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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Apr 10. 2024

COSMIC BATTLEFIELD

Supreme Commander Strategy. 知彼知己, 百戰不殆

[OPTIMAL NUMERAL SYSTEM DESIGN] PROCREATE IPAD. 2024. 4. 10. DRAWING by CHRIS


나는 전자 게임과는 맞지 않는 성향이다. 알까기나 장기는 좀 둔다. 바둑은 우주의 0과 1처럼 흑백으로 패턴을 펼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상대를 두고 하는 게임은 흥미가 없다. 이기고 지는 보드게임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진법을 만드는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유는 실생활에 써먹을 데가 없다. 신체가 무기가 되는 오지의 공간에서 서바이벌 전투를 벌이거나, 전쟁을 직접 지휘하거나 전략을 짜는 입장이라면 병법을 완파하고 진법의 형태를 고민하여 개성적이고 효율적인 타격방법구상했을지도 모르겠다.


고독한 테트리스(TETRIS) 건, 떼거지 온라인역할게임(MMORPG) 건, 전술게임 스타크래프트(STARCRAFT) 건 실감이 없어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간단히 머리를 굴려봐도 빛과 전기 자극으로 완성된 게임형 시뮬레이션(Simulation)과 우주공간에서의 실제 전투(Actual Combat)는 극과 극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시뮬레이션적으로 정신적 자극을 주는 부동형 게임과 달리, 중력을 상실한 공간에서 육체적 파워를 넘는 무게와 속도를 가지고 생명의 본질을 향해 전투를 벌이면 그건 정말 무모한 달리기에 그냥 평화롭지 않다.


전멸. 全滅, 안과 밖의 완전한 파괴.

물리적인 파괴와 전멸 Annihilation,  

감정적인 충격과 파괴 Devastated.


무협지를 많이 봐서인지 병법서를 많이 읽어서 인지, 어렸을 때 꿈에서 수많은 전투를 실행해 봤다. 그런데 죽고 죽이는 싸움은 엔도르핀을 부르기보다 무력감을 불렀다. 어느 날 심하게 다쳤을 때 내 몸에서 피가 빠지는 것을 관찰해 보았다. 상처로 인해 살갗이 터지자 진공상태의 공간이 개방되면서 중력이 몸속에서 혈관을 타고 단시간에 액체를 속도감 있게 몸 밖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수 초 안에 뇌와 연결된 시신경에서 자극적 운동성을 지닌 압력에 의해 급격한 현기증이 올라왔다. 동시에 눈이 뻑뻑하게 건조해지고 이명이 찾아오며 침샘이 마르면서 목이 당기는 탈수증상이 동반됐다. 정신적으로는 약간의 멍 때림과 표피의 구멍에서 자잘하게 비명을 지르는 듯한 소름 돋는 환상을 경험했다. 그러나 타인의 몸에서 피가 빠지도록 타격과 자상이 실행되는 것을 바라보면 부신피질호르몬이나 아드레날린이 발생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뇌에서 참을 수 없는 구토가 올라온다. 그것은 역겹다는 기분을 생성하고, 좋지 않은 일이라는 인지감각을 건드리면서 큰 충격을 가져온다.


타인에 대해 파괴를 일삼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은 심장이 아니라 확실히 뇌에 문제가 있다. 뇌는 모든 기관의 호르몬을 관장하고 있기 때문에, 어린 나이에 뇌하수체의 분비에 충격이 갈 만큼 어떤 사건을 겪었다던지, 지속적으로 학대를 당했다던지, 인식을 바꿀 만큼 반복적인 수치감을 얻으면, 부정적 경험에 의한 호르몬 조절능력이 상실되며 비정상적인 억제와 분비를 통해 평범한 인간도 사이코패스가 될 수 있다. 나 또한 차갑긴 하지만, 다행히 인간에 대한 자각과 삶에 대한 자성은 있는 편이고, 다른 사람과 달리 호르몬의 움직임 보다 감각과 연결된 뇌 기능이 자동적으로 좀 더 빨리 돌뿐이다. 이것이 타인과 다른 표현의 문제를 야기하는 것 같다.


우리가 갖고 있는 이미지는 학습의 효과이다. 아이의 울음이 꼭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는 언어가 학습 이전이므로, 배가 고파서, 똥을 싸서, 가려워서, 졸려서, 축축해서, 그냥, 무심코, 나도 모르게 터지는 하품과 같은 반사적 응답 형태를 띤다. 따라서 타인들과 다른 감정적 언어로 빠져버린, 어찌 보면 감정의 초보자인 나에게는 행복하다는 것이 웃음을 의미한다거나 슬프다는 것이 눈물을 흘리는 것과부합하는 설명이 아니다. 즉, 꽃이 아름답기보단, 나는 꽃을 보고 어느 시점에 아름답다잠시 생각하는 것이다. 오분도 지나지 않아서 꽃을 싫어할 수도 있다. 이건 변덕이라기보다 그냥 그렇다.


꽃도 자기가 예쁘다고 평가하지는 않는다. 꽃은 꽃일 뿐이다. 자신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혹은 나와 어울릴 것 같다면서 의사를 물어보지 않고 가끔 그들의 관점에서 좋다고 하는 것을 보내올 때면 부담스럽다. 그것은 내가 현재의 시점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 좋아할지도 모르지만, 상대의 의견이 반영된 이며, 그건 내가 아닌, 상대의 주관을 반영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가끔 순간의 기호와 맞을 때는 쓰고 고마워한다. 그러나 대부분 파리 날리거나 먼지 앉을 때가 많아서 사용하지 않는 것은 친밀도에 따라 시간을 길게 잡고 폐기처분의 수순을 따르곤 한다. 아님 선물한 자에게 스스로 정리하도록 되돌려준다. 따라서 선물이나 이벤트는 아예 받고 하는 게 최고이다. 그런데 실전과 이론에 관한 전쟁 이야기를 하다 보니 삼천포로 빠지고 말았다.  여기까지 온 거지?




그러니까 한마디로 우주에서 전투를 실행하기 이전, 우주의 시공간에 대한 분석과 입자의 속성에 대한 일반적 설명을 개요 풀이한 것으로 보면 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의 상대성 이론(Theory of Relativity)을 인간사(Human Being Life)에 대비해서 쉽게 설명하고 싶었는데, 개인적인 학습강도에 의해서 모호하고 어렵게 들릴 수도 있다. 스스로의 본질에 관심 없는 사람은 동공에 지진날 수 있다. 사실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조용하게 물리적인 심신수양한다고 보면 된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우주와 관련된 용어와 살상무기 및 우주선 등 모든 장치적 속성의 공용어가 영어여서 어렵게 들릴 수 있다. 지금부터 영어를 무자비하게 써야겠다.


개별적 인간(Individual Human Being)을 입자(Particle)로 가정하고, 인간이 속한 공간으로 시선을 전환한다. 다양한 운동방향(Direction of Movement)이나 결합방식(Combination Method)에 의해 단순한 원자(Atom)나 그보다 작은 소립자(Elementary Particles)나 그 이상의 포뮬러(Formula)를 취하게 되는 개별적 존재(Existence)들은 사회(Society)라는 공간(Space)에 놓 있다. 우리는 성장과 소멸(Growth and Decline)로 규정짓는 시간적인 스펙트럼(Time Spectrum) 속에서 상대적(Relative)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내부의 감정적인 중력(Internal Emotional Gravity)을 받는다. 더불어 공간 속에 늘어진 시간(Time)에 의해 일시적으로 발산된(Temporary Divergence) 빛(Light)들과 지식이라는 무게감(Weight of Knowledge)과 타자(他者, Outer World)를 바라보는 관점(View Point)을 형성하게 된다. 그것은 모든 인간을 하나의 분자식(Molecular Formula)으로 설명할 수 없듯이 개별적(Indivisual)으로 모두 다르다. 개체적인 속성(Specific Attributes)을 타고난 우리는 하나하나가 결코 동일할 수 없으며, 조금 더 분포를 확장하면, 가변적(Variable)이고 유한한(Finite) 육체(Physical Body)라는 인간의 껍질(Outshell)을 안고 있기 때문에 이 모든 본질을 설명하는 공식도 모두 파괴되는 예외성(Exceptionality)을 안게 된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반박하고 뛰어넘는 여러 가지 과학적인 시도가 있었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설명이 안 된 이유는, 인간이 바라보는 우주적인 세계(Cosmetic World)에 대한 본질적인 해석은 수학과 화학, 물리뿐만 아니라 본체인 인간, 다시 말해서 포인트가 자기본위로 돌아온 인문학과 철학에서도 동시에 진행되지 않고는 온전히 설명될 수 없는, 절반의 이해이기 때문이다.



전쟁에서의 시뮬레이션과 실전은 우리가 한가롭게 생각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게임에서 총을 쏘는 것과 달리 실전에서 총을 드는 것은 인간의 실존적 무게감에서 비교할 수 없는 상처와 폐허를 경험하게 한다. 파괴와 지배적 속성을 자극하는 오락은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한판의 게임처럼, 재미와 욕망으로 권력을 잡기 위해 극적인 언어로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선동을 일삼는 사람들은 사코패스보다 더 위험한 종자들이다. 이미 북한은 선을 넘었기에 거긴 예외로 치고, 우리들이 고민할 것은 미친개를 길들이는 방법이나 혹은 길들이기 어려울 땐 효율적으로 개들만을 사살하고 공간을 획득하는 전략을 짜야한다. 살아있는 동안 지금보다 좀 더 넓은 공간에서 개들에게 착취당한 사람들과 함께 안락하게 삶을 누리고 싶다면 말이다.


知彼知己, 百戰不殆. 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不知彼, 不知己. 每戰必殆.

지피지기, 백전불태. 부지피이지기, 일승일부.

부지피, 부지기, 매전필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험하지 않다. 적을 모르되 나를 알면 한번 이기고 한 번은 진다.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면 매번 싸움마다 위태하다.


자아에 대한 탐구와 타인에 대한 연구는 어쩔 수 없이, 원래 해야긴 했지만, 타인의 몫까지 짊어진 종합선물세트 인생사령관의 역할을 얻게 된 이후로 꾸준히 해 왔다. 정치적이거나 공격적인 습성의 인간은 아니었는데, 해야만 한다면 일단  감정적인 사람들과 달리 상황파악은 빠른 편이다. 책임 있는 역할을 하는 것이 힘들긴 하다. 왜냐하면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나로서는 내 안의 소리와 일치해야 하기 때문에 불일치만큼 무거운 질책없다. 불일치란 곧 정신의 파멸 혹은 종말과 같다. 아마도 엄격한 감정적인 억제나 조절은 삶에 대한 정립도 되기 전에 급하게 맡게 된 역할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시뮬레이션 이론과 실전의 차이, Theory of Simulation and Practice>, 인생의 경험을 녹여서 전투 전략을 짜긴 해도, 모든 것이 얽혀있는 유기적 세계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없다. 그저 생성과 소멸, 0과 1의 반복일 뿐이다. 생활의 전략 짜는 데 달인이 된 최고사령관의 생생한 실전 경험을 살포해 본다. 생존을 고민했던 고대부터 지금까지 이 생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지피지기(知彼知己)가 기본이다.


각자의 삶은 각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 자신의 삶에서 그 모두가 최고사령관이다. 남의 의견은 참조만 하되 스스로 신중하게 결정을 내리고 각자 그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사람들이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을 남한테 전개할 때마다 누릴 것은 다 누리고, 몸만 빠져나가려는 야비한 습성을 본다. 누구 탓할 것 없다. 예상치 못한 상황까지 온 것은 내가 인식했든 하지 않았던 이미 전개되었고, 미리 내일을 보지 않고 그냥 현재에 매몰되어 살았던 무관심했던 나의 탓이다.  


기본적으로 나는 중립적인 포지션을 지니고 있다. 정신적으로 잠시 정지할 수 있고 미동 없이 나에게 몰두할 수 있는 균형점을 가질 수 있다. 싸우지 않고서 상대와 손을 잡을 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의 정치 외교술이며, 피 흘리지 않고 평화를 만드는 것이 최고의 전술 전략이다. 그러나 정지함을 깨는 여러 요소들이 있어 어쩔 수 없이 삶에서 흘러갈 수밖에 없다. 혹여 평화를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후대의 아이들이 계속해서 살아갈 이 삶을 지속시키기 위해선, 타인의 삶의 선을 파괴하고 무자비하게 짓밟는 사람들은 제거해야 한다. 살육에 대한 책임과 선택적 재편에 대한 부담은 모두 전략을 짠 사람이 진다.


모든 것을 내던지고 꼭 갑옷을 입고서 칼과 총을 들어야만 하는지 내적 갈등이 무척 심했던 최고사령관의 완전 최고급 비기(Strategy)의 핵심을 내놓아 본다. 누구나 사는 것은 다 힘들고 괴롭겠지만, 스스로 힘들 때마다 하나뿐인 인생은 온전히 나의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의 기본처럼, 매일 자신의 인생을 점검하며 써먹길 바란다.


"Know yourself and know your enemy, And you will win a hundred batt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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