 사진이 제대로 초점이 맞았는지 아닌 지도 알 수 있었다. 결국 사진을 손에 받아보기까지 돈도 이중으로 들고 시간도 이틀 정도 소요되었다. 그런 번거로움을 부담하면서까지 사진에 미친 사람은 일상에서 많지 않았다.



나는 사진 속에 영혼이 담길 있다고 생각한다. 사진기가 없었을 땐 나는 내 안의 '포토그래픽 메모리(Photographic Memory)'에 의지해 사람들을 기억하려고 했다.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그들의 이름과 얼굴, 전화번호, 그들의 말투와 이야기한 내용들을 기억하는 것만이 아니라, 공간 속에서 보았던 장면들과 향기와 촉감까지 모든 순간들을 기억해 내는 '장기서술기억(Long Term Declarative Memory)'을 사용하는 것은 망각을 원하기 전까지 내가 제일 잘하는 것 중에 하나였다. 그 기능을 써서 책이나 사물을 집중해서 보면 내용들이 한 장 한 장의 사진으로 변해서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서 펼쳐졌다. 학창 시절 때 공부를 땡땡이쳐도 벼락치기 선수였던 비결은 순간을 사진 찍는 것처럼 기억하는 능력 때문이었다.



그랬다가 나는 어느 순간부터 모든 것을 잊고 싶었다. 사람들의 말들을 잊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특징들을 잊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감정을 잊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이름을 잊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과 별다르지 않게 잊는 것에 익숙해졌을 때 길을 걷던 나는 뭔가가 허전했다. 내 안의 무엇인가가 사라져 있었다. 허겁지겁 나의 머릿속을 둘러보아도 기억에 남는 것은 단편적인 조각 밖에 없었다. 흩어진 시간들 앞에서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 평범해진 내 눈에는 그 누구보다도 보조장치가 필요했다. 그래서 사진을 선택했나 보다.  



누구나 인스타에나 블로그에 올리는 음식이나 옷이나 동물들이나 몸매나 상품이나 친목관계에 대한 사진들은 전혀 열망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나는 감각을 재활(再活)하기 위해 한동안 사진을 배웠고, 잠시 사진을 통해서 일도 했다. 재미있는 건 무엇이든지 시작할 때마다 사람들이 꼬였다.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나의 열의는 그들을 향한 사랑으로 비쳤을 수 있다. 난 누구보다 잃어버렸던, 아니 잊어버렸던 이 순간을 사랑했으므로 순간에 집중해야 했다. 나의 아이들을 찾아와야 했다. 표현할 수 있는 시간을 얻는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시간 속에 놓인 사람들은 모른다. 자유를 빼앗겼을 때 자유의 소중함을 알고,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졌을 때 사랑이 소중함을 알게 되듯이 우리는 모든 것을 잃고 나서, 그 순간이 지나가고 나서야 그 소중함에 대해서 떠올린다.

  


학창 시절 때 필름카메라로 친구들을 찍어줬을 때 난 누구보다 대상을 포착하는 순간에는 자신 있었다. 시간을 사살할 준비가 되면 숨을 멈추고 정확히 피사체를 향해 셔터를 눌렀다. 나는 나만의 사격 감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알고 있었다. 군인들이 총을 들고 있을 때 적으로부터 보호받는 느낌을 받는 것처럼, 묵직한 사진기를 들었을 세상의 시간사냥하는 사냥꾼의 동공은 단단하게 조여지고 단전에 뜨거운 열기가 피어오른다. 시야가 확장되고 순간을 포착할 수 있다는 공격적이고 동물적인 본능이 시작된다. 숨을 잠시 참고 시간의 목덜미를 한방에 물고 싶은 욕망이 터질 때 빛을 쏜다. '탕!' 고막을 울리는 소리와 비슷한 시신경이 썰리는 소리, "찰칵!" 그 소리는 순간의 희열을 전해주었고, 나의 기억에 수신호를 주었다. 물밀듯이 입력되는 장면들은 잊고 있었던 순간을 기억하게 했다.



화가들이 피사체를 그리다가 눈앞의 영혼에 사로잡혀 거부할 수 없는 육체적인 몸짓을 나누듯이, 내 안에 사물과 인간에 대한 숨겨진 욕망이 있음을 본다. 사진기를 들었을 때 누군가의 목을 어루만지는 듯한 피로하고 긴장되는 느낌을 받는다. 총을 물고 자살하는 작가들은 이유가 있다. 뇌까지 미친 듯이 뚫리는 텅 비고 강렬한 파괴, 뇌척수액과 피가 끈적하게 혼합하여 흘러내리는 뜨거움! 나는 여자건 남자건 눈앞의 것을 사랑한다. 그리고 관심이 없기도 하다. 숨죽이고 그들을 의식으로 잡아끌어내기까지 무심하기도 하고 멀리서 가볍게 희롱하기도 한다. 세상에 나를 묶어둔 것이 있어서 아직까지 살아있나 싶기도 한다. 평범한 삶이었으면 그리고 그냥 풀어놨으면 이미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순간(MOMENT)'에 대한 짧은 사랑 고백을 바친다. 곧 오픈할 스튜디오에게.



자유를 위해 이별한 카메라 대신 요즘은 핸드폰 속 다눈박이 친구와 잠시 동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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