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밥보다 위장으로 더 많이 흡입하는 것은 공기와 커피인가 보다. 친구의 신랑이 오픈한 커피전문점에서 토요일 저녁,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이 모이기로 했다. 자신만의 공간을 연 용기에 박수를 보내본다. 그래도 3년 간은 커피에 대한 애정을 안고 바리스타들을 교육시키기까지 했다니 잘 되기를 바란다. 이젠 낮은 자세로 임하는 진정한 바리스타가 되는 건가?
커피를 물처럼 마시며 하루종일 카페인으로 구강과 식도를 포함하여 위장과 대장까지 세척하는 나로선 카페를 운영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5년 전, 커피를 좋아한다는 이유와 고즈넉한 하얀 소나무에 반해서 문화와 예술이 살아있는 공간을 만들어보겠다고 갤러리카페를 열었다. 오픈 첫날, 카운터 앞에서 손님들에게 커피주문을 받으면서 스무 살 여름, 연세대학교 굴다리 근처의 한 카페에서 잠시 일했던 시간이 떠올랐다. 한 달 남짓 일하고 무슨 이유로 그만두었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 그 카페에서 처음 생크림 만드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파르페도. 그때 깜깜한 심연 같은 커피는 좋아하지만 하얀 크림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생크림이 가득 올라간 비엔나커피는 몽블랑 정상의 눈이 열기에 녹아내린 것처럼 눈을 어지럽혔다.
분명 혼자서 커피를 마시는 순간은 좋았는데 가게에서 타인을 위한 커피를 만드는 순간은 행복하지는 않았다. 공간의 문제였을까 아님, 서비스정신이 부족해서였을까. 손님들의 커피 마시는 모습을 바라보며 바쁘지 않았던 그곳에서 커피는 내가 좋아하는 커피는 아니었다. 그때 커피에 관한 일은 다시는 하지 않기로 해놓곤 무슨 정신이었는지 이미 카운터 앞에 서 있었다.
잠시 망각의 늪을 건넌 대가로 한동안 커피 만들기와 팔기를 업으로 삼았다. 그리고 보는 것과 보이는 것, 생각하는 것과 놓인 현실에 대해 되돌아봤다. 씹는 음식보다는 마시는 액체류가 생명유지에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매출을 위해 생크림이 들어간 디저트까지 만들어야 한다는 현실이 얼른 손을 떼게 만들었던 듯하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거리 두기로 텅 비워진 의자를 보면서 다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카페를 눈여겨보고 있던 미디어아트 대표한테 전화를 걸었다. "여기 하실래요?"
"밥은 먹었어?"
- 아니.
"밥도 안 먹고 뭐 하냐. 하루에 커피 몇 잔 마셔?"
- 10잔. 15잔.
"안 죽냐?"
- 보시다시피.
카페인에 단단히 중독된 상태이지만 7년 전, 이탈리아 카세르타에서 마신 고농도의 에스프레소 스트레이트 세 잔은 까슬한 심장을 폭발시켰다. 6시간의 끊이지 않는 두근거림. 사물이 소리치는 몽환. 한줄기 코피. 나쁘다고는 할 수 없는, 그러나 아드레날린이 분출하여 창문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전율을 겪고 난 이후로는 커피가 맛있다고 한 번에 쭉 들이키지는 않는다. 내일은 다른 사람이 내려주는 커피를 마실 거다. 내가 타먹는 커피가 제일 맛있지만 말이다.
COFFEE WITH ME? 2019. Wacom Drawing Sketch by CHR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