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RIS Feb 04. 2024

STYLE

한 걸음 더

[ONE STEP AND A MOMENT] 2006. NOTEPAD, MEMENTO SKETCH by CHRIS


"초점이 맞지 않는 한 장의 사진은 실수이고, 초점이 맞지 않는 열 장의 사진은 실험이며, 초점이 맞지 않는 백 장의 사진은 스타일이다." 라디오 스크랩 중에서


침대에 누워서 피로했던 기억을 되씹으며 온종일 걸었던 아스팔트 위를 떠올렸다. 소란했던 사람들. 일그러진 얼굴들. 기울어진 소리들. 집으로 되돌아오는 발자국이 아스팔트에 질긴 껌처럼 붙어있었다. 다리가 무거웠다. 내일도 걸을 있을까. 뿌연 시선 사이로 로버트 카파(Robert Capa)의 사진 머릿속에서 흔들거렸다. 트라이포트에 올려놓고 정확하게 찍은 증명사진과 달리 떨리는 긴박감에 시선이 간다. '약하게 초점이 나가버린(Slightly out of Focus)' 손의 떨림은 그가 추구하던 한 조각 진실이지 않을까. 포커스가 나갈 수밖에 없는 현장감이 밀려들었다.



나에게 한 번의 시도는 실패였고, 여러 번의 시도는 도전이었으며, 끊임없는 시도는 삶이었다. 맞출 수 없는 인생의 초점 속에서 내일을 찾아 헤매던 나날들. 찾을 수 없어 앞으로 달리던 시간들. 우리에게 정답이란 맞혀버리면 허무한 연기로 산화될지 모른다. 매년 돌아오는 늦가을 밤은 지난날을 되돌아보기에 적당하도록 달콤하고 씁쓸한 기운을 품고 있다.


밟을 수 없어

보기만 했네

이미 걸었던 내 흔적을


따라가 본들 그대로일까

지나버린 건

오지 않는데


내 발자국 어딜 향할까

알지 못하네

그 머나먼 길은


멈추었을 때

알게 되겠지

가지 않으면 할 게 없단 걸



2013년 스쳐가는 가을밤에 2006년 얼어붙은 겨울밤을 바라보았고, 봄이 다가오는 2024년 겨울밤에 겨울로 접어드는 2013년 가을밤을 바라보고 있다. 단단하게 엉킨 실타래를 정리해야겠다고 일어섰을 때 목구멍에 진득하게 붙은 체기는 경기를 일으키기 직전이었다. 그 때를 돌아보면 몸은 이곳에 있는데 마음은 저 멀리에 서 있었다. 그저 벗어나고 싶어 빠르게 회전하면 다시 원점인 것을 잊고 있었다. '늘어놓았던 생각의 고리를 스스로 청소하는 거야. 낙숫물이 단단한 바위를 뚫듯이.' 갈라진 마음을 빗질하며 가만히 앉아있으니 내 안의 멍에를 걷어준 그분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인생에 실패는 없다.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그래. 치열하다는 단어가 좋아 보였던 시기는 이제 지났나 보다.





앞으로 걸어가기 이전에 걸어가야 할 길을 바라본다. 

삶은 두려움을 헤치고 나를 찾아가는 하나의 여정이다.


Before stepping forward, I look back at the path I've walked. 

Life is a journey of finding myself, overcoming fears along the way.


2013. 10. 22. TUESDA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