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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Apr 05. 2024

FAREWELL

이별

장례가 끝나고 가장 시원하게 느껴졌던 뒤풀이는 외가 쪽 고모할머니 에서 일어났다. 듣기론 고모 할아버지가 워낙 왕성한 바람을 피워서 가족들이 모두 고생을 했다고 한다. 준수한 외모와 화끈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 여자들과의 염분질에 고모할머니가 이래저래 속이 말이 아니었던 듯했다. 어렸을 때의 기억으론 사십대로 보였던 할아버지와 할머니 모두 젊었는데, 할아버지가 의자에 앉아 비스듬히 할머니를 내려다보며 뽐내던 말투를 기억한다.


“못난 니를 내가 데리고 산다!”


정말 끗발 나는 자부심이었다. 난 수박을 한 입 물으면서 그 이야기에 입 속의 씨를 을 뻔했다. ‘할도 잘난 건 아닌데요.’ 나한테는 할아버지가 아무리 잘 생겼어도 나이차도 많이 나고 같은 계열 사람이니 당연히 매력적일 수 없었다.

  


서울 살던 우리가 집으로 놀러 가면 고모할머니는 이모들과 삼촌한테 우리를 데리고 놀러 나가라고 했다. 언덕길을 올라 용두산 공원에도 가고, 구불한 도로를 지나 광안리 바다 풍경을 바라보며 이모들의 손을 잡고 자갈치 시장에 구경 나갔다. 난 외가에 가는 걸 좋아했다. 바닷바람이 느껴지는 부산에 가면 소똥 냄새와 사람들로만 바글거리던 친가보단 눈도 즐겁고 짠내 나는 해양 도시의 부유한 생활을 볼 수 있었다. 정이 많은 사람들이 ‘가시나’ ‘머시매’ 이렇게 말해도 욕 같지 않았다. 괜히 사투리를 배우고 싶어서 이모들의 말투를 따라 하곤 했다. 그랬던 부산은 일본에서 이모할머니께서 오셨을 때 가족들이 간 게 가족모임의 마지막 회동이었던 거 같다. 그때가 중학생이었으니 그 이후로는 부산에 친척을 보러 내려간 적은 대학교 때 막내 이모가 결혼했을 때 빼고 없었다. 그리고 부산은 2002년 부산국제영화제 때 일하러 간 이후로 이십 년 넘게 가지 않았다.




고모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부음을 듣고 통화를 했는데, 이모의 목소리가 즐겁게 들렸다.


“어머니하고 오빠하고 언니들 모두 노래방 갔다 왔어. 두 시간 동안 미친 듯이 노래를 부르고 속이 시원해졌다. 잠도 잘 오니 걱정 말아."


그때가 한창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이 인기 폭발할 때였다. TV 드라마를 보지 않았던 터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노래방 씬이 최고로 재미있었다고 그랬다. 난 고모 할아버지의 죽음 위로 불려지는 탬버린이 섞인 최신 가요를 상상하며 이것만큼 유쾌한 이별송은 없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도 노래 듣고 즐거워하셨을 거 같다. 떠나가는 사람도 부르는 사람도 속 시원한 그런 이별이라니 너무 좋은데! 곧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 고모 할아버지 돌아가셨어. 그런데 장례 후에 모두 노래방에 가서 두 시간 동안 노래 불렀데. 할아버지가 바람도사였잖아.”

“정말? 그래도 돼? 완전 웃기다!”

“그러니까 너도 아버지 돌아가시면 노래방 가서 한 세 시간 노래 불러라.”

“하하하. 나 음치인데.”


정말 친구는 들어줄 수 없는 음치였다. 그래선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그래도 얽혔던 굴레가 끊어지면서 얼굴은 편해졌다.


남자든 여자든 아이들 놓고 바람피우는 건 별로다. 이별하고 새로 사귀는 건 뭐라고 안 하는데, 다리를 걸치고 여기저기 빨아대는 줄줄이 사탕은 난감하다. 아님 결혼하지 않고 즐기시던지, 양손의 떡을 쥔 사람들은 죽으면 저승에서 노래방표 이별송을 듣게 될 거다.



자, 그럼 바람둥이들.

노래 듣고 웃으면서 안녕히 주무세요!





[FAREWELL, GOOD BYE!] 2024. 4. 5. PROCREATE IPAD. DRAWING by CHRIS




한식(寒食), 청명(淸明) : 이별과 그리움


오늘은 4월 5일이다. 나무를 심는 식목일이자 한식(寒食)이고, 어제가 4월 4일, 청명(淸明)이었다. 어렸을 땐 식목일 행사도 했고, 별도로 '한식'을 보내고 '청명' 절기도 지냈다. 요즘엔 식목일이 쉬는 날이 아니어서 그런지, 한식의 의미 또한 거의 사라져서 그냥 아무 날도 아닌 날이 되었다. 한식(寒食)은 차가운 음식을 먹으며 죽은 이를 기리고 산소에서 제사를 지내거나 성묘를 하는데, 설날, 추석, 단오와 함께 4대 명절 중에 하나다. 중국은 설날(춘절), 추석(중추절), 단오, 청명이 4대 명절이다.


한식(寒食)청명(淸明)날짜가 겹치기도 하고, 하루를 두고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청명은 24 절기의 봄에 속하는 다섯 번째 절기 중 하나이며, 한식은 중국 진(晉) 나라 충신 개자추(介子推) 전설에서 시작된 동양권의 큰 명절이다. 둘 다 모두 동양 문화권의 계절적인 시간 개념의 시작과, 죽은 개자추를 기리는 문공(秦文公)의 절실한 후회와 그리움이란 이별 의식의 영향을 받는다. 이런 모든 의미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하루는 하루이고, 절기는 절기이며, 명절은 명절일 뿐이다.  


 


중국은 청명절(清明节)을 죽은 사람을 기리는 중요 명절로 여긴다. 요즘은 북경이나 상해 같은 중국의 대도시에서는 청명절 분위기를 느끼기 어렵다. 십 년도 더 된 것 같은데, 한 번은 북경의 후통(胡同) 밤거리를 걸을 때 지전 태우는 모습을 보고, 그날이 청명임을 알았다. 너울거리는 불꽃과 종이냄새가 좋아서 한참을 지켜봤었다. 예전엔 저승길에 노잣돈으로 쓰라고 지전(紙錢)태우는 청명절 밤이면, 골목골목 종이돈 태우는 냄새로 가득했다고 한다. 올해의 청명절은 지난 코로나 시기 많은 사람이 세상을 떠나서 그런지, 그들을 기리는 휴가 삼일이나 된다. 거래처 친구도 코로나 끝물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올해는 아버지를 편안하게 보내러 간다고 고향에 일주일간 다녀온다고 했다.   


북한에서도 4월 4일 청명절을 지낸다. 가끔 매스컴에서 북한 말을 들으면 왜 저렇게 이질적인 단어를 쓸까 했는데, 중국어를 배우고서 중국말을 직역하면 북한말과 같음을 알게 되었다. 분단 이후 중국과 북한은 의형제처럼 정치 경제사상도 같이 하고, 언어도 비슷하게 쓰고, 명절도 비슷하게 보낸다.


그러나 북한의 청명절은 나무를 심거나 죽은 이를 기리는 성장이나 반추(反芻)의 의미보다는, 이념적이고 계획적인 휴일이다. 북한은 1860년 천도교를 세운 동학(東學) 최제우 선생이 깨달음을 얻은 날이라고 해서 청명절을 반제국주의와 반봉건주의 운동의 중심인 농민공, 즉 인민의 휴식일로 제시하고 있다. 동학농민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는 19세기 반제 반봉건운동의 근간이 된 천도교는 20세기 북한에서 정치사상의 근간으로 변용되었다. 소련무장항일단체의 독립군이었던 김일성은 경천사상(敬天思想)을 바탕으로 하는 천도교(天道敎)가 유교와 불교, 선교를 흡수한 독창적인 민족주의 종교사상임을 간파하고, 혁명과 건설의 주인이 되는 농민공, 즉 인민대중이 주체가 되는 주인의식을 삽입하여 북한색의 주체사상으로 완성하였다. 그러나 독립적인 주체들이 백두순혈의 혈통을 따른다는 수령제를 삽입하는 바람에 반제 반봉건이 아닌 독재순혈주의로 편협하게 바뀐 것은 논리적인 정치이론설계에서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했다. 따라서 북한의 청명절은 뭔가 어설픈 짝퉁처럼 형성체계가 엉성하면서 공감이 안 되는 휴일이다.





중국 사람들이 우리도 청명절(한식)을 쇠는지, 단오절을 쇠는지, 추석(중추절)이나 구정(춘절)을 쇠는지 물을 때마다 곰곰이 생각한다.


"우리도 다 지낸다."


아니라고 하면, 그때부터 설명을 해야 한다. 예전엔 성심성의껏 모두 답을 해줬는데, 요즘엔 그런 모든 게 귀찮다. 사실 지내고 싶은 사람은 지내고, 안 지내고 싶은 사람은 안 지낸다. 우리는 '명절을 쇤다'라고 한다. 그들은 '절기를 과거로 보낸다(过节)'고 한다. 가끔 쉰다(REST)고 하는 것처럼 들리는 휴일과 같은 명절은 어떤 의미가 되고 있을까. '쇠다'는 어떤 날을 맞이하여 보낸다는 뜻인데, 무언가를 그리거나 기리는 것조차 힘든 요즘인가 보다. 특별하지 않아도 혹은 특별해도 언제나 하루는 어느새 과거로 다리를 걸쳐 넘어가고 있다.



모두들 평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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