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너머에 앉아
소중한 사람들은 어디 갔는가. 앞에 서 있는 사람들 위로 울리는 저 노래는 무슨 연유일까. 연락을 하지 않으면 당장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나? 가까이 사는 것도 아니고 같은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매일 보는 둘레에도 놓여있지 않은데. 조용히 한 사람이 사라진 뒤 서로의 관계는 미궁으로 빠져든다. 오직 의미를 둔 사람에게만 남아있는 관계라니 많은 사랑을 퍼붓고 열심히 살았던 사람에게 데인 흔적이 깊이 남는 것은 삶의 법칙이다. 아파도 활발히 웃고 슬퍼도 즐거운 이야기를 말하면서 의식적인 예의를 지키는 게 서로의 심기를 다치지 않는 방법이라지만 형식에 개의치 않고 현재를 서술하다 보니 계속해서 얼굴이 어두워진다. 무언가에 익숙해지면 만성적인 피로가 자리 잡듯 겉으로 보이는 의연함은 가면으로 위장한 무심함이 아닐까 싶다. 무감각하게 살고 싶지 않기에 한번 더 가슴을 후려쳐 본다.
하루 울어주고 밥 먹고 인사하고 돌아가는 지인들과 탈상을 치르고 염을 하고 뼛가루를 만지는 가족들과 처음 만나는 가까운 죽음에 경기를 지르는 아이들과 멀리서 소식 듣는 별개의 제삼자에게 한 사람의 떠나갔단 의미는 같을 수 없다. 어렸을 때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사랑의 깊이만큼 슬픔에 못 이겨 똑같이 따라 죽어야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누가 죽든 말든 살 궁리를 하는 굳건함이 생긴다. 죽지 않고 질기도록 병들어 가는 뿌리에 심장의 발굽이 갈라지면 굳은살과 피딱지가 많아도 놀라지 않는다. 애정, 돈, 병, 쇠퇴, 변질, 상흔, 망각. 짜증스럽게 재미없는 드라마다. 능숙한 삶의 조련사처럼 쓰레기 같은 삼류소설의 소재를 정감 있고 사랑스러운 주제로 바꿔서 평범하고 무덤덤하게 이야기하는 습관을 길러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이 무심한 감상이 왜 거짓말 같은가.
근육이 뭉치고 아팠다가 아무 느낌이 없다가 막연한 대기상태로 지내는 공허함이 가득하다. 무표정하게 웃다가 밋밋한 술과 적막한 어둠에 빠져있었다. 취하지 않은 허기와 반복되는 죽음 속에서 격렬한 감정과 지울 수 없는 상처만으로도 빛을 보지 못했던 살은 타오른다. 담배와 커피, 먼지와 알코올, 피와 샹차이의 냄새가 익숙해졌다. 강인한 팔뚝을 가지고 있는 기억과 학습된 언어들. 말은 하지 않아도 알아듣는 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괜한 집중을 불러온다. 인생은 멋진 드라마가 아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갈 곳 없는 저녁처럼 구질구질하다. 새벽 비를 타고서 강을 두 번 넘어갔다가 돌아오는 길, 삼 년 뒤에는 이곳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앉아있었다. 반가움이 빛바래서 약간 서글펐다.
2005. 4. 11. MONDAY
나는 어디를 갔다 왔을까? 누구를 만났는지 누가 떠나갔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난다. 이전의 이야기 중에서 쓰지 않은 절반은 사라져 있다. 자세하게 말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중간만 쓰다가 만 모양이다. 기억의 상실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날카롭게 갈라진 회상은 부메랑 같은 속도로 예고 없이 현재에 파고든다. 푸념 어린 다짐처럼 정말 삼 년이 되기 전에 한국을 떠나긴 했다. 잠시라도 숨을 쉬고 싶었다. 이곳을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하고선 마음속에서 계획을 굳혔나 보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면 이전의 내가 아닌 모습으로 살겠다고 다짐했다. 타인과 멀어지고자 하나 실제로 멀어지기 힘든 관계에서 습관적인 행위에 동요되지 않고 자기중심을 갖는다는 것은 어렵다. 살 사람은 계속해서 삶을 살아가야 하니까 의미 없는 중독에 매몰되어 있던 것들은 끊어버렸다. 다만 그 과정을 거치며 많은 것들이 의식적으로 사라져 버렸다. 물 냄새가 나는 바람 부는 언덕에서 눈을 뜨고 있으면 안구 주변이 시려온다. 삶의 어딘가가 비어버린 느낌이다. 그림을 그리려면 기억하는 연습을 해야겠다. 내일은 알 수 없지만 지금은 살아가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