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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Apr 15. 2024

RESTLESS MIND

선택적 낯가림, SELECTIVE SHYNESS

[HANDSHAKE: RESTLESS MIND] DRAWING by PIERO FORNASETTI. DDP. 2017. 3. 19. PHOTOGRAPHY by CHRIS



악수는 자신의 손에 무기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뢰적 인사 방식의 한 형태이다.


"헉! 저기 전무님이세요."

-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아니, 악수하시면 어떻게 해요?"

- 왜요? 저도 대표인데?"


나이가 많든 연배가 있건 지위가 어떻든 성별고하를 막론하고 어렸을 때는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고개를 들고 눈을 마주친 후 악수를 청한다. 상대방을 해칠 이유가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상대방 손도 확인해봐야 한다. 갑자기 뒤통수 한 대 치면 어떡해? 어렸을 땐 조숙해 보이는 외모 덕택에 공짜 인사를 많이 받았다면, 나이가 들어선 어려 보이는 반전 외모 덕택에 명함을 내밀기까지는 도우미 레벨이나 비서 정도로 파악되곤 한다. 어렸을 때 나이 든 사람들 인사를 많이 받아서 지금 토해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실의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는 잘 지내고 있다. 인복과 먹을 복은 타고나서 일을 시작하면 벅적거리고 조용한 시간이 적은 편이다. 아마 인사를 잘해서 그럴 것이다. 새로운 이들을 맞이하는 순간에 나는 그들에게 진심이었다. 그래서 아이들한테 꼭 이야기한다.


- 다른 것은 안 해도 되는데, 다른 사람들한테 인사 바르게 하고 일기는 꼭 써라.


어렸을 때는 많은 사람을 알고 그들과 대화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좋았다. 함께 시간을 나누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많은 사람들의 스펙트럼에서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어려워짐을 발견했다. 내가 변해서 그럴 수도 있고, 상대가 변해서 그럴 수도 있다. 일단 내가 변했다고 보고, 상대를 봤을 때 그들의 말과 행동이 달랐고, 머리는 삭제되어 있었으며, 감정은 거짓이었고, 행동은 게을렀으며, 욕심은 가득하였고, 시선은 불투명했다. 낯가림이 없었던 나였는데, 갑자기 체기가 몰려왔다.


"왜 말을 안 해? 보니까 네가 나보다 더 낯을 가리는 거 같아."

- 그러게. 말하기 싫다. 네가 말해라.

"우리 완전 성격 정반대로 바뀐 거 같아."

- 그러니까. 다 귀찮네.


내가 얼마나 상대방의 진심을 보는지는 몰라도, 나 자신의 진실을 이야기하기 어려웠던 시절부터 현실에서의 이야기가 날카로워짐을 발견했다. 야외에서 자란 나는 사람들이 출몰하는 곳을 잘 알았고, 그들이 주목하는 포인트를 잘 안다. 그런데,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아마 워런 버핏처럼 주식부자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빅맥은 먹지 않고 빅맥지수(Big Mac Index)에 향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맥도널드에서 천 원짜리 커피를 마시며 말도 안 되는 시사를 콩닥거리는 족속들에 질려서일 수도 있다. 혹은, 이성을 넘어서는 높이의 감상적인 책과 영화, 그림을 많이 봐서 일 것이다. 그리고 괴이했던 현실. 한칼에 모두 베어버리지 않았던 내 젊은 날의 미련들. 최고가 된다 한들 나같이 속말이 많은 사람은 후회할 게 뻔했다.


새로운 곳에 가면 새로 사귈 사람도 많다. 금세 인연이 지어지고, 또 사람들은 관계에 매달린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친구들은 모두 관계가 끊겼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가던 시절, 내가 변하기 시작했을 때, 모든 것이 시작되었을 때, 그때 만났던 사람들과는 연락을 하고 있다. 그들도 다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내 인생의 한 자락은 함께 했던 사람들이라 이들에게는 낯가림을 푼 하루도 있었을 것이다. 그 순간이 지금까지 흘러서 서로가 그리울 땐 통화도 하고 시간이 되면 만나고 있다.


마음을 쓰는 친구들은 조금은 성격이 있다. 요즘 가만히 돌아보니 그들의 괴벽과 우울까지도 내가 흡수해 버린 것 같다. 이전보다 유연해지고 수더분해진 아이들을 보면서 뒤늦게 바람난 것처럼 심히 낯가림을 하는 나를 본다. 영어로 'SHYNESS', 단순히 부끄러워하는 것을 낯가림인 줄 알았더니, 애정의 발달단계에서 표시하는 영아의 낯가림은 생각보다 센 단어이다. 'STRANGER ANXIETY', 애착 대상 이외에 대상에 대해 공포나 불안을 나타내는 것을 영아적 낯가림이라고 한다. 


그런데 영아적 낯가림은 현재 내가 가진 낯가림의 정도는 아니다. 나에게 그다지 애착대상은 없다. 공포나 불안도 특별히 없다. 그것보다 일적인 상태 말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지 않는 사람들에게 나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귀찮아진 것 같다. 나는 현실에서 누군가를 사귐에 있어 부끄러움은 없다. 처음인데 저 사람이 나에 대해 무엇을 알겠는가? 나도 상대를 모른다. 쭈뼛거린 적도 없다. 기대감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짓궂어서 가끔 물끄러미 쳐다보면 남자들까지도 얼굴을 붉히는 편이다. 


그냥 나의 낯가림의 정도는 마음의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에서만 적용되고 있다. 마음을 이야기할 때는 솔직하게 부끄럽다. 힘들다, 아프다,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해본 적 없어서 그런가 보다. 괜히 약해지는 것 같고, 도움을 받아야 할 것만 같았다. 스스로 상황을 해결하고 모두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강박으로 연결된 것인가 싶기도 하다. 누구에게도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그 마음을 나한테만은 진실되게 보여줘야 하고, 그 상태를 나 또한 알고 있으니 한마디로 이것은 선택적인 낯가림(SELECTIVE SHYNESS)이라고 해야겠다.


나만 이런 고민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마음 나누기를 몇 년 간 하면서 다른 사람들 또한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도 모른다는 걸 알게 됐다. 갖가지 부정적인 감정을 내놓는 연습을 우리는 해본 적 없다. 나 또한 그랬고 나를 끈질기게 사로잡는 것들이 알 수 없어서 답답했다. 마음의 상태에 대해 솔직해지면서, 편하게 그 부정적인 부스러기도 놓아주기 시작하면서부터 감정에도 긍정적인 신호가 간간히 잡힌다. 모두를 알아야 될 필요는 없다. 자기 자신 하나 알기도 어려운 세상이니까. 그리고 스스로를 바라볼 시간도 부족하다.



"저기요? 잠깐만요!"


- '아, 다 귀찮네. 귀차니즘 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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