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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Apr 28. 2024

CLOUD MEMORY

아이스크림 페티시 : 중독, 금단, 절제 | 기억 여행

[Cloud Memory : A Gift for Quenching Thirst] 高句丽王城, 王陵及贵族墓葬 2008. 8. 30 PHOTOGRAPHY by CHRIS



왜 밀라노는 자정 이후에 아이스크림과 피자를 금지하려 하는가?

"Why is Milan poised to ban ice cream and pizza after nidnight?"

<David Mouriquand, Euronews. April 23, 2024>


아이스크림과 피자의 나라, 이탈리아. 최근 밀라노 시정부는 늦은 밤에 음식을 먹는 사람들로 인해 발생하는 소음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서 주거지역 내 소음공해를 예방한다는 목적하에 아이스크림과 피자의 판매시간을 제한하는 조례를 발표했다. 이 새로운 법안은 다음 달에 시행되어 11월까지 지속될 예정이다. 평일 자정 0시 30분에서 오전 6시, 주말 및 공휴일은 오전 1시 30분부터 오전 6시 사이에 모든 테이크아웃 음식, 피자 및 음료 판매가 금지되며, 밀라노의 12개 지구에서 시행된다. 이 법안은 밀라노 시민들의 평화와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시의회에서 제안되었다. 이를 두고 이탈리아 사람들 사이에서 지역상권의 침체와 함께 전통적인 관광과 연결된 음식문화의 제한조치라며 반발하고 있어 논란이 가열 중이다.




어렸을 적에 아이스크림은 정말 좋아했는데, 밀가루 음식은 좋아하지 않았다. 튀긴 밀가루에 각종 화학 양념을 넣은 과자는 밀가루 냄새가 안 느껴져서 먹었던 편이다. 라면을 먹을 때면, 면은 다른 사람에게 다 덜어주고 짭짤한 국물에 밥을 말아먹었다. 빵도 좋아하지 않았다. 식빵에 놓인 슬라이스 치즈는 몰래 빼놓고 딸기잼만 약간 쳐서 먹었다. 치즈와 우유를 먹으면 냄새도 그렇지만, 배가 더부룩하고 소화가 안 됐다. 피자와 스파게티, 리조토를 보면 화장실이 연상되어서 맛있다는 연상을 불러오지 않았다. 이상하게 아이스크림은 유제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단맛과 찬 맛이 섞인 시원함 때문에 선호했다. 그러나 사실, 천연 둘코락스처럼 먹고 나면 배가 꾸르륵 거리며 화장실을 가야 했다. 뭔가 배설이 미흡할 때의 용도로 좋아했던 것도 있다. 아이스크림 중독에서 벗어난 것은 이십 년 전이었나 보다.




아이스크림 페티시


오랫동안 아이스크림 중독자였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는데 아마 중학교 이후부터였나 보다. 밥도 많이 먹고 간식도 많이 먹고 과일도 많이 먹고 그래도 굶주린 배를 때울 건 아이스크림이었다. 그래도 그때는 먹을 건 맘껏 먹을 시기였다. 불만이었을까? 굶주림은 도가 지나쳤다. 인간의 배에 들어갈 수 없을 만큼의 양을 먹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집에 오는 누구에게든 5000ml들이 한 통의 아이스크림을 부탁했다. 방문한 사람들은 다들 손에다 통째로 아이스크림을 건네줬다. 봉지 째 들고 오신 분도 있었다. 그 자리에서 먹어치우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매일 먹었다. 만족하게 배 두드리고 과일 한 두 박스는 한자리에서 쓱싹하고도 또 먹었다. 난 언제나 허기져 있었다. 먹어도 먹어도 끊이지 않는 탐식. 특히 단맛에 무척이나 굶주려 있었다. 그 먹는 손을 끊은 건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언제나 많이 먹는 거에 위가 익숙한 줄로 여겼다.


끊임없이 손을 대고 끊임없고 보아대고 끊임없이 느껴대는 이 모든 것에 질리도록 인이 배겼다. 그런데 그렇게 먹어대는 걸 좋아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만들기 시작하면서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먹게 되는 것은 부담이었다. 오히려 혼자 마셔대는걸 더 즐거워하고 있었다.

뭐든 간에 너무 잘 빠져버려서 탈이 난다. 내 자리를 느끼고 나면 이미 너무 많은 길을 걸어 버렸다. 정신 차리고 돌아서면 또 다른 자리에 서 있다. 황망히 서 있다 몸을 추스르곤 돌아선다. 스스로 서 있는 길에서만 말이다. 이런 무절제한 습관들을 묶어놓는 게 괴이한 현실이다. 날 감싸는 장막.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사슬.


요즘은 떡볶이 덖음만 줄기차게 먹고 있다. 밥도 먹기 싫다. 맛있어서 먹는 건 아니다. 말린 오징어는 냄새나서 진짜로 싫어하는데 오징어 튀김을 빨간 국물에 버무려서 꼭 한 봉지씩 먹는다. 불려진 국물 속, 튀겨진 기름 발, 물컹대는 오징어 몸통이 꿈틀대는 게 흐늘 징그러운데 꾹꾹 먹는다. 섞여 있으니까 내가 알게 뭔가.


솔직히 혼자 살면 아무것도 해 먹지도 않는다. 퍼 마시고만 있다. 아까는 먹는데 기름기가 갑자기 속을 느글거리게 했다. 그만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부쩍 든다. 며칠 전엔 아무 생각 없이 먹다가 입에서 피가 나는 줄도 모르고 계속 씹고 있었다. 완전 괴기 영화였다. 그 진물 친 빨간색이 나의 입에서 나왔는지 떡볶이에 발라져 있던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맛도 워낙 강렬해서 피 맛도 안 났다. 또 속이 상한다. 물이나 마셔야겠다. 물이 끓는데 언제쯤 불을 끌까. 물 끓는 냄새가 난다. 식혀서 먹어야 데이지 않겠지.


2004. 9. 19. SUNDAY




BEYOND FETISHISM 구름 기억


나의 몰입적인 성향은 일반 사람보다 깊고 강하다. 지금은 상황에 적응한 것인지 현실과 절반 걸쳐있는 상태이다. 정신적인 체력도 일반 성인 남자보다 세 배 정도 되었다. 인간 같지 않다고 사람들이 그럴 때마다, 공감이 안 갔다. 요즘은 체력면에서 정상인과 비슷한 수준 정도로 떨어져 있다. 그래도 주변에선 불만스럽게 말하는 게 왜 쉬지 않냐고 한다. 사람마다 삶의 기준이 달라서 그렇다.   


중요하지 않은 일에 몰입한다는 것은 어딘가에 불만이 있다는 소리다. 그 의미는 내가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닌 것들에 몰입해 있으면, 나의 머리에 무엇인가가 정리가 안 된 상태를 알리는 신호이다. 아이스크림은 지금 거의 먹지 않는다. 술도 거의 마시지 않는다. 필요시에는 먹을 수 있어도, 그것이 없으면 안 되는 수준이 아니다. 예전에는 매일 먹었다. 설사를 해도 먹었다. 아마 아이스크림이 차갑기도 했지만, 속에는 항상 열이 나 있었기에 내부를 달래줄 차가움이 필요했다. 머리는 항상 썼으니 단맛의 아이스크림을 찾았던 모양이다. 가끔 친구들도 기억한다. 큰 통 아이스크림을 하나 끼고 순식간에 먹어대던 어린 시절의 나를 꺼내곤 한다.


"어떻게 끊었어?"


본질은 그 아이스크림에는 없었다. 어렸을 땐 열이 많았다. 이불도 덮지 않고, 겨울에 맨다리로 다녔다. 언젠가부터 몸이 추워졌다. 벌써 이 날씨면 반팔을 입어야 하는데, 아직도 긴팔을 입고 있다. 속의 따뜻함을 강조하는 중국 친구들이 요즘도 그런다.


"넌 내복 안 입냐?"

"어쩌면 찬물만 마셔?"  

"한기가 들거나 탈 나면 어쩌려고?"


따뜻함과 차가움의 공존은 미지근함인가? 요즘은 사탕이나 초콜릿과 같은 단 음식도 잘 안 먹는다. 그냥 먹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생각의 순환을 돌게 하는 따뜻한 커피나 차, 시원한 물이 필요하다.  




이탈리아에 있을 때 젤라토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참 달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부드러운 단맛이 아니라, 찌르는 듯한 단맛이었다. 절반 정도 빨다 보면, 밥 생각까지 걷어가는 남기고 싶은 맛이었다. 나폴리에서 그 유명한 나폴리 피자와 스폴리아텔라(Sfogliatella)를 먹고서도 책에 쓰인 맛은 아니어서 이미 한입 베어문 조각을 보고 눈만 우왕좌왕했다. 느끼하고 멈추고 싶은 고민스러운 맛이었다.


밀가루 음식과 고기는 중국에 살면서부터 먹기 시작했다. 도처에 밀가루 음식과 고기가 있었다. 골라먹을 수 없게 폭탄으로 퍼진 음식 메뉴는 그냥 모든 것을 받아들이게 했다. 늦게 배운 밀가루 음식 도전기를 통해 지금은 전병이나 만두도 잘 먹고 토마토 계란면 볶음탕도 잘 먹는다. 이제는 먹겠다 안 먹겠다의 스위치에서 먹겠다는 버튼을 고르면 내가 손을 쓰지 않는 조건에서 양을 정한 뒤 위생상태나 맛을 떠나 군말 없이 먹는다.

 

내가 먹었던 아이스크림 중에서 가장 맛있고 시원했던 아이스크림을 뽑자면,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시(集安市)에 있는 고구려의 도성(都城) 유적지였던, 국내성(國內城) 성터에서 먹었던 아이스크림이었다. 1원, 한국 돈으로 200 원하던 그 아이스크림은 시원한 박하맛의 하얀 셔벗(Sherbet)이었다. 약간 달긴 했는데, 흔적만 남은 우리의 옛터를 바라보면서 사라질 기억의 구름 조각들을 젓가락처럼 떠서 천천히 먹었다.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면, 푸른 풀이 길게 자라서 한 여름의 푸르름만이 가득했던 옛 고구려 국내성 터에 기대서 먹었던 셔벗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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