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스탄과 이졸데》 사랑의 운명
리하르트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의 악극(Musikdrama), 오페라 <트리스탄>은 독일 중세시인 고트프리트 폰 슈트라스부르크(Gottfried von Straßburg)의 운문소설 《트리스탄과 이졸데 Die Geschichte der Liebe von Tristan und Isolde, 1210》를 바탕으로 대본을 썼다. 로맨스의 서사는 아서왕의 기사 중 한 사람인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전설을 소재로 한다. 사랑의 묘약 때문에 트리스탄(Tristan)은 숙부인 마르케(König Marke) 왕의 아내가 될 이졸데(Isolde)와 사랑에 빠진다. 이졸데는 예정대로 마르케 왕과 결혼하지만 두 사람의 만남은 계속되고, 그들의 밀회는 트리스탄의 친구 멜로트(Melot)의 배신으로 마르케 왕에게 발각된다. 트리스탄은 죽음을 결심하고 멜로트를 도발하여 그의 칼에 맞고 깊이 부상당한다. 충성스러운 종복 쿠르베날(Kurwenal)은 트리스탄을 브르타뉴에 있는 그의 영지 카레올로 데려가 간호한다. 하지만 배를 타고 이졸데가 트리스탄을 찾아왔을 때 트리스탄은 그녀의 품에 안겨 죽음을 맞이한다. 쿠르베날은 마르케 왕과 함께 따라온 멜로트를 죽이고 자신도 치명상을 입는다. 뒤늦게 도착한 마르케 왕은 조카와 이졸데의 사연을 알고 두 사람을 결혼시키게 온 것임을 밝힌다. 이졸데는 트리스탄의 시신을 바라보며 마지막 노래를 부른다.
온화하고 조용하게
트리스탄이 미소 짓고 있어
눈을 어찌나 다정하게 뜨는지
친구들아 너희는 안 보이니?
보이지 않아?
점점 환하게 그이가 빛나고 있잖아
별빛에 둘러싸여 일어나고 있잖아
보이지 않아?
그의 심장이
기운차게 부풀어 오르는데
풍성하고 고귀하게
가슴속에서 샘솟고 있는데
저 입술에서는
저 기쁘고 온화한 입술에서는
달콤한 숨결이
부드럽게 새어 나오는데
친구들아! 저걸 좀 봐!
너희는 느끼지 못하니? 보이지 않니?
내 귀에만 들리는 걸까?
이 노랫소리
이 놀랍고도
나직한 소리
기쁨에 겨워하며
모든 것을 말하며
온화하게 용서하며
그에게서 흘러나와
내게로 파고들어 오는
가볍게 울리며
사랑스럽게 퍼져
내 주위를 감싸는데
더 밝아지며
나를 에워싸는 이 소리는
부드러운 공기의 물결일까?
기쁨에 넘쳐나는 향기의 파도일까?
넘실거리며
나를 감싸며 출렁이는구나
숨을 쉴까?
귀를 기울일까?
마셔볼까?
가라앉을까?
달콤한 향기 속에서 마지막 숨을 내쉴까?
넘실대는 물살 속에
울려 나오는 소리 속에
세계의 숨결이 불어오는 우주 속에......
빠진다
가라앉는다......
의식이 없어진다......
지고한 쾌락이여!
운명적인 사랑의 근간에는 《로미오와 줄리엣》 이전에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켈트족 전설과 게르만 문화에서 전하는 중세 유럽의 전설은 철저하게 비극으로 종결된다. 서정적인 음유 시인들의 서사는 잠자는 심장을 두드린다. 마법의 묘약을 마셔버린 두 남녀의 엇갈린 운명, 그리고 거부할 수 없는 사랑, 방해받는 안식과 죽음으로 향하는 마지막 여정. 매혹적인 사랑의 여로는 한 배를 탄 운명의 인물들을 피해 갈 수 없는 격정으로 몰고 간다. 모든 이들이 갈망하는 사랑에 대해 풀이하던 고트프리트 폰 슈트라스부르크와 리하르트 바그너, 소설과 음악 사이에서 광대한 선율과 격동의 노래로 표현되었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서사시는 영화에서 종합적인 형태의 직관으로 화려하게 화면을 장식한다. 입과 입으로 구전되는 서술에서 상상이 가미되고 글로 변형되는 이야기는 그 위에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이 덧입혀지고 원대한 음악적 구성이 공감각을 끌어당기면 하나의 커다란 상상의 세계를 이루게 된다.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의 운명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세간의 관심을 낚는 넓은 그물을 활짝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