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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Apr 04. 2024

POLITICS

拙者之僞政, The foolish engage in politics

[拙政园, Humble Administrator's Garden] SUZHOU. 2007. 11. 25. PHOTOGRAPH by CHRIS


11월 말, 중국 남부의 겨울은 한국의 늦봄과 같은 날씨였다. 얇은 점퍼도 벗어버릴 만큼 따스한 햇살은 사면이 푸르른 풍경과 한데 어우러져 계절감을 잊게 했다. 물과 거울과 하늘의 반사를 거듭하는 졸정원(拙政園)의 거울정원에서 시간을 거스른 옛 시인이라도 된 양, 햇볕도 쐬고 그늘 속에서 잠시 쉬어가며 한가롭게 거닐었다. 호수 위에서 주변을 관망하는 누각을 지으며 정치를 떠나 있으되 거울을 통해 온 세계의 사면을 바라보겠다는 한 정치가의 의지를 둘러보며, 사물을 바라볼 때 진중함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중국의 4대 정원에는 이화원(颐和园), 피서산장(避暑山庄: 承德離宮), 유원(留园), 그리고 졸정원(拙政园)이 있다.


중국의 대표적인 수향(水鄕)인 주장(周庄), 그곳을 대표하는 졸정원(拙政园)은 소설 홍루몽(紅樓夢)》 속 가공의 정원이었던 '대관원(大觀園)'의 배경이기도 하다. 면적이 51,950 m²로 중국 명대(明代) 사대 정원 중에서 최대의 규모이다. 정원이 조성된 것은 1522년 명대의 왕헌신(王獻臣)이 관직에서 추방되어 실의에 빠져 고향으로 돌아온 때로, 서진(西晉)의 반악(潘岳)이 쓴 《한거부(閑居賦)》의 시 한 구절인, '졸자지위정(拙者之爲政)' 즉, '어리석은 자가 정치를 한다'라는 뜻을 본떠서 이 정원을 졸정원(拙政園)이라고 이름 지었다. 왕헌신의 사후, 그의 아들이 도박으로 졸정원을 넘기게 되고 정원의 소유주가 여러 번 바뀌었다가, 1952년 복원된 후 1997년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부지의 60% 정도가 연못으로, 물 주변으로는 누각이나 정자 등이 있다.



拙者之僞政 : 此亦拙者之爲政也.

어리석은 자들이 정치를 한다.


이 의미는 어느 시대에나 있는 것 같다. 비유와 은유를 통해 자신의 비통함과 슬픔, 상대에 대한 원망, 또한 현재의 즐거움과 기쁨, 희망을 나타내고자 하는 중국인들의 태도는 직접적인 설명을 요구하는 현대의 사상가들에게는 시간과 사색을 요구하는 방식일 것이다.


중국의 문물을 보다 보니 수많은 전설과 비화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연히 그 안에 녹아있는 또 다른 의미들을 곱씹게 된다. 황토와 먼지로 휩싸인 이 드넓은 나라에서 살아가려면 겉으로 드러난 사실이나 현상보다 내면의 의중과 표현에 좀 더 정신을 집중해야겠다.


2007. 11. 25. SUNDAY




[拙政园, Humble Administrator's Garden] SUZHOU. 2007. 11. 25. PHOTOGRAPH by CHRIS


가끔 한국에서 일을 하다 보면 중국인들을 비하하는 말들을 많이 듣게 된다. 살짝 이마도 찌푸려지면서 경박한 말투에 어리석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타인의 언어와 생각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듣도 보도 못한 우월의식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2000년대 초, 어학원에서 중국어를 배웠던 자신감으로 통역을 끼고 중국에 처음 일을 하러 갔을 때 정말 귀에서 웅웅대는 소리밖에 안 들렸다. 현재 십육억을 자랑하는 중국의 인구, 사람의 힘은 대단했다. 한국에서 듣도 보도 못한 신기하고 재치 있고 명석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고대 중국인'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학력의 고하를 막론하고 일반인들이 말하는 사상은 심도가 결코 얕지 않았다. 한국과 영미권, 유럽 사람들과도 많이 대화를 해 봤지만, 당시 중국인들하고는 어학원 선생님 말고는 말해볼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어떻게 세상을 저런 시각으로 볼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해상왕(海上王) '장보고(張保皐)'가 왜 직진으로 중국을 뚫어야만 했는지 그 열망을 알게 되고서, 한 번은 여기서 살면서 고대와 현재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들을 연구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고민하는 하루의 일상은 전 세계인의 공통된 고민임에 틀림없다, 돈과 결부된 삶에서 돈에 대한 주제는 뒤로 넘기고 사방에 잡다한 이야기를 뿌리는 사람들과 달리, 대화 첫마디부터 끝까지 '돈(MONEY) 이야기'가 제시되는 중국인들과의 접촉은 한마디로 신선했다. 어떻게 이 마당에 돈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지 솔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생존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그들의 다양한 시각을 접하면서 공산주의 체제하에 경직될 것으로 단정 지었던 편견을 한방에 날려 보냈다. 황토의 먼지가 날리는 암울한 역사 속에서 잔인하게 혹은 우호적으로 혹은 계산적으로 타인을 밟고 일어서야만 했던 중국의 역사를 보면, 개인들이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깊이 있게 자신을 숨기고 스스로를 연구했는지 돌아보게 했다.



不管黑貓白貓,能捉到老鼠就是好貓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상관없이,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다.


사회주의(社會主義: Socialism)는 러시아(구 소련)도, 북한도, 중국도 선택한 경제체제이다. 1979년 등소평(邓小平)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이 시사하듯이, 중국은 개인의 자립동력을 상실한 경제적 이윤의 공동화가 이상적인 이론을 인정하고, 먹고사는 것이 먼저임을 선언한다. 경제성장을 이룬 뒤 통합을 도모하기로 한 중국은, 사회주의의 공공개념이 성장의 경제정책과 부합되기 어려움을 인식하고 자본주의의 시장경제(Market Economy) 개념을 도입한다. 실용주의 노선 위에서 공산당이 주도하는 계획경제로의 이념으로 갈아탄 중국은 광활한 국토와 대규모 인구, 신랄한 정치적 감각과 오랜 역사, 문화적인 소양과 상(商) 나라가 선사한 상인의 재능을 토대로 경제적 발전을 도모했다. 1992년 한국은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의 수교를 선택한 이후, 가장 가깝고거대한 중국의 경제적 기반을 등에 업고 함께 성장했다.


현대 중국의 유일(唯一)한 정치체제인 '공산당(共產黨)'은 긴 시간 분할된 중국의 역사적 두려움에서 시작된 통합에 대한 응집을 반영한다. 중국의 지도부는 종교적 유일신의 사상과 개인적 믿음 방식을 통일의 고리로 차용하되 종교적 색채를 삭제하고 그것을 공산당으로 명명했다. 자유 민주주주의 세계의 사람들은 '공산당(共产党)'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데, 그것은 합리적으로 현대화된 정교일치(政敎一致)의 다른 말인, 중국의 '정치사상기관'이다. 고대의 개념인 제정일치(祭政一致)와 비슷해 보이지만, 중국은 이미 유교적 잔재는 모두 과거로 처리했고, 제사도 삭제하였기 때문에, 공산당 정책은 기독교에서 예수를 우상화하여 김일성을 신격으로 만들었던 '주석제(主席制)' 정치개념의 북한과는 달리 더 집단화되고 명문화된 형태를 띠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386세대 중 민주화 운동에서 승리한 좌향적 민주당이나, 혹은 군부적 잔재를 승계하는 우향적 보수당들의 한국정치집권세대가 주창하는 일방향 세계관은 주변을 둘러싼 정치경제의 사상적 기본 개념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편협한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 상대국가의 사상체계 본질을 살펴보면, 사대주의(事大主義)처럼 주체성 없이 무조건 떠받들거나 배격할 정치사관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서양의 형태가 세련되었다고 말하기엔 미국과 유럽의 정치체계는 이민족 역사를 말살하고 성장한 폭력적이고 야만의 습성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이는 필수품 교역의 순간에 다루어야겠다.  


현재 중국은 세대를 거듭하며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급부상하면서 삶의 수준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그렇지진시황처럼 통일제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오늘의 중국에서 분서갱유(焚書坑儒)의 과거를 상기해 보면, 중국과 외교를 실행하거나 경제적 도모를 함께 진행할 때 상대방이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두려움이란 바로 상대의 약점이며, 그들을 흔들고 조정할 수 있는 키 코드이다. 감정적으로 대국과 일전을 벌이기에 체력이 부족한 우리의 입장에서는 현명한 정치적 감각과 외교술을 발휘하지 않으면 구한말처럼 휩쓸리기 쉽다. 이미 푸틴과 마찬가지로 장기집권을 선언한 시진핑(习近平)시대에서 일대일로의 직통적 세계관이 성공할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이지만, 다이내믹한 SWOT 분석을 통해 우리뿐만 아니라 타국의 강세과 취약점을 파악하지 못하면 남북으로 분리된 우리는 쉽게 균형을 상실할 수 있다.




[拙政园, Humble Administrator's Garden] SUZHOU. 2007. 11. 25. PHOTOGRAPH by CHRIS


우리에게 보도되는 모든 기사들과 글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작성된 것이라면, 그것은 과연 현실을 말하는 것일까? 현상과 실재의 상관관계를 목격하지 못한 사람들은 언제나 군중이 될 수밖에 없다. 언어를 배우고 나서 속의 의미를 거나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표면적으로 바라보던 것보다 깊게 이해되긴 한다.


모든 글말속에는 인간의 심성과 의도가 있고 계획이 숨어있다. 선동하거나 어리석은 정치가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사도를 걷는 정치가들의 간교함과 의도적인 행위는 일반인이 파악하기엔 그 내면의 설계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편안한 글들과 위안을 주는 말들에 빠져 있다 보면 중첩을 거듭하는 고약한 자들의 간계를 분간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난해한 문장만 붙잡고 있으면 현실과 동떨어지거나 현학적으로 빠지기 쉽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진정한 위정가(爲政者)가 되고자 하는 정치가들은 스스로를 반성하고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他人), 타자(他者), 타국(他國), 타 세계(他世界) 연구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현상에 대한 이해를 통해 스스로 정립한 합리적인 이론으로 국민을 설득하지 않고 미신이나 점술에 의지해서 우매하게 세상을 혼동시키거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고 가정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정치가들이 일관성을 상실하고 주관만을 고집한다면 과연 정치를 잘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의리건 가족이건 친우건 무엇이건 간에, 측천무후(則天武后)나 명태조(明太祖) 주원장(洪武帝 朱元璋)처럼 다 쓸어버리고 홀로 초요하게 의지대로 가도 되지만, 민주사회로 이름을 갈아탄 사회가 과연 독재자의 재편의지를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진정한 위정자(爲政者)라면, 세상에 대한 투명한 성찰과 진중한 연구를 통해 최선의 결론을 국민에게 제시해 '바르게 다스린다'는 정치(政治)의 본래 뜻을 '정치가(政治家)'란 이름에 걸맞게 전달할 수 있다. 기본 삼억 정도 드는 선거비를 투자의 개념으로 생각하면 그걸 뽑기 위해 얼마나 머리를 굴릴지 앞날이 훤히 보인다. 국민들은 지배적 속성과 탐욕을 뒤집어쓴 '봉사자'들한테 서비스받기는커녕, 기회주의 정치인들을 받들어야 하는 입장으로 전락한다. 금권과 분리될 수 없는 자본주의의 선거제도는 개인을 알리는 시작점에서부터 공정한 다수주의를 지향한다 해도 이미 커다란 제도적 결함을 안고 있다. 즉, 자본주의가 더 강력한 입김을 가지는 민주주의 정치체제는 돈이 주는 가치가 주(主)가 된 현대의 삶에서 생활과 이상 간의 모순을 떨치기 어렵다.


그렇다고 공산당 체제나 사회주의는 개인의 자유나 주권보단 입 닥치고 통합이기에, 구시대 마르크스 사상적 결함을 추종하거나 통일과 다른 개념인 유일(唯一)을 선동하는 명목은 신인류스러운 선택은 아니다. 이렇게 말하는 나 또한, <진정한 위정자론>을 제시하며 그런 정치가를 국민이 찾아야 한다는 굉장히 이상주의자적인 관점을 제시하고 있으나, 이는 정치사상적 관점에서 빛을 향해 목표를 설정한다면  모든 것을 격파하고 정도(正道)로 가는 최선의 지름길이다. 한마디로 국민들과 양심 있는 정치가, 이렇게 서로 호응하는 책임 있는 모습이 발현된다면 우린 통일도 거뜬히 해낼지 모른다.


하여간, 졸정원의 산란했던 거울이 생각나면서 그때의 정치적인 감상을 신랄하게 풀어봤다. 그런데 내가 그리는 정치가들은 어디에 있을까. 졸정원에 놓인 친환경과 비 친환경 쓰레기통을 보면서 한참 생각에 잠겨 있었듯이, 나의 투표가 저 쓰레기통에 던져지는 사표(死票)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拙政园, Humble Administrator's Garden] SUZHOU. 2007. 11. 25. PHOTOGRAPH by CH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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