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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Apr 26. 2024

CONTINENT POETRY

시(詩)로 쓴 대륙의 역사, 강희대제(康熙大帝)

강희(康熙)를 스승이나 웃어른으로 모시고 싶다. 시(詩)와 사(詞)에 능한 건륭(乾隆)은 친구로 택하고 싶다. 엄숙하고 무미건조하지만 부지런한 면에서 옹정(雍正)을 따를 자 없다. 나는 제왕들을 칭송하기 위해 글을 쓰기보다는, 독자를 위해 역사를 시(詩)로 쓸 뿐이다.


강희대제 康熙大帝, 이월하 二月河서문 序文에서 발췌




一. 작가(作家) 이월하(二月河)  


중국은 커나가는 대륙이다. 현재의 영향력은 개인으로 분화됐을 땐 사소하게 보일지 몰라도 군집의 형태로 변하면 그곳엔 거대한 힘이 도사리고 있다. 여타의 신생대국과 달리 중국이 보여주는 강한 자긍심과 유유자적한 태도의 저변에는 장구한 역사를 갈고 엎으면서 체득한 삶에 대한 다채로운 해석, 각 형세에 대한 기록적인 처세술과 역경을 헤쳐나가는 지략과 기지, 누런 강물과 먼지를 마시며 기억한 혈족에 대한 자립, 이 모두를 종합한 폐세포의 성토가 흐르고 있다.


이월하(二月河), 본명 능해방(凌解放)의 작명(作名)에서 보이듯이 그가 이월의 황하를 사랑한 이유는 얼음이 녹은 물줄기의 장대한 풍경 때문이라고 한다. 웅장하게 얼음을 밀어대며 흐르는 사구의 밀림, 반절이 모래인 하구에서 깨어난 물의 발아(發芽)를 따라가 본다. 이월하의 평이하나 매끄럽고 감칠맛 나는 문장은 가방끈이 짧다는 겸손한 발설(發說)과 사십 대 이후, 집필을 시작한 만작(晩作)의 약체에도 불구하고 제자백가사상(諸子百家思想)과 사서 史書를 독파했던 능력을 한족과 만족의 문화를 융합한 인물인 강희대제 위에 풍부한 사설로써 쏟아붓고 있다.


아직까지 내게 청()이란 국호는 변발로 상징되는 멋없는 차림새와 함께 정통 한족(漢) 왕조를 전복하고 이뤄낸 이민족왕조의 전복된 형상이 깊게 각인되어 있다.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나 진(秦), 한(漢), 수(隋), 당(唐), 송(宋), 원(元), 명(明)의 세기에 역사의 공과가 집중 조명되면서 민족적인 정통성을 강조해 왔던 지날 날 배움의 불균형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새로운 왕조를 세운 사대가의 쾌담회나 모의에 있어 인물들의 사기와 지세가 얼마나 호방하고 원대한 뜻이 담겨 있을지 의문을 지우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허나 강희대제, 옹정황제, 건륭황제, 삼부작의 첫 열쇠인 강희대제 康熙大帝, 장장 열두 권의 대의모략에 집중하면서 밤을 새도 호걸들의 잔치는 끝나지 않을 것임을 실감했다. 문학에 관한 집착만큼은 최고가 되고 싶다던 작가의 두꺼비 같은 맷집을 따라가다 보니 엉덩이가 함께 붙어버린 모양이었다.


애신각라 현엽(愛新覺羅 玄燁), 강희(康熙). 마지막 중국 왕조의 기치를 세운 황제, 청의 가장 번성한 시기의 첫 장을 일궈낸 주인공, 그 대륙적인 기세를 가까이 지켜보는 재미는 대단했다. 허와 실의 조율은 역사소설에서 독자의 눈으로 진실을 가늠하는 분기점이 되곤 하는데 이월하가 문장에 비춘 아름다운 시사(詩詞)와 유가의 진형(眞刑), 도가적인 수행(修行)과 불가의 선어(禪語), 한족의 문학적인 전통과 호족의 무술(武術), 제왕학과 잡학 등 한 나라에 드리워진 장대한 그림자와 조우해 보니, 고전적인 사서를 통해 정립된 포용적이고 민중적인 태도를 지닌 작가의 작법이 놀랍도록 강렬하게 과거로의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흐물흐물한 책 냄새에서 마주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옛사람들과 악수하는 기쁨을 함께 하니 중국에 대한 향수가 밀려든다.




 二. 삼지(三志), 제왕학(帝王學)과 법치(治法)


삼번(三藩), 조운(漕運) 하무(河務), 이것이 강희제가 평생 추구한 세 가지 목표이다. 그는 군자는 흙탕물에서 살아도 고결한 꽃을 피우는 연꽃과 같아서 순리대로 살며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서는 입덕(立德), 입신(立言), 입공(立功)을 갖춰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나라를 전복하고 세도를 구축한 뒤에 막강한 권력을 독식하면서 부패를 일삼는 제후들의 난립한 형상은, 어느 정국이나 시기를 막론하고 분열과 통합의 산고라는 구도로 비슷하게 드러난다. 불순한 세력을 진압, 제거하고 융합에 의한 성도(聖道)를 제창한 강희대제는 '나와 동족이 아니면 그 마음 필히 다르다 <非我族類, 基心必異>'는 것을 염두에 두었다. 그는 측외로 엇나간 강성한 뿌리에 일벌백계를 시도하고 구근의 성장점이 잘린 세력에게 봉토를 주되 중앙에서 사람을 파견하여 방대한 영토를 관리하였다. 의심이 많았던 주원장은 명나라를 세우면서 측근들을 모두 살해하고 대통일치를 실현했지만, 강희는 위협적인 세력에 대해 단호한 정복을 시도하는 가운데 융화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이후, 평서왕 오삼계(平西王 吳三桂), 평남왕 상가희(平南王 尙可喜), 정남왕 경계무(靖南王 耿繼茂)의 세 무리를 철번(撤藩)하는 동시에 대만 세력을 복속하고 서장유역까지 영토를 확장시키는 대내외적인 노력과, 하무(河務)에 치력하여 농업기반을 잡고 조운(漕運)을 안정시켜 사농공상의 살길을 트고자 한 내실의 발자취는 불안한 시기를 종식시키고 균형적인 지배력을 갖췄다는 면에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게 한다.


"무릇 장부라면 분야와 성취를 막론하고 가슴에 큰 뜻을 품어야 한다."

<胸有大志>


시사송가(詩詞頌歌)로 대표되는 강호의 은유시적인 세계는 사물에 대한 경계심을 지우고 감상과 혜안으로 사람을 포용하는 데 적절하다고 보인다. 황제든 중간 상인이든, 천민이든 그 당시에도 저마다의 상처를 가지고 있었기에 "오랑캐 군주일 바에 중화에 군주가 없는 것이 낫다 <夷狹之有君, 不若華夏之無>"는 말을 들은 강희제의 심정은 어땠을까. 태후의 세력은 힘이 약한 가운데 외부세력이 심어 놓은 태감들, 잔뿌리만 있고 씨가 다른 종자가 심긴 암투와 의심이 서린 곳에서 강희에게는 믿음직하게 자신을 보필할 사람이 필요했다. 만주인이지만 한학을 중시하고 서양언어(西洋言語), 천문(天文), 수리(數理), 성광화전(聲光化電), 기하측회(幾何測繪)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내치를 기한 그는 인재를 가까이하면서 오배의 숙청을 위해 때를 기다렸다. 제기황제가 원한을 사서 인심을 잃은 양익을 뜻있는 사람들과 지혜를 모아 안팎으로 목을 죄다가 성숙한 시기에 한방에 날려 보냈듯이, 탈궁(奪宮)을 시도하며 정권을 찬탈하려던 자를 치기 위해서, 힘이 약한 가운데서도 무모하게 형세를 뒤집으려고 애쓰기보다는 인재를 거둬들이고 내실을 꾀하며 몸을 뒤로 젖힐 줄 알아야 한다는 깨우침을 자각하였다. 현실적인 시대파악과 묵직한 기다림은 덩샤오핑(邓小平)의 담대한 정치술과도 일치하는 것 같다.



개구리가 뒤로 주저앉는 것은 멀리 뛰기 위함이다. 웅크린 자의 배꼽에 기가 쌓이면 단전을 통과하여 온몸의 순환을 돕는 체계가 강해진다. 빈틈없는 내공의 수련은 방어이자 공격의 기본자세인 것이다. 수호지 水滸誌에서 노지심(魯智深)이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보고 "선행과 담을 쌓고 아는 게 살인 방화뿐 <平生不修善果, 只知殺人放火>"이라고 말한 것은 험한 세상살이에서 살육에 뒤집힌 심성을 보고 말한 것이다. 마적이나 만주족, 거리의 사람들의 모습도 다르지 않았을 텐데 이 난잡한 무리를 규합하여 통일정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그는 어떤 방책을 쓴 것일까? 중국의 정치인들, 기업인, 세도가라면 모두가 숙지하고 참고한다는 강희(康熙)의 제왕학(帝王学)은 책에 거론된 명구로 간단히 요약할 수 있다.


제왕심감(帝王心鑒)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군주의 위엄은 해바라기 세력들의 무조건적인 숭배와 추대로 지켜지기도 하지만, 군주 자신의 의리와 지혜에 의해서도 지켜질뿐더러 닿을 듯 말 듯한 신기루 같은 거리감에서도 나타난다. 적당한 거리가 가져다주는 신비함과 거리감이 없다면 황제일지라도 존엄성을 보장받기 힘들다."


이를 현재의 상황에 적용해 달리 풀어보면, 개인과 개인 간의 위치를 정리하는 데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가까운 사이는 서로에 대한 호(好) 반응을 검증하기 전에 한쪽을 깡그리 태워버릴 수 있고 너무 먼 사이는 서로에 대해 알기 전에 살얼음을 끼게 할 수 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무조건 한 방향으로 자신을 지지해 주길 바라지만 지혜로운 자는 호불호(好不好) 양자의 균형이 적절해야만 스스로 비판적인 의식을 가지고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유후론(留侯論)에서는 "진정한 영웅호걸은 칼이 명치끝을 위협해도 태연자약해야 하고, 터무니없는 비방에도 노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권력을 잡을수록, 우월한 위치에 올라설수록, 사람들의 마음가짐은 조급하게 사다리를 타고 다른 사람들을 굽어보고자 한다. 그러나 남을 호령하던 위치에서도 사다리가 무너지면 더 낮은 위치에서 참담한 몰골로 굽힘을 당해야 한다. 따라서 "말 위에서 만 천하를 얻을 수 있어도 말 위에서 만 천하를 다스릴 수 없다 <可以馬上得天下, 不可以馬上治天下>"는 말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똥 간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태도가 다른 사람이 많은 것 같다. 한 사건만 해결되면 모든 것을 다 들어줄 것처럼 호의를 청하다가 정권을 탈취할 때, 목표를 실천할 때, 작은 도움이라도 받고자 의기를 높이던 사람들도 정작 목표를 실현하고 자신이 원하는 위치에 올라서면 손에 쥔 새를 놓아주려고 하기보다는 모두 쥐고서 굴종한 상태로 함께 가고자 한다. 즉, 하나, 둘, 손에 새들의 목과 깃털을 쥘 수 없을 때까지 들고 있고 조롱에 가둬 앵무새로 키운다. 하지만 많은 것을 쥐고 있다가 땀난 손에 미끄러져 하늘로 날아간 새는 나머지 새까지 같이 불러 떠나고 만다. 욕심을 부리다 남겨진 것은 처음과 같은 상태,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자신이 무언가를 얻고 나면 낮은 상태에서 그 모습을 잘 살피고 그에 대한 적절한 방책을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천자와 군자는 어떤 생활태도를 가져야 할까.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사랑함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자비롭고 검소하고 맑고 깨끗하게 하여 몸을 다스려야 한다."

<敬天愛民以治國, 慈儉淸靜以修身>


몸을 수양하고 마음을 맑게 하기 위해 도움을 주는 종교와 학문은 이월하가 책 속에 삽입한 사상적인 요약으로 간단하게 말할 수 있겠다.


"유교(儒敎)는 자기 수행을 근본으로 하여 다른 사람을 교화하니 오곡과 같아서 하루라도 안 먹으면 배가 고프고, 도교(道敎)는 조용히 도를 닦아 득도의 경지에 다다름으로써 부드러움을 강조하며, 불교(佛敎)는 정적을 기본으로 자비를 실천하기에 의사와 같아서 마음의 병을 치료하고 우울함을 달래기에 겁 많은 중생에게 잘 먹힌다."


이월하가 바라는 군자상이자 강희가 쌓았던 인덕의 주춧돌은 가지처럼 갈라진 세상 이치를 어떻게 봐야 할지 작중인물들이 거론하곤 했던 공맹사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군자는 의리에 목숨을 걸고 소인은 재물에 목숨을 건다."

<君子喩以義, 小人則喩利>


군자는 물이요, 소인배는 기름이다. 물은 맛이 담백하고 성품이 고결하여 끓는 물에 기름을 넣어도 띄워줄 뿐 튕겨내지 않는다. 도량이 넓고 포용력이 강한 군자의 성격과 닮았다. 그러나 기름은 냄새가 짙고 성품이 미끈거리고 색깔이 어두워 다른 물건을 오염시키며 끓는 기름에 물을 넣으면 산지 사방으로 튕겨올라 사람을 범접하지 못하게 한다. 마치 소인배의 옹졸하고 간사한 성격과 비슷하다. 즉, 군자의 처세도리는 안으로 충만함을 추구하는 것이지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君子處世之道, 在於守中而不務外, 不信直中直, 須放仁不仁>. 눈에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어질게 보이는 것이 어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강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혜성처럼 뇌리를 스친 구절이 있다.


"하늘이 곧 그대에게 큰 임무를 내리고자 하니, 반드시 먼저 그 의지를 시험하며, 근골을 욕보이고, 배를 곯게 하여, 그 몸을 공허하게 하며, 온갖 유혹으로 행실에 혼란을 줄 것이다, 그리하여 마음이 움직이고 참을성이 생겨나며 이로운 점이 많아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다."

<天將降大任於斯人也, 必先苦其心志, 勞其筋骨, 餓其體膚, 空乏其身, 行拂亂其所爲, 所以動心忍性, 增益其所不能>


궁지에 몰려있는 자라면 누구에게나 비껴가지 않을 지혜라고 생각한다. 힘들고 괴로울 때마다 되새겨야겠다. 성경에도, 불경에도 얼핏 이런 비슷한 구절을 본 것 같다.


"하늘이 너에게 고통을 내린 것은 세상을 위해 일할 자인지를 시험하기 위하여 선택한 산고이니, 네 안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말며 세상을 향해 눈을 뜰 지어다."


인(仁)이 내 안에 있음을 알고 학문에 대한 호기심을 버리지 말며 바닷물이 깨끗하면 머리를 감고 더러워지면 발을 씻는다는 선대의 지혜, 급히 간다고 해서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더 빨리 간다는 보장은 없다. 오래 생각하고 세상의 모습을 시원하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싶다. 모든 학문의 장점을 전부 다 섭취할 수 없겠지만, "쫓지 않는 것이 쫓는 것이고, 쫓는 것이 쫓지 않는 것 <不逐卽逐 逐卽不逐>"이라는 말도 있는데 무리배가 쫓는 허상에 슬퍼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다만, 모든 생활의 꿈과 희망까지 압류해 가면 그것은 다소 문제가 있긴 하다.



전에는 역경 易經에 대해 주목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강희대제 康熙大帝에 자주 등장하는 구절을 보고 새로움이 밀려왔다.


"군주가 치밀하지 못하면 나라를 잃게 되고 대신이 치밀하지 못하면 자기 몸을 잃는다."

<君不密失其國, 臣不密失其身>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

<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복 속에는 화가 숨어있고 화에는 복이 깃들여 있으며 흉이 극에 달하면 길한 일이 생기고 길이 고조에 오르면 나쁜 일이 생긴다."

<福-禍-凶-吉>


사물과 행위를 뒤집어보는 것은 바쁘게 사는 가운데 가장 하기 힘든 일이면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가벼운 매력과 시간적인 장점이 있는 것 같다. 세상 살기 어려워도 고해는 끝이 없으나, 돌아서면 언덕이라고 하지 않는가 <苦海無邊, 回頭是岸>! 무덤덤한 하루에서 개성과 재미를 발견하며 하늘이 풀릴 때를 기다리는 것은 어떠한가.




三. 강희의 사람들


"군주는 지위고하, 능력유무, 성품 여하를 막론하고 이 땅 모든 창생들의 아버지며 주인이기에 저마다 색깔이 다르고 맛이 다른 사람을 끌어안아 나쁜 점은 고치고 좋은 점은 치하하면서 인재활용을 해야 한다. 나무가 숲보다 빼어나면 바람이 가만 놔 둘 리 없고, 사람이 너무 앞서가면 따돌림을 당한다. 미심쩍은 사람은 기용하지 아니하고, 일단 기용을 했으면 의심하지 않는다."

 

'의인불용, 용인불의 <疑人不用, 用人不疑>'를 힘차게 내뱉은 강희의 인재등용문은 넓고 따뜻했다. 그에게는 탈궁(奪宮), 철번(撤藩), 천하통일(天下統一), 하무(河務), 왕자(王子)들의 반란까지 시기별로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헌신적인 충정과 걸출한 재간을 지닌 사람들이 있다. 지혜가 기반이 된 충언은 군자의 도량에 따라서 폭증의 물고를 트는 수용과 영향력에서 차이를 발생시킨다. 집안에 고집 센 아들이 있으면 패가걱정이 없고, 나라에 오기 있는 대신이 있으면 망국의 우려가 없다는 섬광적인 발언이 소설의 문맥에서 돌발신호로 드러나듯이, 강희는 인복이 많았다. 그의 곁에는 정국에 대해 올바로 볼 수 있도록 경각심을 세워준 사람들, 충정 어린 위동정과 영리한 시녀 소마라고, 치수(治水)와 병법에 발달한 주배공, 보좌관 고서기 등이 포진하여, 바람을 다스리는 자, 계절을 다스릴 것임을 예고했다. 소어투나 명주, 웅사이 등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거론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겨울엔 역풍(朔風), 여름엔 훈풍(薰風), 가을엔 금풍(金風), 봄엔 화풍(和風)처럼 다양한 세기와 모습과 기온을 동반하며 불어오는 사람들의 발길을 어찌 황제 혼자서 영접할 수 있을까. '높이 올라가면 인간적인 외로움은 더하다 <高處不勝寒>'라고 하듯이, 거친 세월을 보낸 충신들이 허리가 굽혀져 하나씩 쓰러져갈 때 강희의 가슴은 아팠겠지만 범중엄(范仲淹)의 말을 따르며 현자의 모습을 잃지 않았기에 그의 호령은 차갑지만은 않은 것이다.


세상의 걱정엔 앞서 걱정하고 세상의 즐거움엔 뒤늦게 합류하는 사람들 <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 현재 우리의 정치판이나 세상의 체스판에서 누가 이런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가? 강희가 탈궁(奪宮)을 시도하는 무리들과 힘겨루기에서 뒤처질 때 오차우가 일필휘지로 써 내려간 세상사 관조방식은 그가 천자의 삶을 사는데 구심점으로 작용한다.


“노을은 구름의 혼백이요, 꿀벌은 꽃의 정신이다."

<霞乃雲魄魂, 蜂乃花精神>


신기루나 오물처럼 명예는 꿈과 같든 냄새나게 더럽든 허상이요, 잡을 수 없는 것이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을 천자와 백성의 관계로 삼아 민심을 얻는데 배려를 잃지 않도록 직언했던 오차우, 정치판을 벗어나 강호를 떠돌며 강희에게 사람을 천거하고 평세에서 난세를, 난세에서 평세의 흐름을 읽던 그는 강희에게 잊을 수 없는 사람이고 또한 나에게도 좋은 이야기를 들려준 선비다. 거사 후년엔 강희와 함께 하지 않았지만 커다란 재산이고 값진 추억이었으며 목마를 땐 한 줌의 시냇물로, 갑갑할 땐 한줄기 청량한 산바람으로 떨어짐이 늘 같았던 한 떨기 난(蘭)이었다.


시끌시끌하고 굵직한 사건들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멀어져 갈 때쯤 강희에게도 스물네 명, 왕권을 향해 불나방처럼 몰려드는 황자들의 대란이 몰려왔지만 그를 황제의 자리에 있게 했던 인재들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충실히 보필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방법은 이 한마디면 충분할 것이다.


"한 알의 진주를 숨기려면 물고기의 눈 속에, 나무토막 하나를 숨기려면 숲 속에!"


센 바람에 풀의 강인함을 알고 난세에 영웅을 찾아낸 <疾風知勁草, 板蕩識英雄>, 강희는 죽음 앞에 누구나 평등하며 천자도 죽음 앞에 자유로울 수 없음을 가르쳤다.




四. 시로 쓴 역사와 문학


청풍(淸風)을 벗 삼아 설움 한잔 씻어나 보세

멀다면 멀고 가까우면 가까운 인생길

한잔 술로 몸 덥히면

떠나는 길 동풍(冬風)이 막겠는가

산을 베개로 삼고 하늘을 이불 삼아

이 강물 저 바다를 친구로 여기고

발길 닿는 대로 세상구경 떠나 보세나


사실, 한 시대를 그린 방대한 이야기이다 보니 소설 강희대제 康熙大帝는 구름은 구름이나 흩어진 저 하늘의 양털구름처럼, 하늘을 뒤덮은 커다란 형세와 흘러가는 주된 맥락은 있으되, 인물과 사건에 대한 설명이 긴박하지 않은 단점이 있다. 단락의 문학에서 보이는 맹점이라고 봐야 할지, 축약의 구절을 모아둔 서간집의 요약적 성질이라고 해야 할지, 장대한 서사시 앞에서 단자의 심성을 표현하는 것이 망설여진다. 충성과 신의, 우정과 배신의 파노라마 속에서 막과 장으로 실현되어 보이는 제왕의 살림살이와 인물들의 봉토를 일일이 볼 순 없었던 점은 아쉬웠다.


어쨌든, 산의 경계면에 도달한 종이호랑이가 늠름하게 밀림의 사자로 자리매김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포부를 품은 사람의 정도(正道)에 대해서는 아낌없이 격려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과욕으로 변해감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강희대제, 황제의 생에서 사랑에 대한 비중은 24명의 숫자로 증명되기에는 그림자가 약해 보인다. 그러나 그 주위에서는 사랑을 위해 목숨을 버렸던 의인들이 있으며 가슴앓이를 했던 연인들이 있었다. 역시 약방의 감초처럼 책 곳곳마다 빠지지 않고 시로, 노래로 흐른다. 읽는 자의 가슴속을 떠도는 애정의 방황. 나름대로 축약, 정리해 보니, 이월하는 시인을 해도 괜찮겠다.



꽃신이 닳아 떨어진 눈 덮인 방랑길

끝없는 고생 속에 바람만 드세구나

날마다 노랫소리 파는 건 이어지고

얻은 것은 없어서

굴욕 어린 시선에 머리 들 수가 없네

다시 돌아가려야 갈 수 없는 처지

석양 길엔 눈물이 그득하구나


넝쿨이 오래된 가지에 감기니

뿌리와 잎이 서로 의지하누나

그러다 둘 다 없어지면,

날아온 새가 어디에 다리 쉼 하나?


정원의 꽃과 나무에서 봄을 읽었지

내 인생의 봄은 어디냐고 물으면서

꽃과 나무가 어우러진

형언할 수 없는 향과 같은 삶

지난 세월이 꼭 꿈만 같구나!



장님에게 하늘의 불꽃이 보이겠는가, 귀머거리에게 불의 함성 들리겠는가, 산산조각 난 마음엔 달콤함도 장엄함도 그 무엇도 소용없는데 말이다. 우리는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눈을 뜨고 귀를 열고 말을 해야 한다. 그렇게 무언의 대상에 밝혀진 촛불은 몸이 타도록 눈물을 흘릴 것이고 그 애수가 당신의 문지방에 깃들면 위대한 문학의 대지는 결코 마르지 않을 것이다. 역사도, 세월도, 삶도 서로를 향한 그리움의 빗물로 자작하게 이어간다면 현재의 우리가 잘못을 저지르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벼로 여물어 갈 사람은 황금의 머리칼을, 꽃으로 피어날 사람은 짙은 분 향기를, 나무로 자라날 사람은 싱싱하고 푸른 잎을 세상에 펼쳐낼 것이다. 잡초들, 검불들, 독초들. 그것들도 역시 이 생에 놓인 이유가 있겠지만, 알아서 크도록 내버려 두기에는 사는 의미가 무상해진다. 슬프면 쓸쓸하게 누운 마음의 비파줄을 튕기면서, 기쁘면 책상 위에 따뜻한 촛불을 켜면서 창가에 내린 여유로운 밤공기를 마시며 살아야겠다.





[이월하 二月河, 강희대제 康熙大帝] 2013. 7. 2. PHOTOSHOP. EDITED by CHRIS


2005. 6. 13. MONDAY : FIRST




어렸을 땐 책을 읽고 나면 감상을 나름대로 정리해 뒀다. 기억력이 남달랐을 당시에는 머릿속에 모두 집어넣었다. 이야기상자에 꾹꾹 채워 넣기 바빴다. 그리고 나만의 이야기가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했을 땐 몇 줄로 끄적여댔다. 그런 많은 글들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영화를 보면 포스터를 잘라다가 나만의 느낌으로 포스터를 만들었다. 그림도 보고 나면 그 안의 감상을 나만의 느낌으로 그려보기도 했다. 글을 읽거나 그림을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뮤지컬을 보거나 사진을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감각이 들어간 행위에서 신체가 격렬하게 움직이는 것을 빼곤 고정적 감각이 다양하게 변형을 행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나는 펜과 칼, 책과 붓을 든 장수(將帥)에 가깝다. 타국, 타인을 이해할 때 나만의 의견을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강희제는 중국의 정재계와 사회문화지도자들이 참고하는 제왕학의 교본이다. 해외 유수의 기업 관리자들도 중국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각종 업계의 치술(治術) 면에서 파독해야 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이런 치국 경영의 기본을 보여주는 제왕학의 글들을 보고 있으면 흥미롭긴 하나, 황제의 삶에게선 매력을 못 느끼겠다. 진시황이나 측천무후, 영락제처럼 세상을 장악하는 사람 치고, 마음이 편치 못한다. 천자이기에 귀한 존재이기에 모든 내밀한 것들이 세상에 낱낱이 드러나고 공개돼야 한다. 세상을 위해 상처받은 것조차 마음대로 표출할 수 없다면,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올라있다고 해도 사는 하루가 고독하고 힘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무협지나 대하소설을 보면 자유로운 강호인이나 세상 틀 밖으로 사라지는 사람을 꿈꿨나 보다.


읽는 사람의 기분과 사정에 따라 이야기의 톤은 달리 흘러간다. 글을 읽고 나면 더 이상 내용도 가물해지기에, 기억도 되살릴 겸 기록도 남길 겸, 이전의 감상을 올려본다. 시간이 흘러가니 삶도 변하고 마음도 변하고 글도 변한다. 변하는 시간 속에서 인생(人生)은 정말 무상(無常)하다. 눈을 뜨고서 변화로운 세상에 민감해져야겠다.





최명희의 혼불, 조정래의 태백산맥, 박경리의 토지처럼, 삶의 한 부분을 남기는 소설은 옛 역사가들이 했던 작업과 마찬가지로 객관성의 유무를 떠나 중요한 현장기록의 성질을 지닌다. 생각의 단편만이 살아남는 시대에서 한 개인이 시대를 아우르는 통찰력을 가지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오늘을 사는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으므로!

2013. 7. 2. TUESDAY




기억의 오류

이전의 책장을 넘기다가 2005년 6월 13일에 쓴 강희대제 康熙大帝의 감상을 발견했다. 처음엔 이월하의 글을 북경에서 봤다고 생각했었다. 한국에선 책을 본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더 이상 기억은 지속되지 않는다. 2013년에 책을 보고 썼나 싶었는데, 그때 글을 읽었던 기억이 없었다. 다 옮기지 않았던 마지막 문장도 채워넣었다. 새로운 기억을 채워 넣기 위해서 머리가 비워지는 것이라면 좋겠다. 지난 10년 동안 안 쓰던 스케줄표도 썼다. 지금은 다가올 미래에 대한 구상과 함께 단기간의 기억만이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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