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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Apr 12. 2024

EXCUSE : EPOCHAL REGRET

[太宰治 だざいおさむ] 비잔, 眉山 びざん 시대유감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だざいおさむ Osamu Dazai)의 비잔(眉山 びざん)은 문필가나 화가, 시인 같이 일종의 예술적인 혜택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일상의 냉정함을 떠올리게 한다. 직업에 충실할 때 빼고 그들이 감정에 있어서 시간에 따박 따박 퇴근하는 회사원들과 무엇이 다를까. 글을 잘 쓰고 그림을 잘 그리고 영화를 잘 만들고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들은 모든 것에 ‘잘’일까. 아니, 오히려 길에 쓰러진 주정뱅이의 눈물이라도 훔쳐야 될 것이다.


얼굴은 평범하고 작은 키에 거무스름한 스무 살 초입의 아이, 초승달처럼 가늘고 아름다운 눈썹을 가진 여자에게 관심이 갈 때란 그 아이가 벌이는 이해 못 할 장난질과 뻔뻔스러운 농담이 흐를 때이다. 된장 밟은 비잔, 화장실을 오줌 바다로 만드는 비잔, 계단을 거칠게 쿵쿵 거리는 조심성 없는 비잔, 쓸데없이 여기저기 참견하고, 문학의 쥐뿔도 모르는 게 일설 하는 비잔. 술맛 떨어지게 하는 비잔. 소설이 밥보다 좋다고 떠드는 무리 중에서 비잔같은 부류는 도움이 안 되는 걸까? 책 한 권 제대로 읽기를 했나, 이해가 특출 나서 감동시키길 하는가, 피땀 흘린 산물을 무가치하게 만드는 비잔이라!


그런데 그런 아이가 신장 결핵으로 죽었다. 조금이라도 사람들 곁에서 말하고 싶어서 소변을 참다가 굴러가듯 화장실을 향해, 계단을 뛰고 된장독을 엎고 오줌을 퍼지르고, 고통스럽게 엉뚱한 질문을 하고 그랬던 것이다. 이해가 가지? 그러면 뭐 하나? 비잔이 겪은 아픔에 잠시 놀래도 그 행동의 연유를 알아서 측은하다고 고개를 끄덕여봐도 그 아이는 없다. 살아있을 때 다독여주지 못한 자신이 괜히 미안해져서 비잔이 시중들던 그 술집을 돌아서 다른 곳을 단골로 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일을 잊으려고 글발이 잘 받든 안 받든 술을 마셔야 하는 것은 여전한 것이고, 이왕이면 오늘의 탁주가 목구멍을 따끔하게 데게 만들지 않게 비잔의 유령이 출몰할 불길한 곳은 멀리해야 하는 것이다.


이게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변명이라면 화가 난다. 누구는 순간을 기억하려고 벌레처럼 열심히 웃었는데 그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고 모든 삶은 그런 거라 위로하는 사람들, 정말 질린다.



의미 없음도 무성의

의미 있음도 무성의

무성의와 무성의의 저 깊은 골짜기

나 둘러진 병풍 같구나.


산에는 초승달 하나

누구의 집 앞에 머물었는가.

파리한 그대의 미간 아리땁다면

폐병 걸린 아낙 입술 더욱 붉겠네.



<발이 부어서 기분이 퉁퉁한 것인지 어깨가 결려 마음 싱숭생숭한 건지>


2005. 4. 16. SATURDAY




[ACHILLES' SCREAM] 2004. MEMENTO SKETCH by CHRIS



하루종일 일을 처리하고 오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허탈하게 웃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어렸을 때는 같다고 쳤다. 나의 덜렁댐과 급한 성격은 자유를 찾기 위한 서두름이었다. 그런데 그 자유가 전혀 발동될 수 없어서 화가 난 기분을 퍼트렸다. 기분이 과하면 어깨가 무겁다. 나름 걷는 것을 좋아했으나 그 걸음이 뒤치다꺼리면 발까지 부었다. 그리고 자주 다쳤다. 몸도 주인을 닮나 보다.


일본 작가 중에선 다자이 오사무(太宰治)가 인간의 이해면에서는 취향이었다. 다만 생을 버리려는 자살에 대한 끈질긴 시도는 몸이 너덜거려도 어찌 되었든 살아야 한다고 보는 나의 입장과 달라서 그가 하는 말을 이리저리 살펴야 했다. 이 사람은 진짜 별별 방법으로 죽으려고 했다. 엄청난 부를 가진 집안의 내력이 그에게 당시의 사회가 추구하던 계급차이에 대한 괴리감을 안겨준 것인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의 자살이 영향을 준 것인지, 반복된 자살로 인한 내부의 상처와 파비날 중독이 깊은 우울은 주었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이 사람도 전쟁의 시대, 스스로 숨길 수 없는 광기에 사로잡혔던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내연녀와 동반자살은 좀 아니라 본다. 그녀한테 꼬드겨서 죽었을 수 있다고 치자. 온갖 방법으로 죽으려고 기를 쓰다가 결국엔 일생의 장을 지지면서 빗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리 죽든 저리 죽든, 죽으면 모든 게 부질없다. 다자이 오사무의 죽음에 대한 이유를 명명하니 '시대유감(時代遺憾 Epochal Regret)'이다.


일본 사람들은 무섭다. 죽으려면 곱게 혼자 죽을 것이지 혼자 죽긴 억울해서 아무나 붙잡고 같이 죽겠단 심보는 완전 물귀신 작전이다. 유약하고 정신상태가 엉망진창인 소설가들은 아무리 글을 잘 써도 취향이 아닌 걸로 결론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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