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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Feb 07. 2024

SHOW ME THE MONEY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그러니까 대표님. 보여주세요."

- 뭘요?

"지금까지 말씀하신 거요."

-어떻게요?

"그럼 기대할게요."


'하. 너무 부담스러운데.' 그들이 보여달라는 건 한마디로 마케팅 실력을 보여달라는 거였다. 직역하면 "한방 크게 벌게 해 달라"는 말이다. 판매능력을 갖춘 작가들이 얼마나 있다고 요구도 벅차다. 아닌가? 그들은 나를 한 업체의 대표로 보고 있었다.


얌전히 책상을 지켜야 하는 디자이너가 가판대를 지키는 판매사원으로 분하면 마이너스 요인이 될 게 분명하다. 너도 나도 디자이너에 사장님인 시대이지만 사실 디자이너의 작업은 잡무가 가득한 막노동에 가깝다. 발로 뛰는 시장조사와 트렌드 분석, 칼라맵 작성, 패턴 설계, 도식화 구성 같 서류 작업은 기본이다. 원단배치와 부자재배열 및 제작단계의 자잘한 관리부터 오류수정까지 종합적인 매니저의 역량도 필수적이다. 급할 땐 원래의 것을 해체하여 모든 것을 바꿔낼 수 있는 트랜스포머형의 만능 장인이 되어야 한다. 거기에 자신이 만든 작품이라면 제작의도 및 코디까지 설명도 할 줄 아는 세일즈의 달인이 되어야 한다. 즉, 아이디어 구상부터 제작, 판매, 애프터서비스까지 끝내야 제품의 흥망성쇠 순환사이클을 한 바퀴 돌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괜찮아. 살아있는 피노키오를 만든 제페토 아저씨처럼 나무토막을 제 자식처럼 여기는 진정한 제작자만이 작품에 한줄기 생명력을 불어넣게 될 거야.' 한바탕 손님들과 전쟁을 치르고 나면 낯 뜨거워진 볼을 만지며 말도 안 되는 기나긴 푸념을 늘어놓았다. 깜깜한 하늘을 쳐다보니 이십 대 어느 자락, 동대문 새벽시장에서 한 무더기의 옷을 팔던 시절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자기는 왜 여기 나와서 이러고 있어?"

- 겸사겸사요

"안 어울려."

- 그렇긴 하죠.

"그런데 믿음이 가."

- 뭐가요?

"그냥 판매사원 같지 않아서."


판매사원과 판매사원이 아닌 기준은 무엇일까? 쪽 팔리는 경험은 대박이 터지면 한꺼번에 모든 피로를 상쇄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얼굴을 드러낸 판매는 사람들에게 바라보는 이미지를 고착시키는 역효과를 주기도 한다. '시크하고 세련된 디자이너'라는 평가는 이십 년 전 '신비로웠다'라고 말한 그의 고백을 듣고 이별을 고했던 이유와 같은 말로 들렸다.      

 


속이 들끓어서 잠 못 이루는 날에는 육체적인 노동을 하고 나면 잠이 왔다. 생각 노동자보단 육체 노동자가 체질인가 싶었다. '아, 내가 직접 팔아야 해?' 직접 판매를 결심했을 때 문득 김기덕 감독을 떠올렸다. 확실히 막일에 익숙한 그의 거친 언어를 보고 있다 보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 김 감독은 잘 이해하지 못한 거 같았다. 사랑했던 남편에게 떠밀려 돈과 함께 익사했던 《백치 아다다》의 아다다처럼, '아'와 '다'를 반복하는 그의 절규는 기이하게 후두를 자극했고 목 아프도록 불러도 되돌아오지 않을, 소리가 제거된 메아리로 들렸다. <섬>과 <수취인불명>에서의 신경질적인 자극이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 잠시 편안해졌던 삶에 응시가 다시 <빈 집>에서 비틀린 뫼비우스처럼 신경질적인 그물로 얽혀왔다. 그의 의문과 집착에 숨이 답답해졌다. 난 일어나고 싶었기에 그의 비디오는 꺼버렸다.


아다다가 말을 제대로 할 수 있었다면 살아남았을까? 거칠지만 생기 있는 눈을 가졌던 김 감독이 마스크로 똘똘 입 막힌 2020년 겨울, 이름도 생소한 라트비아에서 코로나로 생을 마감했다는 뉴스를 듣고 잠시 침묵했다. 2002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스쳐 지나갔던 꽁지머리의 그는 젊었고, 주목받던 다른 감독들과 달리 혼자였으나 백치 아다다의 본명, '김확실' 그 이름이 생각날 만큼 날카로운 쇳소리의 눈빛을 지니고 있었다.


김기덕 감독과 한마디도 나눠보지 못했지만 짧게 서로 응시했던 순간이 지금도 기억나는 걸 보면 절박하게 하나만 바라봤던 사람에게 절벽에서의 선택은 양자택일밖에 없나 보다. 스스로 바다로 뛰어들거나 아님 그 하나에 떠밀려 살해당하거나. 어가 다른 세상으로 나가 말없이 자신의 작품을 비디오로 만들어 팔 정도로 용기가 충만했던 그 남자가, 윤리와 도덕을 뒤로하면서까지 외로움과 분노를 담아낸 억눌린 표현이 생의 전부였던 그가 바다를 건너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사실이 씁쓸했다.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어도 그냥 합니다."  


요즘은 체력이 바닥나서 피로함을 자주 느낀다. 명상을 하면 개운하기보단 다리에 쥐가 나서 풀고 싶은 욕구가 한가득이다. 요가를 '다시 해야지' 하는 마음이 드는 걸 보니 하기 싫은가 보다. 이래저래 흔들리는 나를 바라본다.


"넌 그래도 네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잖아."

- 부럽냐? 나처럼 살라면 그렇게 살 거야?

"아니, 그건 아닌데. 난 아직도 이렇게 사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 철이 없긴. 지금이 좋은 줄 알아.



친구야, 보이는 게 다는 아니다.


[BEYOND THE STARS] 2024. 2. PHOTOSHOP &   OPEN-AI DALLE·3 Prompt Design by CH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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