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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Apr 12. 2024

DAS LEBEN DER ANDEREN

타인의 삶,  The Lives Of Others for HGW XX/7

[The Lives Of Others] 2007. 4. 28. MOVIE IMAGE COLLAGES by CHRIS


이유를 알 수 없는 저 빛이 노래를 한다

감미로운 느낌이 그리워 참을 수 없네

사랑하고 싶어라

사랑하고 싶어라

그러나 아름다운 그대는 볼 수가 없어

듣기만 하고 다시 듣기만 하고



‘삶’이라는 단어만큼 나의 관심을 자극하는 말은 없을 것이다. 거기에 ‘타인’이라는 부제가 더해진다면, 그 모호함이 이끄는 미지의 탐험 속으로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자세를 바꾸고 거침없이 뛰어들 것이다. 나는 부모님에게조차, 혹은 형제나 친구에게도 서슴없이 타인이라고 지칭을 한다. 그들은 항상 듣기에 거북하고 섭섭하다고 말을 하곤 하지만, 서적처럼 딱딱해진 눈동자로 바라볼 땐, 나 아닌 다른 사람, 그들은 모두 타인이다.


사실 객관적으로 대상을 바라본다는 일은 어렵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이성이라는 형식에 맞춰 재단된 객관성을 포기하는 일이 아닐까? 타인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심심치 않은 갈등과 소요를 불러일으키는 감정의 통제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한 뭉치의 덩어리로 보였던 특정한 <타인>은 무기력한 나의 손을 그들의 삶으로 밀어 넣을 것이며, 그 순간 내가 알았던 세상은 형형한 색채를 쓰고서 침묵하는 성대를 덮칠 것이다. 이렇게 굴절하는 행동의 반향과 생각의 전환 아래서 끊임없이 생성되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다. 그 굴레는 인간이 세상에 가슴을 담근 이상 차갑고 쓸쓸한 길 위에서 방랑하는 고독한 정신을 계속해서 뜀박질하게 만들 것이다.


HGW XX/7. 극장 문을 나서면서 백지에 이름을 휘갈겼다. 기억하고 싶었다. 한동안 나른했던 시간을 ‘아름다운 영혼의 소나타’로 기꺼이 장식해 준 사람. 그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타인인 동시에, 주변으로 눈 돌리면 흔히 관찰할 수 있는 익숙하고 보편적인 타인의 얼굴을 갖고 있었다. 비밀하게 관심 있는 용의자의 주변을 맴도는 비밀경찰과도 같이 눈에서 번쩍하는 날카로운 섬광은 어디에다 쓰려고 그런 것일까? 사랑한다는 말조차 고백하지 못하고, 그저 눈에 띄지 않게 탐색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이름도 딱딱한 타인의 가면을 쓴다. 그 속에서 타인이 연주하는 매력적인 음악에 전율하고, 또 다른 타인이 나누는 사랑놀이에 흥분하며, 또 다른 타인이 꾸미는 일에 눈을 감고, 또 다른 타인이 슬퍼하는 일에 가슴을 저민다.


아! 서글픈 인생.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만나는 기회가 있을지라도 궁금한 만남은 영원히 궁금하게 놔두어야 한다. 타인이던 우리가 만나는 날은 우리가 이별하는 날이 될 것이다. 선택이라는 비밀병기는 인간사에서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삶을 훔치는 놀이에 지쳤나 보다. 영화가 끝나자 잠이 쏟아졌다. 눈을 감았고 빨간 소파 위에서 잠시 울었다. 근래 흘린 한 줄기의 눈물이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사랑을 느끼는 소심한 남자에게 샘솟는 이해의 동조는 사치스러운 감정이었을까?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귓속으로 뜨겁게 전해지는 전율은 사랑에 대해 되묻게 했다.


현실의 사랑은 예쁘게 그림을 그려 넣을 수 없는 더운 날의 입김과 같다. 달콤한 풍선껌은 공허한 헛바람을 불러 모아도 단물이 빠진 다음에는 심심한 입가에서 잠시 놀다 갈 뿐이다. 그래도 누군가를 바라보면서 진실한 감정을 간직할 수 있다면 단순히 희생을 강요하거나 무조건적인 사랑을 갈구하지 않고 자유로운 여행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겼다. 묻어버린 아픔이 지워지는데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비즐러의 건조함 속에 담긴 사랑의 의미가 자꾸 떠오르는 날이다.



마리아 A.의 기억 Erinnerung an die Marie A, 베르톨트 브레히트 Eugen Berthold Friedrich Brecht



파란 달이 뜬 9월 어느 날,

조용한 자두나무 아래에서,

나는 그녀를, 나의 조용하고 창백한 사랑을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꿈처럼 내 팔에 안았다.


우리 위 여름 하늘에는,

내 눈길을 끈 구름 한 점.

그것은 너무나 하얗고 아주 높은 곳에,

그리고 내가 올려다볼 때, 더 이상 거기에 없었다.


그 순간 이후로, 수많은 9월이

조용히 떠다니다가 흘러갔다.

자두나무들은 아마 벌목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내 꿈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것이다: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당신이 마음에 둔 것은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그러나 그녀의 얼굴: 나는 정말로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오래전에 키스했던 것만 기억한다.


그 키스조차도 오래전에 잊혀졌을 것이다.

만약 그 하얀 구름이 하늘에 없었다면.

나는 그 구름을 알고, 영원히 알 것이다,

그것은 순백이었고, 오, 너무나 높았다.


아마도 자두나무들은 여전히 거기에 있고 꽃이 피고 있을 것이다.

그 여자는 지금쯤 여섯 아이의 어머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하얀 구름은 잠시만 피었다:

내가 올려다보았을 때, 그것은 푸른 하늘 속으로 사라졌다.


2007. 4. 28. SAT.




한국을 떠나기로 생각하고 정리를 시작할 무렵에 봤던 영화 <타인의 삶 Das Leben der Anderen>은 잔잔한 파문이었다.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Krótki film o miłości : A Short Film About Love>과 비슷한 관음의 구조였으나 조금 더 농도 짙은 연인들과 고독한 개인과 예술가에 관한 이야기가 중첩되어 있었다. 독신녀를 지켜보던 말없던 수줍은 소년이 외롭게 커버린 느낌이었다. 기계적이고 차가운 남자가 다른 사람의 삶을 건조하고 분석적으로 바라보다가 어느덧 뜨거운 인간적 감정을 갖게 되는 이야기는 무엇이 사랑이며 관심일지 고민하게 했다. 본 지도 시간이 많이 지나버려서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영화를 보고선 가슴이 아팠고 눈물을 흘렸다. 이유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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