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기반경영에 대한 단상
이탈리아에 가서 피자맛을 보고 부쩍 살이 올라 돌아왔던 한 지인(知人)에 의하면, 유럽에서 가장 한국인의 입맛을 닮은 나라는 이탈리아 같다고 했다. 얇은 도우에 토마토소스가 얹어진 피자를 매끼 먹으면서 거리의 예술품을 감상하느라 살이 붙은 지도 몰랐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다지 즐겨 먹지 않음에도 짭조름한 씬 피자가 연상되어 연신 입맛을 다셨던 경험이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직접 이탈리아에서 먹었던 피자는 지인이 설명하던 피자와 달리 크기도 컸고 지속적으로 먹기엔 단번에 물리는 맛이었다. 머릿속에서 상상했던 피자는 여행을 하고 예술품을 감상할 때나 들고 다닐 수 있는 비스킷 같은 형태의 간편한 피자였던 모양이다. 지인(知人)의 피자는 개인이 직접 겪는 현실의 사물과 이상에 머물러 있는 사물의 차이를 돌아보게 되는 계기였다.
예술과 권력의 커넥션에서 상권과 예술을 적절하게 결합시킨 메디치(Medici) 가문이 항상 언급되곤 한다. 우리나라에도 간송(澗松) 전형필 선생님이 계시지만, 억압받는 시대에 지키기 위한 예술은 확장과 변화를 추구하는 현대의 예술과 차이가 있다. 나는 댄 브라운(Dan Brown)의 소설 《다빈치 코드 The Da Vinci Code》에서처럼 범죄적으로 이용되는 예술품에 대한 흥미는 있지만, 학습으로 익혀 온 '위대함'이라는 단어와 르네상스 시기에 그려진 그림과의 상관성을 발견하지 못한다. 타인에게 의뢰 받은 작가의 그림은 자세히 살펴보면 상대에 대한 우상 뒤에 무언의 조롱을 현실화하는데 간접적으로 유용하게 쓰일 때가 많다.
우리가 오래 관찰하고 소장하고 싶은 그림 속에는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실존적 두려움과 권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나약함이 맴돌고 있다. 예술은 한숨과 절망, 풍자와 조롱이 가득할수록 그 의미가 새로워진다. 개인의 행복과 미적인 만족을 위한 것들은 타인의 고통 속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러나 등잔 밑이 어둡다고 급속하게 자본을 소유한 사람들은 자신이 갖지 못하는 것을 찾아낼 때 너무 먼 곳에서 가치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 흠이다. 현실에서 자기 존재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방법은 기나긴 시간을 뒤집어서 해석하고 살아온 길에 대한 이유를 나름의 색깔로 덧칠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나름 비슷한 음조와 화면 속에서 차이를 집어내기 위해 도식을 만들고 그에 대한 권리를 붙여놓는다. 물권을 거래하면서 새로움을 끌어내는 상대에 대한 호기심은 또 다른 창조에 대한 욕망을 낳는다. 낡은 것을 대체할 수 있는 거대권력을 꿈꾸는 사람들은 우리의 존재가 어둠으로 사라졌을 때의 두려움도 곱게 눌러버릴 공간을 확보하고자 한다. 원죄에 대한 속박을 현재에서 가볍게 덜어내고 싶은 마음에서 세상을 뒤흔드는 강력한 예술이 탄생하였듯이, 내부던 외부던 혼란이 극대화되면 놀라운 창의에 대한 압박이 터져 나오지 않을까 한다. 인간이 주도하는 경영 또한 예술의 숙고처럼 힘든 산고가 있어야 새로운 세계의 산업모델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는 기대감은 날려버리고 외부 상황에 휘둘림 없이 스스로 움직이기로 했다. 지난날을 거쳐오면서 스스로 만들어가면서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은 변함없다. 조금은 천천히 가겠지만 어떠한가. 흩어진 이야기들을 모아서 너를 그려내기 위해 가볍게 밑그림부터 그려본다.
2024. 2. 7. Wednesday
소소하게 가슴속 이야기를 꺼내겠다는 의지가 어느덧 누렇게 부풀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처음 생각이 씁쓸하게 곪지 않기를. 번데기가 저리도 꿈틀거리는 것은 최후의 나비가 아닌 어중간한 나방으로 취급되지 않기를 바라는 필사의 몸부림일지 모른다.
2014. 2. 18. Tues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