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RIS Apr 18. 2024

A BEING DIFFERENT FROM ME

On Children. 창작자와 창작물, 시간과의 유기적 연속성

[BIRDS AT HOME] CHINA, 2024. 4. 18. PHOTOGRAPHY by CHRIS


비행기 안에서 본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의 《아이들에 대하여 On Children》 시 구절은 생명의 지속성과 바라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우리라는 과거는 새로운 미래를 위한 지탱의 힘이 되고 있다. 그러기에 앞으로 나아가는 약진에는 과거의 미련을 접어두어야 한다. 나의 몸을 빌어 나온 아이는 현재이며, 이들에게 나의 편리를 위해 고정적 관념을 주입하기보다 스스로의 힘을 기르도록 안전하고 단단한 생각의 집을 지어주어야 한다. 과거는 내일의 발목을 잡기 위한 변명이 되기보다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한 강인한 탄성을 가지도록 그 뿌리가 단단해야 할 것이다. 세상의 소리는 나에게 투명한 시선을 유지하기를 원한다. 아이였을 땐 자립심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이야기하고, 어른이 되었을 땐 현재에서 내 아이들의 디딤돌이 되라고 속삭인다.



《아이들에 관하여 On Children 论孩子》

The Prophet (Knopf, 1923), On Children by Kahlil Gibran


그대의 아이는 그대의 아이가 아니다.

Your children are not your children.

你们的孩子,都不是你们的孩子。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갈망하는 큰 생명의 아들딸이다.

They are the sons and daughters of Life’s longing for itself.

乃是 “生命”为自己所渴望的儿女。


그들은 그대를 거쳐서 왔을 뿐 그대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They come through you but not from you.

他们是借你们而来,却不是从你们而来。


또 그들이 그대와 함께 있을지라도 그대의 소유가 아니다.

And though they are with you, yet they belong not to you.

他们虽和你们同在,却不属于你们。


그대는 아이에게 사랑을 줄 수 있으나, 그대의 생각까지 주려고 하지 말라.

You may give them your love but not your thought,

你们可以给他们以爱,却不可给他们以思想,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의 생각이 있다.

For they have their own thoughts.

因为他们有自己的思想。


그대는 아이들에게 육신의 집을 줄 수 있으나, 영혼의 집까지 주려고 하지 말라.

You may house their bodies but not their soul,

你们可以荫庇他们的身体,却不能荫庇他们的灵魂,


아이들의 영혼은 내일의 집에 살고 있다.

For their souls dwell in the house of tomorrow,

因为他们的灵魂,是住在 “明日”的宅中,


그대는 결코 찾아갈 수 없고, 꿈속에서 조차 갈 수 없다.

Which you cannot visit, not even in your dreams.

那是你们在梦中也不能想见的。


그대가 아이들과 같이 되려고 애쓰는 것은 좋다.

You may strive to be like them,

你们可以努力去模仿他们,


그러나 아이들을 그대와 같이 만들려고 애쓰지는 말라.

But seek not to make them like you,

却不能使他们来像你们,


생명은 뒤로 물러가지 않으며 결코 어제에 머무는 법이 없다.

For life goes not backward nor tarries with yesterday.

因为生命是不倒行的,也不与 “昨日”一同停留。


그대는 활, 그리고 그대의 아이들은 살아있는 화살처럼 그대로부터 쏘아져 앞으로 나아간다.

You are the bows from which your children as living arrows are sent forth.

你们是弓,你们的孩子是从弦上发出的生命的箭矢。


그리하여 활 쏘는 자는 무한의 길 위에 과녁을 겨누고 

The archer sees the mark upon the path of the infinite,

那射者在无穷之中看定了目标,


자신의 화살이 보다 빨리, 보다 멀리 날아가도록,

And He bends you with His might,

也用神力将你们引满,


온 힘을 다해 그대로부터 쏘아져 앞으로 나아간다.

That His arrows may go swift and far.

使他的箭矢迅疾而遥远地射了出去。


그대는 활 쏘는 이의 손에 의해 구부러짐을 기뻐하라.

Let your bending in the archer’s hand be for gladness;

让你们在射者手中的 “弯曲”成为喜乐吧;


그는 멀리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는 만큼이나,

For even as He loves the arrow that flies,

因为他爱那飞出的箭,


흔들리지 않는 활 또한 사랑하기에.

So He loves also the bow that is stable.

也爱了那静止的弓


칼릴지브란 Kahlil Gibran 卡里•纪伯伦, 예언자 Prophet 在他的《先知》里,아이에 관하여 On Children 关于孩子的论述


[The Prophet (Knopf, 1923), On Children  by Kahlil Gibran] 2014. 3. 14. On the Airplane Magazine
2014. 3. 14. FRIDAY




많은 부모들이 아이에게 자신이 못다 이룬 꿈과 희망을 투영하고 그 실행을 자식에게 강요한다. 그것은 옳지 않다. 아이와 부모는 개별적인 존재이며 서로 다르다. 현재에서 묻힌 과거를 꺼내는 것은 힘들다. 그리고 그 과거는 미래를 향해 삶을 펼치는데 긴 그늘을 지운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부모님을 타인이라고 생각했다. 완전히 나의 자아가 부모님과 달랐다. 부모님의 배를 빌어 나왔지만, 생명은 주어졌지만, 생명의 시작부터는 나는 누구에게 귀속되지 않는다.


생명을 받는 입장에서도 생명을 주는 입장에서도 항상 되새기는 부분이다. 그것이 작가의 창작물이든,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생명이든 간에 모두 같다. 주어진 생명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시간에 따라 평가를 달리 받는다. 변화는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현재에서의 존재의 성장과 자립을 생각하지 않으면 과거와 현재, 미래는 모두 사장된다.


내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내가 낳은 아이들 때문일 것이다. 생명을 만든 이상 나는 이미 과거가 되었고, 현재의 것들을 어떻게 미래로 보낼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움직임 속에서 흔히 생각하는 고정된 시점도 변할 수 있을 것이다. 운동성을 가져야 지속적으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아이의 시선에서 창작의 태도를 확실히 해야겠다. 그리고 부모로서 창작자의 역할을 점검하고 유연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




[A BIRD IN THE HAND] CHINA. 2024. 4. 18. PHOTOGRAPHY by CHRIS


MONEY FOR LOVE or LOVE FOR MONEY


사람들과 일상에 대해 묻다 보면 살아가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상업적인 일을 하고 있으니 나의 많은 이야기는 직접적으로 돈과 결부되어 있다. 물 한잔 마시면서 거래처 직원하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데, 또다시 생활의 필수재, 돈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사랑과 돈에 관한 입장도 들을 수 있었다. 돈과 사랑, 이 둘의 조합안 어울릴 듯한데 달걀과 닭처럼 썩 궁합이 맞다. 역시 시대와 나라를 달리해도 어여쁜 심순애는 가난한 이수일의 사랑보다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더 좋은 법이다.



“한국도 여기와 같죠?”

- 똑같죠. 사람 사는 게 다를 게 있나요?


“다른 나라면 다를 줄 알았더니 비슷한가 봐요?”

-뭐 별거 있나요. 얘가 하나라 그랬나요?


“네, 대학생인데 용돈 매주 나눠서 줘요.”

- 아니, 자기가 벌어서 써야지, 여기도 부모가 대줘야 하나 봐요?


“그러니까, 요즘 애들은 부모가 봉인 줄 알아요. 학교 다니는 게 벼슬이죠. 당연히 공부하느라 벌 시간은 없고 써야 하죠. 연애하라, 밥 먹으랴, 기숙사비는 기본이고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걸요.”

-그럼 돈 벌어서 아이들 뒷바라지하면 언제까지 해줘야 하는데요?


“애 아빠하고 같이 버니까 그래도 일이십 년은 더 일하지 않을까요? 아들이 손주 낳고서도 까지 키우면 아마 평생 아이에 얽매어있지 않을까 싶어요. 일단 지금은 제가 매주 돈을 아들한테 나눠서 주고 있어요. 일주일에 500원(한화 약 10만 원), 한 달에 한번 한꺼번에 목돈을 주면 그 즉시 사라지니까 분할해서 줘야 해요. 또 안 줘봐요. 그럼 가족 중 다른 사람한테 손 벌릴걸요? 아들은 일단 준비할 게 많아요. 대학 나와서 스스로 직장을 잡는다고 쳐도 집 준비해 줘야지, 자동차 한 대 마련해 줘야지, 현금도 넉넉히 준비해 놔야 기본적으로 결혼을 할 수 있어요. 전쟁이 있던 시절엔 남자가 죽어나갔으니 상관없는데, 지금은 남자가 너무 많아서 기본적으로 갖춰지지 않으면 여자애들이 거들떠도 안 봐요. 아, 이럴 때 딸이 있어야 하는 건데! 요즘 딸들은 지참금도 필요 없고, 남자들이 준비 다 하니까 부모 입장에서 얼마나 마음이 가볍겠어요. “

- 스무 살인데 벌써부터 장가보낼 생각 하면 너무 이른 거 아닌가요?


“말도 마요. 지금부터 미리 준비해놓지 않으면 결혼시장에 명함은 내밀 생각도 말아야 해요. 연애도 사랑도 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 없으면 결혼도 못하는 게 현실이죠. 여자애들이 얼마나 경제관념이 투철하고 현실적인데요. 아무리 대학 때 사랑 가지고 먹고 놀러 다닌다고 해도, 결혼할 때 돼서 돈도 없고 직장도 없고 집도 없는 남자한테 자기 인생을 맡기려고 하겠어요? 요즘 결혼 못한 아이들이 수두룩 빽빽해요. 사랑이냐 돈이냐 보면 돈이 먼저인 게 옛날부터 진리였어요. 먹고살아야 사랑도 하지!”



사랑이 먼저냐 돈이 먼저냐 이런 문제인데, 사랑보단 돈이 먼저라니 문학적 이상과는 거리가 멀다. 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에서 부모의 입장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인 듯싶다. 미국은 대학입학과 함께 학자금 대출의 늪에 빠지게 되지만, 기본적으로 고학력 타이틀과 함께 사회적인 위치를 가진 경제권에 도달하려면 부모의 지원이 있을 때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통계적으로 나와있다. 중국에서 한동안 시간을 보낼 때 미국과 유럽, 아시아권 아이들 뿐만 아니라, 특히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가 돈독한 아프리카 출신 친구들 많이 만났다. 단일민족권인 한국에선 아프리카 대륙 사람들에 대한 우월감상과 지적인 편견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 본 아프리카권 친구들은 집안이 족장이거나, 아버지가 국회의장이거나, 정치유력자, 경제실권자의 집안 출신이 대부분이었다. 새벽에 탱크가 밀려들어 와서 반란군이 모든 것을 뒤엎을 수 있는 불안한 사회에서 온 사람들은 관계를 맺는데도 굉장히 적극적이었다. 그리고 관계를 형성한 뒤 바로 직업전선으로 뛰어들거나, 공부와 함께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스펙을 쌓는다. 한국에서는 우리끼리 먹고 사느라 아웅다웅 하지만, 생존에 위협을 받는 나라에서 온 사람일수록 발을 넓히는 방식이 필사적이면서도 전략적인 자연스러움이 서려있었다.


오랫동안 평화로웠던 유럽도 근래에는 적극적으로 삶의 변화를 시도하는 젊은이들이 적어지긴 마찬가지다. 2월 말에 새로 알게 된 독일 거래처 대표하고도 전시장에서 한참 서서 이야기를 했다. 그는 대학생인 아들 뒷바라지 하느라 골치 아프다고 했다. 한국에서 아르바이트로 모델 생활을 하다가 한국 여자친구와 독일로 다시 돌아와 지내고 있는 아들이 다른 독일 청년들처럼, 자립적 삶에 대한 진지한 비중이 사라져 있어 고민이라고 했다.



"현재를 잡아라, 가급적 내일이란 말은 최소한만 믿어라"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퀸투스 호라티우스 플라쿠스 Quintus Horatius Flaccus


하루를 즐기고 현재를 편하게 사는 삶.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 유행하던 시절, 카톡만 열면 유행처럼 모두 현재를 즐기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호라티우스의 라틴어 시 구절에 파생된 '현재를 잡아라(Seize the day)' 나에겐 부럽기보단 먼 이야기였다. 타인의 과거를 추적하기에 바쁠 땐 현재를 잊고 싶었고, 정작 현재의 선에 놓일 땐 지나쳐버린 시간 때문에 다가올 미래를 준비해야 했다. 그래선가 베짱이처럼 사는 젊은 친구들의 생활을 보면 공감하기 어렵다. 그냥 그렇게 사나 보네, 신경을 끄고 있다. 나에게도 어린 시절, 현재를 충분히 즐겼던 시기가 있었으므로 이제 나의 역할은 현재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놓인 시간의 아이들을 미래로 보낼 방법을 고민하고 연구하는 것임을 인지하고 있다.


어차피 삶이란 본인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공감할 수 없는 삶에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도 간섭한다고 불만을 품을 것이고, 실제로 생활의 노선이 다르기에 타인의 삶에 평가를 내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굳이 말해달라면 하겠지만,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는 타자의 평가는 언제나 상처일 수밖에 없으므로 선택은 모두 자기 몫이다. 일을 하면서 예술하는 친구들도 간혹 만난다. 다만, 그들의 아픔을 내가 알기엔 좀 어렵다. 삶의 상처가 크다고 해서 작품들과 생활을 보았지만, 그 깊이와 강도가 순연히 공감할 정도로 와닿지 않았다.

 

중국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굉장히 현실적이고 직접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돈에 대한 삶의 태도와 열망 또한 돌려서 말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사람들하고 속을 누르는 문제의 단계까지 말하려면 술 한잔은 들어가야 가능한데 여기는 멀쩡한 정신으로도 대화가 가능하다. 밑바닥부터 상위층까지 확실히 경제감각이나 숫자에 대한 감각은 한국보다 더 빠르고 솔직하다. 중국은 워낙 인구가 많다 보니 부모가 다 해주는 삶, 타인에게 의지하는 삶, 그런 것을 뛰어넘는 사람들도 많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몇몇의 특출 난 인물이 전부의 삶을 대변할 수 없겠지만, 자기만의 생에서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고 생활을 꾸리는 준비가 필요하다.


풍요로운 사회에서는 자립심이 부족해질 수 있다. 나이가 들어서도 인생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변화롭게 만들어가기 위해선 가족에게 의지할 것이 아니라 구성원 개인을 별개로 보고, 각자 금전적인 감각을 키우고 자립적인 생활을 유지하면서 창의적인 사고를 계속적으로 생성해야 한다. 아이들이 스무 살 되기까지 부모에게 갖는 의지심은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부모가 자식에게 갖는 기대감, 스무 살이 넘어도 부모에게 의지하는 비성숙한 청년들, 결혼으로 사랑이 마무리됐다고 보는 부부가 서로에게 갖는 상호의존감 또한 자립적 생활이 상실될 경우를 미리 계산하고 상대방에게서 그 부족함을 채우고 싶은 욕망 때문에 변질이 되기 쉽다.


아이는 스무 살이 넘으면 모두 자립적 존재이다. 부모가 원하는 대로 살면 자기 삶은 찾기 힘들다. 사회적 지위가 있거나 겉보기엔 멀쩡해도 속이 곪아서 삶에 대한 회의가 들면 나를 둘러싼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여자도 시집가서 팔자 필 생각 그만두고 자기만의 일을 가져야 한다. 남편과 아이에 모든 것을 건다고 한들 그건 내 삶이 아니다. 아이가 잘 되어서 늙으면 키운 보상을 받겠다는 부모의 노후보장 보험으로서의 기대감도 내려놓아야 아이 또한 주체적으로 살 수 있다. 감정은 언젠가는 사라진다. 혹은 그 성질이 달라지거나 강도가 변화한다. 부부로 이루어진 관계도 처음엔 사랑이라고 하지만 그 마음이 나이 들었을 때, 힘들고 어려울 때, 감정이 떠나갔을 때, 자립이 불가능할 때도 이전의 그런 뜨거운 마음이 남아있을지는 그려지지 않는다.


직장에서 은퇴하면 무엇을 할지 몰라서 방황하는 사람들을 볼 때 과연 인생에서 쉼이 있던가 묻게 된다. 한방에 인생역전 꿈꾸다가 집안까지 말아먹고 가족 모두 주저앉을 수 있다. 타인의 이야기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삶을 만들어야 한다. 나의 정신이 사라져 어쩔 수 없이 눕게 될 때까지, 그리고 그날이 다가와도 후회하지 않게 타인에게 기대지 않고 나만의 삶을 만들어가는 자세를 잊지 말아야겠다.



[BLOOMING DAYS] CHINA. 2024. 4. 18. PHOTOGRAPHY by CHRIS
작가의 이전글 ROCK, TWO STEPS BEHIND YOU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