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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Mar 15. 2024

SOLITUDE

HEART, ALONE

[SOLITUDE] 2006. 3. NOTEPAD. MEMENTO SKETCH by CHRIS


고독의 무게를 잘라주세요

이왕이면 숱도 쳐 주세요

스타일이 단조롭다고요?

컬도 넣었다가 브릿치도 주지요

염색도 할까요?

빨강! 빨강!

너무 검게 살아왔거든요

아, 거울 보니 예쁘네요

잘 익은 홍시처럼

당신 품으로 걷혀가겠네요


2006. 3. 27. 月





아침부터 업무를 보러 부동산과 세무서, 주민센터를 들렀다. 보통은 차를 타고 다니는데 동선이 어정쩡해서 오래간만에 걸어보기로 했다. 실내가 더 추운 거 같다. 밖은 화창했다. 겨울을 비켜간 햇살은 적당히 따뜻했다. 일 킬로 정도 걸었더니 눈이 퀭해졌다. 체력이 떨어졌는지 숨차다. 언덕은 걷기 힘들다. 천천히 걸었더니 세상이 환해진 느낌이다. 커피 한잔 얻어마시고 내려가는 길에 산책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갑자기 일과는 멀어진 한가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이 금요일인가? 세무서에서 업무를 마치고 주민센터로 발걸음을 돌렸다. 식사를 하러 나온 직장인들이 식당 근처에 삼삼오오 무리 지어 있었다. 횡단보도 앞에서도 아이스커피를 든 사람들이 꽤 있다. 


바람이 분다. 훈기가 돌았다. 앞에 걸어가는 남자가 반팔을 입고 있었다. 걸음걸이가 불안정한 걸 보니 힙한 걸 추구하나 보다. 아직 반팔을 입기엔 이른 듯한데 보는 것만으로도 쌀쌀했다. 주민센터에서 나와 넓고 반듯한 거리를 걸었다. 주말인데도 아직은 도로에 차가 많지 않다. 나무껍질 무늬를 보는데 그 옆의 새순이 돋은 개나리가 눈에 띄었다. 이 부유한 먼지 속에서도 노란 개나리가 피고 있다. 개나리가 피면 봄이라고 했으니까 정말 봄인가 보다. 사무실로 꺾는 모퉁이 커피전문점들의 폴딩 도어들도 모두 개방되어 있었다. 투명한 유리가 제거된 사람들의 민낯은 참새처럼 생기 있어 보인다. 겨울이 지났나 보다. 운동 한번 잘했다. 살짝 굶주린 느낌이 좋다. 허기진 상태는 확실히 고독스럽다.




혼자 있을 때만큼 정직할 때가 있나 싶다. 수많은 부연설명 속에서 팔 마다 거짓말한다는 대화보단 침묵하는 게 더 낫다. 군중 속의 고독감, 부부사이의 몰이해, 형제와의 대립감, 친구와의 겉돌음, 연인 간의 부교감, 아이와의 이질감. 모두 같은 말이다. 철저히 혼자일 때도 지성으로 인도하는 동반자가 내 안에 있다면 그 또한 괜찮다.


혼자서 있으면 시간이 빨리 간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서도 채워지지 않는 기분에 사로잡히면 더 힘들다. 한창땐 사랑과 고독 중에서 선택하기 어려워했다. 나는 언제나 혼자만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 시간이 없으면 방황했고 답답했다.   


이전에 갈겨 놓은 글들을 보니 같은 3월인데 심정은 괴기스럽고 쳐져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무대로 나가야 하는 연극배우처럼 거울 앞에서 매무새를 다듬었다. 외부에서 보이는 모습은 생기 있고 활력이 있어야 했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만 울어야 한다고 가르쳤던 것처럼 그들의 짐을 짊어지기로 한 이상, 이미 눈물카드를 다 써버린 뒤라 울면 안 됐다. 안구건조증이라 눈물도 없었고 미친놈들 사이에서 독기 밖에 없었다.


사실 고독은 괜찮았다. 고독 때문에 사망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거짓말로 상황을 부연하지 않아도 되니까 신세가 구차하지도 않았다. 훤하게 모든 게 드러난 한낮의 부끄러움은 적막한 밤에 감싸줘야 했다. 그런 치유의 시간, 푸념하고 중얼댔던 고독한 시간이 있어 지금의 내가 있나 보다. 그래서 이런 고독은 소중하다. 정말 외롭지 않다.  




고등학교 시절, DJ가 있었던 분식집이 있었다.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으러 자주 들렸다. 포장마차 떡볶이보다 삼천 원 정도 더 비쌌지만 메뉴는 흔한 고추장떡볶이 외에도 짜장떡볶이라는 신 메뉴가 인기 있었다. 개별식기도 주고 좌석도 인조 가죽소파라 편했다. 거기에 음악부스 속에 들어있는 DJ까지 덤이라니 비싼 건 음악값이라고 쳤다. 즉석으로 조리할 가스버너 위에서 널따란 양은냄비에 즉석떡볶이를 해 먹으며 우린 가볍게 수다를 떨었다. DJ는 여고생의 마음을 사로잡을 외모가 어느 정도 되는 남자였다. 다만 얼굴은 내 취향이 아니었.


고등학교 때 꽤 인기 있었던 편이었던 나는 커트머리의 미소년은 아니고, 머리가 길면 소설 《영웅문(英雄門)》의 양과(杨过) 같은 외모는 되겠다는 평가는 받았다. 한마디로 잘생겼다는 소리였는데, 나름 내가 좋아하던 양과와 닮았다는 평가에 흡족해했다. 신조협려라니! 머리가 길고 보니 아니지만 말이다.


바람둥이처럼 좌우로 팔짱을 낀 친구들 몇 명과 소파에 앉았다. 그녀들이 음식메뉴판을 볼 때 난 역시 습관처럼 다리를 꼬고 좀 건들거리면서 음악메뉴판을 봤다. 이승철은 진리였고 왬(WHAM!)도 신화였다.


"뭐 신청할 거야?"

- 기다려 봐.


나의 신청곡 일번지는 무조건 '하트(HEART)'의 [ALONE]이었다. 영어로 잘 써서 노란 쪽지를 건네면 잠시 목소리를 다듬고는 그 남자는 나직하게 말했다.


HEART

ALONE


'아, 심장이 혼자야.'  피아노 선율과 함께 락 발라드 음악이 흘렀다. 살짝 눈을 감고 시끌벅적 사람들에 둘러싸여 짜장 떡볶이 냄새가 흘러 퍼지는 앞에서 듣는 [ALONE]은 혼자일 수 없는 짜장범벅이었다. 까맣지만 어울리지 않는 모든 게 혼재된 빛바랜 갈색. 난 가끔 혼자이긴 한데 혼자일 수 없는 기분을 갖고 싶을 때 HEART의 [ALONE]을 흥얼거린다. 


참, 정말 멋있지 않다. 절규하는 어색함이 흐르면 웃고 싶다. 락 비트의 짜장냄새가 퍼지는 혼자의 고독은 슬프기 어렵다.




I hear the ticking of the clock
I'm lying here the room's pitch dark
I wonder where you are tonight
No answer on the telephone

And the night goes by so very slow
Oh I hope that it won't end though

Alone


Till now I always got by on my own
I never really cared until I met you
And now it chills me to the bone

How do I get you alone
How do I get you alone


You don't know how long I have wanted
To touch your lips and hold you tight
You don't know how long I have waited
And I was going to tell you tonight

But the secret is still my own
And my love for you is still unknown
Alone


Till now I always got by on my own
I never really cared until I met you
And now it chills me to the bone

How do I get you alone
How do I get you alone

How do I get you alone
How do I get you alone
Alone.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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