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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Apr 25. 2024

CHRONOCHROMIC KODACHROME

중첩된 시간의 색, 코다크롬 : 아날로그 시대의 종말, 네버엔딩 스토리

[CHRONOCHROMIC, KODACHROME] 2018. 6. 24. PHOTOGRAPHY by CHRIS


지금처럼 사진을 찍고 나면 바로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 시대에는 대상에 대한 좋고 그름에 대한 결정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지만, 예전처럼 결과물이 어떻게 될지 기다릴 수 있는 여유나 기대감은 사라져 있다. 어렸을 적, 난 코닥필름을 좋아했다. 아그파(Agfa)나 후지(Fuji), 코닥(Kodak) 중에 코닥이 가지는 따뜻하면서 부드러운 색감은 커피의 크레마(Crema)가 풍부하게 추출되기를 기다리듯이, 필름현상 뒤에 느긋하게 사진을 응시하며 시간을 되돌아볼 수 있는 여유와 만족감을 높여주었다. 어쨌든 개인적 추억과는 별개로 고사양 디지털카메라를 장착한 핸드폰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현상소들은 기업들의 대량인쇄물에서만 영업적 명맥을 유지할 뿐 일상의 영역에서 한걸음 물러나 있다.   


시한부 인생인 아버지와의 마지막 사진현상여행(Photographic Processing Journey)을 그린 영화 <코다크롬 Kodachrome>은 종군기자로 독불장군처럼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시니컬한 아버지와 대중음악을 만들어내는 음악프로듀서 아들의 대립각이 아날로그(Analog)와 디지털(Digital) 시대처럼 평행선을 그린다. 물론 예술적 가치를 따지자면 실재와 허구에 대한 가치를 평가할 때 연속적인 신호를 보내는 아날로그 쪽으로 기울긴 한다. 그래서 기한이 다한 생 앞에서도 자신만만하고 독선적인 혀를 가진 노쇠하고 희멀건 아버지를 이해한다. 부재한 세상에서 '돈이 되는 것은 예술가'라고 소급하는 말을 어찌 부정할 수 있을까.


"행복은 20세기의 전설 같은 거야. 피카소나 헤밍웨이는 행복했을까? 지미 헨드릭스, 다 보잘것없는 거야. 예술은 행복에서 절대 만들어지지 않아. 야망, 나르시시즘, 섹스... 공허함은 채울 수 없어. 우린 비참한 존재에 불과하지. 양손 가득 가짜 물건을 가진 적 있니? 아무리 좋아 보여도 진품을 능가하지는 못해. 디지털로 사진을 찍고 지우는 현재, 이 몇 십억만 장의 사진들. 슬라이드도 인화도 하지 않는 사진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후대들이 우리를 발굴해도 우리가 누구였는지 모를 거야. 데이터에 불과한 전자먼지들... 우리가 어떻게 살았고 누구였는지 모르는 거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후대를 만드는 이유가 종족을 이어나가기 위한 생물체 본능에 따른다는 학설을 따져본다면 아날로그가 낳은 분절된 신호의 디지털은 또 다른 변용으로 시대를 이어갈 것이다. 이 생에서의 소임이 끝나면 모든 것이 사라지기보다는, 추억과 맞물린 새로운 얼굴이 탄생하리라는 믿음을 가지는 희망찬 당신이라면 아마 윤회와 환생보다 더 확실한 인생을 선택하지 않을까.


2018. 10. 16. TUESDAY




포토그래피(PHOTOGRAPHY)는 '빛으로 그린 그림'이란 의미이다. 사진에는 재미있는 사실이 숨겨져 있다. 빛을 구성하는 공간이 변화하면 사물에 새겨진 각각의 온도가 그 순간을 달리 반영한다는 것이다. 디지털 기기를 통해 쉽게 올리는 사진들에선 발견하기 어려운 이야기이다. 빛과 반응할 때 발열하는 필름만의 온도가 있다. 그래서 감광하는 시간과 빛이 새겨지는 공간에서 색은 변검(变脸)과 같은 얼굴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후처리 한다고 해도 미학적인 관점에서 본질적 색은 남아있다. 물론, 타인이 제공하는 입맛에 길들여진, 민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발견하기 어렵다.


코닥 익스프레스(Kodak Express)라고 정말 코닥의 특급열차는 간판도 떼어버렸다. 삼사 년 전인가, 쇼룸의 초입으로 들어가는 모퉁이 길에 생긴 디지털 현상소는 아이들이 가발이나 분장을 하고, 혹은 코스프레를 겸해서 값싸고 빠르게 순간을 찍을 수 있는 놀이터였다. 코로나 말미에 열었다가 코로나가 해제되기 전 철수한 코닥 익스프레스는 지금은 간판까지 떼어버리고 임대 문구가 덩그러니 걸려있다. 현재 코닥은 상표권까지 팔아서 한국엔 코닥 어패럴(Kodak Apparal)이란 캐주얼 패션브랜드까지 등장했다.


한동안 세계의 자연, 지리, 문화, 시사, 역사, 우주, 과학적인 주제를 다루던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의 사진을 즐겨봤다. 사회과학과 자연탐구의 연구진들과 최고의 사진가들이 찍는 순간포착은 예술적인 사진 못지않게 시선을 끌었다. 어느 날 패션 섹션에서 '내셔널 지오그래픽' 이름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애들이 거금을 들여서 최신 대포를 들고 내셔널 지오그래픽 로고가 박힌 카메라 케이스 들면 장비빨보단 실력이 먼저라고 한 마디씩 했는데, 카메라에 대한 이해가 없는 이들이 입어도 되는 패션브랜드로 이름의 범용이 확장된 것이다. 이름만으로 혼동되지 않도록, 물질적 표현 상태는 디지털이란 그 이름처럼 문자나 신호로만은 알 수 없고, 다중적 노선을 탄 실재의 증명이 필요해진 시대가 되었다. 곰표 밀가루가 아닌, 곰표 맥주와 곰표 나초칩, 말표 구두약이 아닌 말표 초코빈과 말표 맥주가 익숙한 세대에게는 지나간 브랜드 이름이 무엇으로 불리든, 하나의 추억이든지 말장난인지 그것조차 중요하지 않다.   


쇠퇴와 변화를 거듭하는 세상처럼, 나의 이야기들도 시절을 거듭해갈수록 다르게 들린다. 같은 사물에 대해 보는 관점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다. 대상에 대한 어조는 달라도 변치 않은 것들은 아마 보는 방향이 같기 때문일 것이다. 기계도 만지기 어려웠던 시절, 두 눈과 연결된 감각과 기억으로 사물을 그리곤 했다. 지금은 손에 핸드폰을 항상 들고 다니지만, 간혹 홀연히 맨 몸으로 밖에 나올 때가 있다. 그럴 땐, 온몸으로 사물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공감각 눈꽃 사진기', 내가 살아있는 한, 나와 생을 함께 하겠지.




[MY Empathetic Snowflake Camera] 2004. 9. 3. NOTEPAD. MEMENTO SKETCH by CHRIS


심심할 때 자주 하는 놀이.

온 감각을 총 동원해서 맘에 드는 한 순간을 찍는다.
찰칵!

배고플 땐,

엄마가 만든 건포도 빵을 뜯어먹고
다리 아플 땐,

아빠의 목마 위에서 하늘을 보고
재미없을 땐,

오빠의 자전거 뒤에서 사탕 빨고
장난칠 땐,

장작불 위에서 메추리를 구워 먹고
답답할 땐,

거친 파도가 된 바닷가에 발 담그고
스릴이 필요할 땐,

호 아저씨 옥수수 밭에서 서리도 하고
음악이 듣고 싶을 땐,

학교 앞 레코드가게 모퉁이에 서 있고
손길이 필요할 땐,

콧 속을 스치는 그 사람의 살 내음을 맡고
쉬고 싶을 땐,

아스팔트 위에서 하늘 별 보며 잠을 자고
잠이 안 올 땐,

옥상에 올라가 애들하고 슈퍼맨 놀이하고
책이 보고플 땐,

친구 집 다락방에 가서 엎드려 책 읽고
영화가 보고플 땐,

조조 영화 보러 극장 앞에서 날밤 새우고
친구가 필요할 땐,

연극표 공짜로 얻어서 함께 보고

그림이 그리고 싶을 땐,

미술관 담벼락에 몰래 숨어들고

언제든지 꺼낼 수 있고 휴대가 간편한

공감각 눈꽃 사진기.
시간과 장소에 구애가 없는 초절정 슈퍼메모리.
배터리도 필요 없는 슈퍼 마력 에너자이저.

지금은 어떤 슬라이드를 펼칠까.
가끔은 조준이 실패할 때도 있듯이

희뿌옇게 흔들린 사진첩일까.
신나게 웃을 수 있는

선명한 추억의 폴라로이드일까.

공감각 눈꽃 사진기 안에 뭘 넣어 볼까.
어떤 인생을 담아 볼까.



2004. 9. 3. FRI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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