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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May 01. 2024

THE SHADOW OF REVOLUTION

TINA MODOTTI 티나 모도티, 혁명의 그늘

[TINA MODOTTI 1896-1942] PHOTOSHOP EDITED by CHRIS



사람을 평가함에 있어 단선적인 이미지의 편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개인들의 작품조차 소형화된 아이콘과 상품으로 인식되는 대중적 문구가 없다면 영향력이 축소되는 사회 내에서는 고정된 이미지 탈출은 힘들다. 나는 현세대에게 인기 있는 사람은 흥미롭지 않다. 뒷방에 앉아있지만 시간을 엇갈려 기 있었던 사람은 흥미롭다. 전기(傳記)를 읽는 것은 좀처럼 익숙하지 않다. 뒤로 미뤄두었다가 만나 볼 기회가 있다고 해도 지나친다. 나는 자전소설이나 자서전을 작성해 주는 작가가 따로 존재하는 대리자의 세상에서, 사실상황을 중요시하다기보다는, 시점을 벗어나 타인이 추적한 공간에 한 사람이 얼마나 담겨있을까 하는 의문에 허적대곤 한다. 개인을 기리기 위함이든 그가 처한 역사적인 위치를 정정하기 위한 발로이든 작자의 노력이 사실을 담았든 아니든 간에, 적은 퍼센티지의 진실을 말한 주인공보다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티나 모도티(TINA MODOTTI)도 그렇게 접근하고 싶었다. 그러나 소설가도 아니고 시인도 아니어서, 자신의 글 흔적을 소실시킨 그녀를 알려면, 사진이라는 대상에 접근해야 했다. 티나의 사진을 처음 본 때가 언제였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1991년 소더비(Sotheby's) 경매장에서 16만 5천 달러에 거래된 그 유명한 <장미 Roses, Mexico, 1924>나 그녀가 사랑한 꽃 <칼라 릴리 Calla Lily, 1924-26>가 아니었음은 확실하다. 멕시코혁명을 연상시키는 <망치와 낫 Hammer and Sickle, Mexico City, 1927>이 먼저였는지 물질노동사회에서 조종당하고 조종하는 대립적인 욕망이 얽힌 <꼭두각시 부리는 손 Hands of the Puppeteer, Mexico City, 1929>이 먼저였는지는 가물거린다. 수년 전이었는데, 망치와 낫을 보고 내 목을 베고 싶었고, 까칠한 손에선 심장이 손으로 변한 것만 같아서 한 순간 혈압에 짓눌렸다. 그녀의 사진에선 동료들과 진행했던 개혁에 대한 투쟁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지만 그보다 자신의 존재로서 인정받고 싶은 주체의 열망이 우선적으로 떠오른다.


그녀의 사진을 보면 그녀를 유명하게 만든 에드워드 웨스턴(Edward Western)의 초상사진이나 누드보다 좀 더 낫다든가, 더 잘 찍었다고 볼 수 없다. 작품의 비교는 친구 사이로 전락한 이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세상을 발현함에 있어서 작가의 표현하는 지향점이 다르다고 해야겠다. 부드럽고 따뜻한 톤의 인화지에 배여 든 빛의 흔적은 모도티의 이름을 기억하게 하는데 손색이 없다. 아이, 임산부, 장미, 칼라 릴리, 아치, 전화선, 유리잔, 사탕수수, 계단, 타자기, 낫과 망치, 옥수수, 노동자, 동물원의 독일인들, 예술인 동료들의 행진, 연인 멜라. 내용은 소박할 때도 있고 강렬할 때도 있다. 재료의 선택과 명암의 조망에서 흑백의 처리가 부드럽다.




당신에게 연락할까 말까 오랫동안 망설였습니다. 여기 오기 전에 가족 말고는 아무도 만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거든요. 그런데 며칠 전 나 자신이 혼자라는 것을 발견하고, <니나>를 다시 듣고 싶은 마음이 불현듯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들었는데, 그걸 듣고 있으니 지난 몇 달 동안 혼란스러웠던 삶이 조금씩 희미해졌습니다. 이곳을 좋아하면서도 자꾸 이곳을 떠나고 싶습니다. 나는 이곳에 너무 많은 기억을 간직하고 있거든요. 여기서 나는 계속 과거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조지 무어(George Edward Moore)는 “삶은 그 순간은 아름답지만 돌아보면 슬프다”라고 했지요. 그러나 내게 삶은 늘 슬픕니다. 현재 이 순간에도 난 과거를 느끼니까요. 나는 정말 퇴폐적인 정신을 가지고 있나 봅니다. 여기 살면서 그쪽으로만 마음이 쏠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원래 과거에 삶으로써만 우리 자신에 복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군요. 어쩌면 그것에 관해 같이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1922. 4. 7. 티나 모도티가 요한 하게마이어(Johann Hagemeyer)에게 보낸 편지>




티나의 사랑은 로보(Roubaix de l'Abrie Richey), 웨스턴(Edward Western), 멜라(Julio Antonio Mella) 외에도 무성한 소문들에 휩싸여 있었다. 나는 소문을 믿지 않는다. 요한 하게마이어에게 보낸 편지내용이 며칠간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마지막 장을 향해 그녀의 인생이 두께를 덜어가고 있을 무렵 희미하게 밝은 새벽이 다가왔다. 이슬을 머금은 창문에 이마를 갖다 대니 눈이 시원했다. 빛에 물방울이 어려있었다. 세수를 하면서 거울을 봤다. 턱 아래로 불투명한 세숫물이 눈물을 흘리지 않았음에도 내 눈물처럼 흘러내렸다. 슬픔이란 단어가 고질적으로 뇌수에게 들러붙은 것 같다. 나의 목소리가 밝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몰래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본다. 어쨌든 그늘을 외면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 풍족하게 자란 사람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비난받을 수 있겠지만 외모로 결정되는 개인에 대한 관용도가 종잇장보다 얇은 신뢰감을 안겨준다는 말에 수긍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독일로 도강하는 배에서, “미국에서는 美가 모든 것의 기준인 것 같다”며 불만을 내뿜던 티나. 남자들의 침대 속 환상에 갇혀 평생을 섹스 심벌로서 살아야 했던 마릴린 몬로의 운명에 앞서 저항한 여전사처럼 보인다. 결과적으로 실패한 고정적인 이미지와의 전쟁. 파괴적이고 유혹적인 팜므파탈의 이미지가 그녀의 연인, 멜라가 저격당한 것을 기점으로 그녀를 쫓아다닌 것이 안타깝다. 이로 인해 혁명의 우물에 더욱 자신을 혹사시키기로 다짐했던 게 아니었을까?


나는 공산주의 혁명이든 사회주의 혁명이든 민주주의 혁명이든, 혁명 속에 내재된 열의는 좋아하지만, 혁명이 내포한 실행의 냉정함은 좋아하지 않는다. 나와는 먼 이상이고, 따라서 티나의 후반기의 삶이 공산주의 혁명과 밀접하였지만 작품 생산을 재촉한 시절에서 자발적으로 빛나던 매력을 발견할 수 없었다. 사회생활에서 구호되는 그녀와 그녀의 이상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 같다. 사진들을 볼수록 시대와 상치된 그녀가 보인다. 누구인지 티나를 보고 그랬다고 한다. 


“사진을 찍는 모습이 굉장히 고통스러운 것 같았다.”


암실에 맺힌 상을 바라보려면, 세상의 빛나는 면에는 질끈 한쪽 눈을 감아야 한다. 진실로의 접근은 고통스러운 찡그림과 닮아 보인다. 사진의 객관적인 가치가 고급 리터칭과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액면보도의 사각 링에서 상상의 자리로 길을 터주고 있는 현재, 보여주는 이야기의 초점은 어둠의 상자에 숨은 자신을 향해 걸어가야 할 것 같다.


2005. 10. 2. SUNDAY




예전부터 대상에 대한 평을 보다 보면, 작가의 소리가 아닌, 타인이 한 단계 걸러 쓴 글들에는 감흥이 생기지 않았다. 나와는 참 다르게 보는구나, 저런 시선이 맞을까 되묻곤 했다. 책의 저술가는, 영화를 만든 제작자는, 혹은 그림의 작가는, 혹은 사진을 생산한 포토그래퍼는, 무엇을 보고 있기에 저런 표현을 하는 것일까 궁금했다. 물론 나 또한, 내가 만들어놓은 사물들의 의미를 알지 못할 때가 있다. 그냥 하루의 기분을 푼 것일 때도 있고, 심사숙고해서 의미를 담아보려고 한 것일 때도 있고, 밥 먹고 자는 일상의 자동발사처럼 심심해서 할 때도 있다.


인간의 사랑이든, 인공수정이든, 억압의 결과이든,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난자와 정자의 수정체로 결합되었으나 세상에 나온 아이는 부모와는 개별적인 존재이듯이,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 또한 개별적인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당대에 생산자가 실존할 때 그의 자식들이 자립하기 전, 대중에게 평가받는 것은 반박하기도 쉽지 않고 수긍하기도 어려운 일 같다. 존재가 부재한 상태에서 누군가 뭐라고 하면 이미 세상에 없으니까 신경 덜 쓰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냉철하게 시간을 꿰뚫는 작품은 이상하게도 시간과 부합하는 현실 속에서는 반응이 없다. 그러나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는 문제를 걸고넘어지니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것뿐, 시간의 누적 속에서 언젠가는 그것 또한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사진을 배웠던 이유는 힘들었던 시기에 감각부터 기억까지 매칭되는 연상이 사라져서였다. 세상으로 풀리면 무엇인가 해야 하는데 열의는 있으나 재능은 없고, 나중에 일을 하면서 언젠가는 나만의 작업도 해야 하니까 이미지를 건질 방법이 필요했다. 현재에서 부딪히는 기억은 이해가 가고 감정도 글자로 표현되지만 과거와 미래를 잇던 모든 사물들의 진행이 한순간에 동강 난 기분이었다. 다리가 끊기고 갈 곳을 잃은 존재는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근래는, 사는 게 바빠서 그냥 아무런 작업도 하지 않고 예기록들만 재탕하니 사물에 대해 편히 보는 여유는 생겼는데, 기술적인 발전이 없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기억했던 시기에 사람들의 평가에 비해 창의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지식적으로는 풍부할지 몰라도 삶은 이해하지 못했다. 하나를 주면 하나를 받고, 모든 것을 쥘 수 없다는 것은 삶이 알려준 원리이다.


"Imitation is the mother of creation."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이다. 


예전부터 창작(Creation)은 기존의 것을 뒤트는 수고스러운 작업을 하거나, 이미 길에 놓여 있었으나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서 보이지 않았던 풀꽃처럼 예민한 삶의 시각을 가진 자가 기존의 의미를 새롭게 재발견한 것이었다. 우리 시대의 정치적 제도와 민주적 전통과 기계적 산물과 음악적 계산까지 모두 모방에서 시작되었다. 지금은 하나의 대상에 각자의 색상을 가미해 기존의 것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신만의 창조적 세계를 여는 시대가 되었다.


아름다운 색이 가득한 사물도 그늘 속에 가리면 모노톤으로 바뀐다. 짙고 옅음에서 농도가 진해지는 것은 시간이 저물어갈수록, 누적된 세월에 다가갈수록 그 진가를 발한다. 내 인생의 혁명의 그늘 속에서 표현할 수 있는 세상을, 약간 흔적만 남은 포토그래픽 메모리를 발동해서 관찰해 본다. 오늘도 나는 깊숙한 기억의 감각에 가까이 다가가는 연습 중이다.





제일 갖고 싶은 것은 나의 머릿속에 담겨있다. 영상의 총을 발사할 때 관객의 심장에 정통으로 맞기를, 오늘 쏜 창작의 판단이 정확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속을 찌르는 통증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자신을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괴롭혔던 사람을 오래 기억하지 않던가.

2013. 6. 6. THURS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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