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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Mar 13. 2024

AGE

나이와 정체성

초면에 나이를 묻는 사람들이 있다. 나이가 상대를 아는 것과 무슨 상관있는가.


- 그건 왜?

- 넌 몇 살인데?


나잇값 못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인 세상에서 나이로 눌러보는 사람들에게는 나는 좀, 아니 많이 건방지다는 평가를 듣는다. 혹은, 나이를 알 수 없는 외계인 같다는 소리도 듣는다. 어차피 나이를 가지고 나와 상대할 게 아니지 않은가. 학자라면 지성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고, 일하는 사람이라능력 발휘해야 것이고, 예술을 한다면 감성을 보여줘야 할 것이고, 사귄다면 마음부터 움직여야 것이고, 만남을 원한다면 삶이 맞아야 할 것이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난 충분히 친절하게 인사를 할 수 있다. 우린 잠시의 스쳐감만 있고 더 이상 만나지 않을 것이기에 예의는 그럴 때 사용하는 것이다. 그들의 기억에 나란 존재를 남길 필요가 없다. 흘러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의 건방짐은 하릴 소용이 없다. 신비로움도 의미 없다. 날카로울 이유도 없다. 무색무취의 성질을 띠고 흘러가는 게 맞다.


가끔 난 나이를 잊는다. 내 나이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다. 눈을 뜨고 산 삶을 따진다면 난 그 누구보다 오래 살았다. 아이들이 왜 어른들을 공경해야 하냐고 물으면 난 이런 말을 해 준다.


- 어른들을 공경해야 하는 이유는 너보다 밥을 많이 먹었기 때문이야. 너 십 년 치나 이십 년치 밥을 한 시간에 한꺼번에 먹을 수 있어?


그러면 아이들은 잘 이해한다. 한 번에 먹은 밥이 체하는 건 모두 안다. 손을 따고 등을 두드리고 활명수를 먹거나 소화제로 속을 뚫어야 하는 건 고사하고, 먹다가 배가 터져 죽을 수도 있다. 응급처치로는 먹은 것을 게워내야 한다. 매끼 시간을 담은 밥은, 나눠서 먹을 수 있어도 한 번에 먹을 수 없다.


언젠가 일주일 동안 먹방 채널을 적이 있었다. 너무 신기했다. 저 사람은 몰래 토하지 않모든 것들을 삼킬 있을까. 화면이 꺼지고 거짓으로 뱉지 않는다면 정말 존경스럽다. 밥을 맛깔나게 잘 먹는 사람들을 보고 복스럽다고 말하던 시기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저렇게 한방에 많이 먹는 건 채울 수 없는 위장에 급체를 밀어 넣는 미련함이 보인다. 이곳의 삶에 미련이 없는 나는 그렇게 많이 먹을 수 없다.





대학 오리엔테이션 때 남들보다 일찍 도착했던 나는 습관처럼 교실의 맨 뒷자리에 앉아서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꼬았다. 텅 빈 공간에서 고개를 젖히고 한쪽 다리를 건들거렸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면서 아이들이 하나둘씩 들어왔다. 힐끔 그들을 쳐다보니 나를 보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한 명, 두 명까지는 괜찮았는데, 점점 숫자가 늘어나니 이상하다 싶었다. 그러다가 연배가 있어 보이는 사람도 들어왔다. 역시 그들도 인사를 했다. 나도 고개를 까딱했다. '예의 바르군.'


십 분쯤 지났을까 지도교수님이 들어왔다. 나와 눈을 마주치고 그녀도 잠시 나를 응시했다. 그리고 앞으로 나간 그녀를 주목했다. 그녀는 반갑다는 인사를 하고 출석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나의 이름이 불려졌을 때 모두들 그제야 내가 신입생이라는 것을 알아챈 듯했다. 앞에 앉은 아이들이 하나둘씩 말했다.


"난 선배나 선생님인 줄 알았어."

"포스 있다. 야."

"선배들도 너한테 인사한 거 알아?"

"선생님도 멈칫했는데."


나이는 그런 것이다. 말해지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 인식하는 것, 스스로의 틀에서 규정지은 것이다.

    




나이의 익명(匿名)을 썼던 시간이 있었다. 나를 모르는 곳에서 년을 살아야 하니까 나이를 쓰지 않았다. 아예 꺼내지를 않았다. 다행히 시간의 흔적은 나에게 리게 찾아왔다. 그래서 나보다 한참 어린아이들은 나를 동년배로 생각했다. 연애의 감정을 쏟는 애들도 있었다.


싱싱한 시작에 나도 들떴다. 난 마누엘 푸익(Manuel Puig)의 소설, 거미여인의 키스(El beso de la mujer araña) 몰리나처럼 신성한 학문의 감옥 속에서, 미래의 발렌틴이 될지 모르는 국제정치를 배우는 아이들에게 비밀한 이야기를 흘리는 열망에 충실했다. 거기선 한국에서 사용하던 이름과 나이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아이들은 하버드에서도 스탠퍼드에서도 예일에서도 옥스퍼드에서도 그리고 내가 가본 적 없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와 독일과 프랑스와 토고나이지리아와 칠레와 태국과 말레이시아와 일본에서 흘러와서 함께 생소한 외국의 언어로 이국에서의 발걸음을 떼었다.


현지인은 이해할 수 없는 단어를 쓰는 외국인들만의 대화는 꽤 재미있었다. 자국말을 외국인이 하는데 자국어를 쓰는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고 외국인들 무리만이 타국어를 사용하고 알아듣는다니 그만한 아이러니가 없었다. 한마디로 외국인들이 한국어로 잡담하며 즐거워하는데, 한국인은 뭔 소리를 하는지 못 알아듣는 상황과 같았다. 가끔 자기 나라 언어를 쓰자고 하는 아이가 있었는데, 무시했다. 난 그 언어를 사용하기 싫었다. 익명의 공간에서는, 익명의 시간에서는, 익명의 언어를 써야 한다.  

 

그러다가 간혹 나이를 묻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역시 그들은 한국사람이었다. 그래서 반문했다.


- 그래서 넌 몇 살인데?


그럼 그들은 이상하게도 자기의 나이를 말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누군지를 밝히기 시작했다. 난 가만히 앉아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이와 정체성은 어떤 관계일까?






[ME, MYSELF AND ALIEN] 2024. 3. 13. PROCREATE IPAD. DRAWING by CHRIS.



고백하자면,

현대의 사람도 아닐뿐더러 지구인이 아니다.

사실 이 삭막한 지구에 떨어질 운명이 아니었다.

태양계와 완전 반대편인

안드로메다 S-1097625번 행성.

육백오십사 광년 떨어진 곳에서 살던 나는

불경하게도 호기심이 많았던 죄로

행성의 보였던 요술거울을 몰래 훔쳐보다가

잠시 엉뚱하게 지구의 한편,

한국에 도착해 있다.


자주 그렇게 생각한다.

여기 사람들과는 어째 생각이 안 맞는다.


.


오늘은 고향별을 찾아봐야겠다.



Confession, 

I'm not a modern person, nor am I an Earthling. 

In fact, it wasn't my destiny to land on this desolate Earth. 

I hailed from the opposite side of the solar system, 

Planet Andromeda S-1097625. 

Living six hundred fifty-four light-years away, 

I, driven by insatiable curiosity, 

committed the grave sin of secretly stealing the planet's national treasure, the magic mirror,

only to find myself, by a twist of fate, on this tiny part of Earth, 

in Korea.


Often, I think this way:

I just don't seem to resonate with the people here.


.


Today, I must try to find my home planet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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