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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Apr 24. 2024

FLIGHT MOVIE

하늘 위의 영화 감상

[FLIGHT LOVE ON THE AIRPLANE] 2017. 3. 6. PHOTOGRAPHY by CHRIS


라라랜드 LALA LAND | 패신저스 PASSENGERS | 컨택트 ARRIVAL


우주로 날아가버린 연인들은 과연 무엇을 찾아 헤매는 것일까. 잠이 모자라는 생활 속에서 비행기를 타면 즉각적으로 영화를 보곤 했다. 그중에 <라라랜드 Lala Land>, <패신저스 Passengers>, <컨택트 Arrival>. 모두 다, 다른 형태의 사랑을 담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소중한 사랑을 잃고 상상이 현실이 된다 한들, 그 만족은 무엇을 향해 있을까?


시간을 걸쳐 별나라에서 별세계를 꿈꾸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이런 의문이 든다.


난 내가 꿈꾸던 이상에 잘 다가가고 있을까?


바쁨이 사라지고 난 후, 잠이 오지 않는 밤에 항상 되묻게 된다. 난 무엇을 찾아 헤매는 것일까. 너를 사랑하였다는 결론보단 너를 만나러 가고 너를 알게 되고 너와 함께 하며 보냈던 시간들의 총체가 나에게 중요하다. 언젠가는 당신을 잃게 되는 아픔이 생기더라도 내 삶의 시간이 담긴 경험과 추억이 나를 구성하고 있다면 난 불행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사람은 내가 살아온 시간을 바라볼 수 있는 거울과 같은 존재이다. 내가 타인을 바라봐야만 나를 보게 된다니 그처럼 아이러니한 일은 없을 것이다.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혼자 살 수 없나 보다. <라라랜드 Lala Land>는 과거를 돌아보는 슬픈 이야기였다면, <패신저스 Passengers>는 현재를 응시하는 덤덤한 이야기였고, <컨택트 Arrival>는 미래를 바라보는 슬픈 다짐과 같은 이야기였다. 눈물을 짜내는 신파극은 별로지만 가슴속을 뭉클하게 만들면서도 슬픈 이야기가 머릿속에 많이 남는다. 그래서 요즘 슬픈 영화가 당긴다.


2017. 4. 21. FRIDAY




내가 죽기 전에 가장 듣고 싶은 말 | The Last Word

'내가 죽기 전에 가장 듣고 싶은 말 (The Last Word)'은 부고기사처럼 정형화되어 구술된 특별한 삶의 일대기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아쉬움의 고별사나 함께 해서 고마웠다는 한마디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잔잔한 울림이 있는 세대의 조합 속에서 진솔한 에세이처럼 써 내려가는 나만의 이야기를 상상해 본다.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많다. 그림도 그리고 싶고 사진도 찍고 싶고 글도 쓰고 싶고 영화도 만들고 싶고 여행도 떠나고 싶다.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 나이 들어가면서도 새롭게 도전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기를 기대해 본다.



미스 슬로운 | Miss Sloane

확고한 신념에 따라 주저 없이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미스 슬로운.


"A conviction Lobbyist can't only believe in her ability to win."

“신념을 가진 로비스트는 그녀의 승리 능력만을 믿을 수는 없다.”


세상의 인식은 혼자서 변화시킬 수 없다. 타인의 마음을 얻고 그 속내까지 파악하여 상황을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능력은 이상적인 리더의 자질이다. 그러나 우리는 금전과 권력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의지로 누군가를 이끄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안다. 그래서인가 미스 슬로운(Miss Sloane)은 특별한 초능력을 발휘하지 않아도 원더우먼보다 더 초이상적인 능력을 가진 여인처럼 보인다. 타인의 일을 성공적으로 실행시키기 위해선 자신의 능력에 대한 신뢰 이외에도, 의뢰된 사안에 대한 정당성과 믿음이 수반되어야 한다.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현실에서 이뤄지기 힘든 초현실적인 재미를 가진 영화, <미스 슬로운 Miss Sloane>, 전문직업을 가진 슬로운의 고감도 스타일이 인상적이었다.   



겟아웃 | Get Out

굉장히 신선한 생선에 대한 소문을 듣고 혹해서 사 먹었을 때 평소에 먹던 생선과 비슷한 맛이 날 때가 있다. 그럴 때 약간은 왠지 모르는 실망감이 생긴다. 흑백으로 갈라진 사회에 대한 내외부의 자각을 B급 좀비영화 같은 구성으로 버무려놓은 <겟 아웃 Get Out>은 고민이 필요 없는 심플한 영화였다.


"Get out! Get out! You should get the fuck outta here!"

"나가! 나가! 여기서 쳐나가야 해!"


거친 욕설이 담긴 무리 사회에 대한 비난과 억압된 장소에 대한 탈출을 경고하는 외침 속에 이 영화의 주제가 담겨 있다. 내부의 진실을 보고자 하는 사람에게 떠나라고 알려주는 개조된 인간들, 두뇌가 제거된 그들에게 어떤 일말의 진실이 남아있을까. 우리는 자신이라는 주체를 잃고 가면만을 쓰고서 살아갈 수 없다.


2017. 7. 11. TUESDAY




칠 년 전에는 피곤한 순간에도 영화를 곧잘 봤다. 코로나 시기부터 방역의 이유로 제한된 극장을 찾지 않았고, 해외도 한동안 나가지 않았다. 작년 12월, 거의 쓰지 못하던 멤버십 포인트 사용하느라 한밤에 <서울의 봄>을 신청해서 영화관에 갔다. <서울의 봄>의 관객수가 천만이 넘은 것에 비해 영화관에는 1/10의 사람 밖에 없었다. 한 영화가 인기였을 때는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하게 붙어서 영화를 봤다. 뒤의 사람이 극장 좌석을 차거나 옆에서 팝콘 먹느라 바스락거리거나 앞에서 콜라를 마신다고 빨대로 음료를 부글거리면 예의 없다고 한소리 하곤 했다.


영화의 수익원은 주요한 극장매표수 합계와 2차 저작물 산업인 비디오테이프, CD를 발행하여 각종 도소매 배급라인에 배포하고, 공중파와 인터넷에 판권을 판 뒤, 관련 책이나 음반, 문구키트 등을 제작해서 유통하여 일차적으로 종합 결산을 했다. 이후, 각종 영화제에 진출하거나 해외 바이어와 직통하여 해외판권을 통으로 넘길 것인지, 아니면 협업할 것인지 고민하는 여러 작업이 있었다. 이제는 그런 일련의 작업들조차 모두 생략되고 일직선으로 영화영상의 제작과 배급이, 판매 수익원이자 최종 소비자를 소유한 넷플릭스(Netflix), 애플(Apple Plus), 디즈니(Disney Plus) 등 온라인 기반의 미디어기업에 집중되고 있다. 쿠팡이 편해서 잘 쓰고 있는데, 쿠팡 또한 쿠팡플레이(Coupang Play)의 콘텐츠가 디즈니만큼 다양하다. 점차 소비산업의 이종 콜라보는 자본을 소유한 대형 기업이 미디어와 소비산업을 모두 장악하는 추세로 변화하고 있다.        


필름 영화는 무조건 영화관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영화관은 넘어진 거대한 공룡처럼 더 이상 일어설 수 없게 부흥은커녕 공간 활용을 못하고 있다. 표가격의 상승과 함께, 실용성을 상실한 영화관이 꿈을 전달하던 시대는 지나갔나 보다. 실용성과 편리함, 다양성을 한 공간에서 줄 수 없다는 사실은 오프라인 기반의 거대 공룡산업의 파산이 곧 다가온다는 소리다.


디지털카메라 영화에 셀폰무비까지 혹은 카메라가 아닌 AI 프로그램으로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영화제작방식은 특정 지식인이나 기술인이 만들던 이야기가 평범한 사람들이 만드는 세계로 전환됨을 의미한다. 까만 글자와 하얀 백지만으로 누군가를 끌어당기기엔 시대가 많이 변했다. 그림이 없으면, 그림이 움직이지 않으면 젊은 사람들은 주목하지 못한다. 움직이는 모빌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글과 그림이 결합되지 않으면 시야가 반응하지 않는다. 따라서 미디어에 길들여진 젊은이들은 매체와의 사랑에 빠진 외따라기처럼, 단선적인 이야기를 보면 지루해하거나 현실적이지 않게 느낀다. 단어와 구호만으로도 주목할 수 있었던 이전의 시대와는 정말 달라졌다.


90년대 랩이 처음 나왔을 때 중얼거리는 리듬이 혼란스러워 힙하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에미넴(Eminem)이 출현했던 영화 <에잇 마일 8 Mile>의 주제가 [Lose Yourself]는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탈 정도로 에미넴의 비트 있고 음울한 목소리가 흡입력 있었다. 시궁창 현실과 혼란한 밑바닥 생활을 잘 표현했던 음성에도 불구하고, 영상을 보면서도 그 속의 그 자신을 담아냈다는 랩은 전혀 읽히지 않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내놓은 한국적 랩에도 그다지 반응이 없었기 때문에, 가끔 랩을 들으면 나는 언어적 재능이 없는 것인지, 아님 리듬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힙합은 알아먹을 수 없게 빠르게 치는 말소리가 세상에 불만 가득 찬 아이가 껌과 오물을 입 안에 한껏 넣고 웅얼거리는 것처럼 들린다.


명확할 수 없는 의사 전달, 극적인 화면 연출, 과격한 언어조합, 핵심만 뽑은 의미, 비트가 감흥적인 음악, 이런 것들이 어우러진 짧은 글들과 영상 언어가 난무하는 대에서 살고 있다. 숨 막힐 같다. 천천히 가는 좋다. 나는 옛사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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