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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Mar 14. 2024

TOOTHACHE

내 마음의 치통

순수한 문학적인 혈통에 마음을 빼앗긴다는 것은 탕자들의 찜통에서 끓는 마음을 달래는 것보다 훨씬 그럴싸한 방황이다. 난 사는데 필요한 인간사이의 관급조절과 거기에서 발생하는 이익 분기점을 잘 다루게 생겼다는 말을 간혹 듣곤 하는데, 사실은 그게 일과 관련되지 않는다면 전혀 관심 밖이다. 그래서 먹는 것보다 나가는 것이 많은 고장 난 비활성 대장처럼 사물을 보기보단 허공에 멍청하게 쳐 박혀있는 시간이 더 많다. 그 눈길을 보면서 가까운 사람들은 의뭉스레 말을 내던지곤 한다.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하나 자주 듣다 보면 양쪽 귀를 깊이 간지럽히는 털 가시가 되는가 보다.


“널 보며 자주 혼동되곤 한다. 현실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생각은 너무 비현실적이라.”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 또한 의문스럽다.


“개인마다 달라지는 생활환경과 사상의 범위에서 과연 현실적이란 기준은 무엇인가? 내가 보기엔 극히 현실적이라고 분류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꿈도 없고 희망도 없어 보이는데 그것이 정상치라고 생각된다고 하여 따라가야만 하는가. 게다가 보이지 않는 인식틀이 매번 현실적이어야 한다면 무엇하여 생의 경계를 뛰어넘는 생각을 하는가?”


생활에 관해서는 정상궤도를 순조롭게 밟고 있는 이들보다 진창인 얼굴로 살아가도 하나 남은 긍지는 태초의 꿈만은 놓지 않았다는 거다. 나이가 들어도 변치 않는 공상의 문은 갑갑함의 틀이 강해질수록 왜 이리 두터워지는 건지 자가진단을 굴려봐도 알 듯 모를 일이다.


어릴 적부터 간접적인 죽음을 빈번하게 발견해 온 것이 영향을 준 것일까? 소설이나 시, 영화, 음악, 그림, 사진, 기사. 그러나 이러한 것들에 취미를 두고 있는 사람들도 그러하지 않을까? 난 단지 죽음이 실생활에서 보이는 형상으로 대체되어서 오랫동안 상상해 온 죽음과 비교하며 인생이란 테두리를 고민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죽음만은 쉽게 선택하지 않을 것 같다. 정말 고통스러운 순간이면 단번에 죽어야겠다는 생각보다 살아서 고통을 물리쳐야겠다는 원인 모를 의지가 샘솟으니까. 사실 헛된 죽음조차 탓할 사람이 없다고 이미 단념하기도 했다. 가난한 청년, 막심 고리키(Aleksey Maksimovich Peshkov)가 개혁에 대한 열정과 혈기가 식어버린 후 일순간의 방황으로 자살을 시도하며 한말이 떠오른다.


“내 행동에 책임질 사람은 시인 하이네뿐이다. 그로 인해 나는 마음의 치통을 앓게 됐으므로.”


이 문장을 읽었던 해는 잠시 죽음을 선택한, 젊었던 그와 비슷한 나이였다. 나는 치통 부분을 빼고 전체적으로 자신의 죽음을 합리화하기엔 어설프다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 가방에 넣어둔 막심 고리키의 부표한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니 뱃속 어딘가가 찡하게 아려온다.


내게도 마음의 치통이 발생한 것인가! 그런데 나의 행동에 책임질 사람은 누구일까. 죽음이란 누군가가 책임질 수 없는 목적 없는 출발이 아닌지 여겨진다. 사람이 무언가에 푹 빠져든다는 것은 죽음의 문턱에 도달해서야 좋아하였던 벨을 다시 울리게 만드는 빈 터의 놀라운 아픔같이 보인다. 그래도 그는 좋았겠다. 나의 생각과 동일한 시어를 쓴 이를 만났다니 무조건적인 삶에서 얼마나 기쁜 일인가! 


2005.3.29. 火





- Heinrich Heine, Buch der Lieder, 귀향 39 - 


난 마음이 서글퍼, 지금도 나는

사무치게 지난 날을 그리워하고 있어,

당시엔 세상이 그래도 살만했었지.

사람들은 편안하게 세상을 살았어.


하지만 이젠 모든 것이 망가진 것 같아,

모든 것이 압박이오! 모든 것이 궁핍이야!

하늘에 계신 신은 죽었고

땅 밑에 사는 악마도 죽었어.


이젠 모든 것이 형편없이 침울하고,

마구 뒤엉키고 썩고 차가워져 있어,

약간의 사랑이 없다면,

이 세상엔 의지할 것이 하나도 없을 거야. 




하이네의 나긋한 입술, 그가 부른 사랑의 시를 듣다가 기쁨에 빠져버렸다. 그렇다. 이런 것만이 나의 젖은 살을 끄집어내서 불을 지른다. 악마가 달콤한 언약으로 속삭인다 해도 사랑, 정겨운 고독의 또 다른 이름을 기억한다. 사랑에 질려버린 내가 진짜 사랑을 선호하는 이유는 더욱 고독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약간’이란 어설픈 부사(副詞)에 그 모든 것을 건다는 것이 건들거리는 건달처럼 느껴져서 불안하다. 그래도 아무것도 없는 것보단 희망이 솟는다. 타인이란 존재가 그다지 생활에 도움이 안 되기는 해도 딱딱한 어깨뼈에 목을 누이면 어느 팔베개보다 편하다. 그래서 두 팔은 남을 받쳐줄 때 제일 쓸모가 있다. 안 그래도 나의 넘치는 에너지에 시답지 않은 연애가 고민이라던 그들이 제시한 해결책이란, 


"연애를 해라!"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너희는 내가 연애할 시간이나 그럴 마음 구석이 조막만 한 건 잠시 잊은 거구나. 노는 얼굴은 언제나 모든 걸 잊게 한다. 내 현재를, 그리고 상대의 모습을. 그래도 고마웠다. 잘 익은 절망이 여물어서 무겁게 고개 숙이는 이 봄날에 그러한 덕담까지 해 주다니 시간은 슬픔을 지우고 좋은 모습만을 기억하게 한다. 추억의 뒷걸음은 신기루 작용 같은 것이야.



- Heinrich Heine, Buch der Lieder 서정적 간주곡 35 -


내 사랑이 나를 떠나버린 후

난 웃음을 잃어버렸어.

친구 녀석들이 농담을 건넸지만,

난 조금도 웃을 수 없었어.


내 사랑을 잃어버린 후

난 울음도 잃어버렸어.

슬픔에 가슴이 터질 것 같지만,

난 울 수 없어.


2005. 3. 18. 金





괴로움의 감정이 극에 달하고 부정적인 생각이 깊었을 때 자주 수면 아래로 가라앉곤 했다. 감정과 마음, 생각의 차이를 구분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모든 것에 반발기제가 올라오면서 고민했던 시간들이 길었다. 나로부터 깨어있는 연습을 하고 마음이 가라앉았다. 차분히 돌아본다. 저린지, 아린지, 메이는지, 아픈지 바라본다. 이 정도는 괜찮다.




[DEATH SMILE] 2005. 2. NOTEPAD. MEMENTO SKETCH by CHRIS



하루가 어두웠다가 어두운 자를 보고 웃었다

어둠에서 그도 따라서 웃었다

보이는 것은 하얀 이빨이었다

살이 썩어도 사는 이빨이었다

어두움에서 살아남는 건 웃는 이빨뿐일까

해골을 보면 웃는 얼굴 밖에 보이지 않는다

죽으면 다 웃게 되는가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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