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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Apr 17. 2024

ROCK, TWO STEPS BEHIND YOU

ROCK'n Movie, OUR DISTANCE

[Fête de la musique] BEIJING. 2008. 6. 21  PHOTOGRAPHY by CHRIS



나는 언제나 전복(顚覆: OVERTURN)을 꿈꾼다. 락(ROCK)을 듣고 있으면 멈추지 않는 삶의 소리, 긴 길의 그림이 그려진다. 돌덩이에는 언제나 꿈이 있다. 발 구르며 흙 묻히고 조금씩 몸을 깎는다. 매일 새로운 모습이 된다. 그런 변화의 과정이 흐르는 딱딱함은 신기한 형상이다. 그래서 락(ROCK)이란 단어에 미치나 보다. 코미디 섞인 락도 좋다. <스쿨 오브 락 The School of Rock>을 보고 거의 깜박 죽었다. 친구를 드럼 치듯 쳐대며 웃었다. 너바나(Nirvana), 퀸(Queen), 이글즈(Eagles), 하트(Heart), 잉베위 말름스틴(Yngwie Malmsteen), 후바스 탱크(Hoobastank). 데프 레파드(Def Leppard), 오아시스(Oasis), 건즈 앤 로지스(Guns N' Roses), 롤링 스톤즈(The Rolling Stones). 열거할 수 없이 굴러가는 사람들의 음악이야기는 눈을 부릅 세우며 밤을 지새우게 만든다. 물론 지루한 신세타령 대목에선 잠도 잔다.

락(ROCK)을 다루는 영상은 웃고 흥겨운 와중에 삶이란 망원경을 들고 자신에게 진지한 시선을 보낸다. 리듬을 따라 삶을 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시끄럽던 조용하던 구슬프던 띠딩거리던 하나의 소리다. 바로 우리의 인생은 한마디로 돌덩이란 뜻이다. 길에서 구르고 길에서 죽어가는 돌덩이다. 돌덩이의 삶은 딱 두 걸음 뒤에서 잘 관망할 수 있다. 글램(GLAM)이던, 전통(TRADITIONAL)이던, 펑크(PUNK)이던, 소프트(SOFT)이던, 락(ROCK)은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야 구를 공간이 있고 사물을 유심히 바라볼 수 있다는 걸 항상 주장해 왔다. 그런데 이 락(ROCK)은 생각하기에 참 슬프다. 이건 삶을 보는 관점이므로 슬픔 타령은 계속된다.

우리가 마시는 생명수는 하늘이 내린 물이며, 고정된 물체도 이런 두들김을 받아 생의 드럼을 친다. 빨랫줄에는 물방울이 경쾌한 기타수가 되어 한 가닥 튕기고, 양철판 위엔 신나는 피아노로 가락 친다. 그게 바로 즐거운 락(ROCK)이고, 슬픈 락(ROCK)은 피 흘리는 세상에 흠뻑 젖으며 슬피 곡을 부르는 거다. 기억나는 락(ROCK) 영화 중에서 <얼모스트 페이머스 Almost Famous>와 <로즈 Rose>, <벨벳 골드마인 Velvet Goldmine>, <헤드윅 Hedwig and the Angry Inch>이 있다. 에어로스미스(Aerosmith)의 스티븐 타일러의 딸, 리브 타일러를 처음 본 <댓싱유두 That thing you do>는 제목보다 의미는 좀 약하지만 음악은 신난다.


락(ROCK)이 담은 찡한 음악들이 비어버린 삶의 소리와 일치한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찌든 삶, 엉망이 된 가정, 외따라기 사랑, 손가락질하는 시선, 야멸찬 세상, 길거리 인생, 약물중독. 내적으로 너무나 피폐할 뿐 아니라 외적으로도 편히 내다보일 수도 없도록 부끄럽기 짝이 없다. 겉 멋에 찬 사람들은 기이한 행동, 차가운 말투, 배타적인 냉소에 빠져 음악가들을 받들곤 한다. 가끔 내치는 인간들도 있지만 환호와 배격을 떠나 조여대는 면에선 동일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갑자기 왜 락(ROCK) 음악 이야기를 말하고 싶었는지, 구르는 돌이 주는 여운을 느끼고 싶어서 그런가 보다.

제니스 조플린(Janis Lyn Joplin)이 삶이 힘겨워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피워가며 사랑하는 이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누가 떨리는 음성에서 죽음을 감지할 수 있었을까. 무의미한 자신을 잊으려고 한껏 들이킨 알코올과 하루를 짜내 이유 없는 생계를 유지하려 투약한 백색공포가 귀를 자극하기만 하는 노래로만 들릴까. 토할 듯 어지러워서 휘청거리며 음을 내뱉고, 눈 밑엔 뜨거운 조명 때문에 화장이 눈물처럼 번졌는데 그걸 보고 사람들은 기뻐한다.


"아! 너무 멋진 스타일이야. 피곤한 우리의 지루한 삶과 비슷해."


편안하게 할 것은 다하면서 똑같은 삶 산다고 말하고는 그들을 해석하고 입맛대로 평가하는 건 아닐까 싶다. 가느다란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에도 예민한 남자애가 너무 곱상하게 생겨 수많은 동급생들 앞에서 팬티가 벗겨지고 얻어터지고 성적인 학대를 받으며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 가슴을 치며 원망하는데 누가 그 앞에서 놀리는 아이들을 혼내주겠는가. 이미 갈라서버린 부모가? 아님 길을 지나가는 행인이? 자신의 약한 부분을 감싸주는 소리가 높은 하이힐로 세상을 딛고서 노래하는 여장남자 가수 같아서 철썩 달라붙어 자기 좀 구해달라면 변태라 욕하고, 글래머러스한 몸매로 변신해서 유혹할 때서야 환호성을 치며 싸인해 달라고 귀찮게 하는데 어찌 좋은 말을 내뱉으며 그들을 감싸 안을 수 있을까.

누군가의 삶. 누군가의 생각. 누군가의 마음. 누군가의 행동. 누군가의 아픔. 그걸 이해하기엔 사람들은 너무 멀리 있거나 너무 가까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딱 두 걸음 뒤. 너무 좋다. 너를 볼 수 있고 나를 볼 수 있는 그런 거리. 달아날 수도 있지만 쉽게 숨을 수도 없는 그런 감질맛. 그림자놀이도 즐기고 영혼을 휩쓰는 마술 같은 감정도 느낄 수 있다.

무엇을 하든, 어디를 가든,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게 지켜봐 주고 한 번쯤 어깨에 손을 얹어 위로도 해 주게 되는 그런 거리에서 보고 싶다. 가까이서 숨 불어가며 재촉하면서 생각할 시간도 없게 만드는 이기적인 조급함은 없애고 싶다. 서로가 밟는 선이 무언지 이야기해 주는 거리에서 걷고 싶다. 앞에 웅덩이가 있으면 조심하란 말이 들리는 그런 사이가 되고 싶다. 그리고 너무 외로울 땐 고개를 돌려 자기를 바라보라고 말한다면, 소심한 사람들도 용기 있게 볼 수 있다. 같은 선 상에서 눈을 마주 보고 서 있는 나와 같은 존재가 있음을 말해주는 그런 간격이라면 다가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타인의 돌덩이 같은 삶과 나의 것도 언제나 두 걸음 뒤처진(Two steps behind) 정도에서 바라볼 거다. 오늘은 그런 날이다. 그리고 내일도 그렇게 시선을 두고 싶다.


"Turn around. I'm two steps behind you."

"돌아봐. 내가 너 두 걸음 뒤에 있어."


2004. 10. 21. TUESDAY




[Fête de la musique] BEIJING. 2008. 6. 21  PHOTOGRAPHY by CHRIS


북경 프랑스 문화원에서 열린 <음악축제 Fête de la musique>는 음악이 귀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게 정신없던 뮤직 페스티벌이었다. 같은 북경대(北京大学)였는지 옆 동네 칭화대(清华大学)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 멕시코 출신 법학도와 콜롬비아와 나이지리아 출신 경제학도 친구들을 만나서 고개로 까딱 인사하고선, 나의 놀이터였던 <따샨즈 798 예술구역 大山子798艺术区>까지 놀러 가서 아이스크림도 먹고 하루종일 음악을 즐겼다. 밤늦게 아이들과 프랑스 문화원 인근 공인체육관(工人体育场) 옆 대형볼링장에서 편을 갈라 볼링도 쳤다. 볼링을 치면 온몸의 근육이 저리고 당길 수 있는지도 알게 됐다. 이름만 묻고 더 이상은 묻지 않는 만남은 자유스러웠다. 새로운 이들과 놀 때나 필요한 이름, 이름의 용도는 음악을 즐기거나 놀이를 할 때 부르기 쉬운 A나 B와 같았다. 그때 진실하고자 했던 것은 풀어진 나였고, 타인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관계가 흩어지면, 그 장소와 기분은 기억이 나는데 사람들이 기억나지 않는다.    



[Fête de la musique] BEIJING. 2008. 6. 21  PHOTOGRAPHY by CHRIS



한번 미치면 모든 것을 쏟았던 시기가 지나고 나니 가까움이 부담스러웠다.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딱 붙어서는 살 수 없다. 서로 붙어있는다고 해서 특별히 달라지는 게 없다. 나는 나의 삶을 살고 너는 너의 삶을 산다. 애정의 간극도 두 걸음 뒤가 좋다. 접착제를 붙인 것처럼 떨어질 수 없으면 숨쉬기 힘들다. 열정이 지나가고 나면 밀착된 공간이 답답해진다. 달아나고 싶고 벗어나고 싶다. 돌처럼 굴러다니던 나는 그냥 약간 멀리서 함께 할 거다. 그렇다고 달아나지는 않는다. 뒤에서 지킬 수는 있다. 너를 사랑한다면 그 정도에서 서서 바라볼 거다.





[ROAD MOVIE: PEACE and LOVE] 2004. 10. 21. PHOTOSHOP. POSTER COLLAGES by CHRIS


고등학교 때까지만, 락과 같은 반항은 유효했다.

이후로는 반항은 묻어두었다.

반항할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자유를 향한 표현이었음을,

입 다물고 정신없이 굴러야만 할 때 알게 되었다.



락 뮤직을 들으면 어렸을 때처럼 흥분은 되지 않는다. 그래도 음악이 흐르면 웃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재작년에 뒤늦게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Bohemian Rhapsody>를 보았다. 퀸(QUEEN)의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와 닮은 레미 말렉(Rami Malek)이 분했던 영화는 볼만했다. 생각보다 엄청난 감동은 아니었다. 영화가 끝나고선 음악 이야기가 부족해서 <예스터데이 Yesterday>를 봤다. 잔잔하고 소박한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 재능이 부족한 음악가가 얻어걸린 마법과도 같은 선물의 진실을 고백하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에 많이 웃었고, 영화의 여운을 따라 비틀스 노래를 찾아들었다. 모두가 위대해지기 어렵다. 그래도 누구나 음악은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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