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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May 11. 2024

CRASH : CAVE OF MEMORIES

상처에서 흐르는 그리움 | 접촉•충돌 : Craving for Crash

[CRASH : CAVE OF MEMORIES] CHINA. 2023. 4. 23. PHOTOGRAPH by CHRIS


L.A에선 사고가 왜 나는 줄 알아?

정이 그리워 그러는 거야.

다른 도시에선 사람들과 부대끼고 살며 느끼는데

여기서는 아무도 서로를 건드리지 않거든.

늘 차 안에 갇혀 살지. 금속과 유리로 둘러진..

우린 서로에 대한 느낌이 너무 그리워서 서로 충돌하고 상처를 주는 거야.


<크래쉬, In the opening quotes of Movie, CRASH>



'한 여름에 눈이 내린다면’과 같은 가정은 이뤄질 수 없거나 이뤄지기 힘든 것을 상상할 때 가치를 발휘한다. 결과가 존재하지 않는, 기대가 작용될지 안 될지 확정되지 않은 현재의 시점이 중요하다. ‘LA에 눈이 내린다면’ 이 또한 장소는 중요치 않다. 물질적 생산을 중요시하고 정보의 소통을 능률화하는데 중점을 두는 도시라는 공간은 계획적으로 녹지화를 추구하고 공기를 맑게 한다고 해서 숨통이 트일 수 있는 곳은 원칙적으로 아니니까 말이다. 서울, 도쿄, 북경, 뉴욕, 런던, 파리, 베를린, 뭄바이, 로마...


“어느 나라 출신이나 왜 사는 꼴은 다 비슷하지?”


낯선 곳에 대한 탐색이 끝나고 적응기제가 작용하면 거기나 여기나 다를 바 없다.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서 살까’보다 ‘누구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까’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오늘 만날 사람, 그들과의 충돌, 소통의 느낌과 그리움의 잔재들을 확인해야 한다. 혹여, 뜨거운 나라에 눈바람이 불면 두 손 꼭 잡고 얼음을 지치며 살고, 차가운 나라에 군불이 솟는다면 처음 만나 어색해진 언 다리를 녹여보는 것도 괜찮을 성싶다. 그러면 조금이나마 살만 했다고 감사의 기도를 올릴 수 있을 것이다.


흑인과 동양인, 히스패닉, 유럽인, 이민자들과 본토인, 어른과 아이들, 가정부와 검사, 꾼들과 정객들. 영화 속에서 우연한 연유로 우연한 만남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비참한 운명을 같이했던 9.11 사건의 희생자들과 닮아 보였다. 무심히 돌고 도는 나의 물건들과 무관심으로 연결된 형제의 죽음, 치욕과 분노, 편견과 상처, 모욕과 생명에 대한 고찰이 분주하게 일어나는 유리도시는 바싹 말라버린 애정을 돌려달라며 소리 없는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빌딩 속에서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에게 사회에서 일정 시간 속에서 갖게 되는 '지위'라는 또 다른 이름은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높은 지면 위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역설적 표현의 다름 아닐까. 위급해지면 내려오려고 성급해지는, 신경을 소홀히 하다 계단을 구르는 사고를 맞는, 곧 깊은 어둠의 나락에서 홀로 되었음에 왈칵 눈물이 흐를 것 같은 그런 위태로운 고지 말이다.


"접촉은 당신을 향한 관심의 표현이며 시작이다."


언제나 누군가를 만날 때 예의주시하는 명제이다. 시계추가 오늘과 내일의 접점에서 흔들리고 있다. 정이 그리울 땐 설사 상처가 나서 아프더라도 배격과 단절의 투명하고 단단한 유리를 깨야할 것이다. 너와 나의 유리병 속에서 배회하는 상처들을 부셔본다. 정이 그리울 아프더라도 유리를 깨야겠지.


2006. 4. 20. THURSDAY




CRAVING FOR CRASH IN CHINA

사진의 기록을 보니 2023년 4월 23일이다. 그때 중앙고속도로에서 벗어나 국도로 접어드는 교차로를 달려가고 있었다. 갑자기 비가 세차게 퍼붓는 바람에 서행하고 있었다. 지방국도에는 트레일러가 줄지어 달리고 있었다. 주유소 옆 삼거리를 지나는 무렵, 갑자기 사이드에서 검은 물체가 차를 덮쳤다. 굉음과 함께 차는 반바퀴 돌아가버렸다.

 

밤 8시 50분경, 사고 났을 때 경찰을 기다리며 사진을 찍었다. 상대방 SUV가 급회전을 하며 들이박는 바람에 차체 앞축이 완전히 구겨지고 폐차 수준으로 찌그러졌다. 다행히 다친 데는 없었다. 넝마가 된 차 안에서 앉아있자니, 온전한 얼굴로 살아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그날 계획들은 다 틀어져버렸지만, 살아있다는 자각에 감사했고 아무 일 없듯이 마음이 편안했다.


빗길에 사고가 나서 길은 엉망이었다. 이차선 도로는 어긋난 삼 차선이 되었다. 트레일러의 기다란 행렬 속에서 시간은 비와 함께 굽이치고 있었다. 멍하니 창 밖을 보는데 흐르는 빗줄기와 차들의 불빛만이 보였다. 줄지어진 기다림 속에서 미끄러진 차들 사이로 하얀색 차가 커다란 굉음과 동시에 날카로운 마찰음을 내면서 앞으로 돌진하더니 도랑으로 뒹구르르 처박혔다.


몇 중이야ㅡ


대형 견인차의 크레인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니 놀이기구를 탄 기분도 들었다. 친구들이 올 때까지 차 안에 있었다. 한밤 중에 먼 길을 달려온 친구 덕에 고속도로를 달려서 숙소로 가니 새벽 3시 반이었다. 식겁한 충돌 속에서 인간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날 잠시 생각했다. 밤 11시, 왕복 300km 넘는 빗길이었는데, 한국이었다면 난 누구에게 연락했을까? 심리적 부담 때문에 가족 빼고 전화할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다치지 않았다면 근처 숙박시설에서 잤을 것이고, 다쳤다면 병원에서 잤을 것이다.


거래 관계에서 삶에 대한 요구는 명확하다. 나도 그만큼 보답하면 되니까 신세 진다는 생각도 안 든다. 내가 살아있어야 함께 돈을 벌 수 있으니까 필수적인 공생관계만큼 부담 없는 수식은 없다. 중국인들을 보면 한국사람이나 서양문화권의 사람들과는 다른 관계적 방식을 발견한다. 난 그들의 냉정함과 계산적인 거짓의 이면에서 이상한 열정과 뜨거운 이성을 본다. 놀이공원의 범퍼카처럼 그들과의 충돌은 흥미롭고 유쾌하다. 죽지만 않는다면.





부딪힘과 접촉, 상처에서 흐르는 현실감

정신적 트라우마(Trauma)를 호소하는 사람들에겐 시간을 초월한 그리움이 흐른다. 서로의 부딪힘 속에서 상처는 필연적인 것일까?


온전한 모습보다 상처 나고 어긋나고 버려진 것들에 눈이 간다. 공장에서 갓 나온 듯한 완벽한 모습에서 매력을 느낄 수 없는 이유는 살다 보면 다 긁히고 상처 나고 구멍 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삶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흔적들은 기억의 동굴 속에 파묻힌 시절을 꺼내 올린다.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문다. 아프지도 않다. 그러나 하나의 흔적을 바라보면, 소리 없는 시간의 습기가 배겨 나온다.


접촉 없이는 사실을 알 수 없다. 내가 현장감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머릿속의 상상은 실현하는 과정 없이는 아무 의미 없다. 현실에서 상상을 실천할 수 있는 직접적인 행동이 중요하다. 설사 상처 입고 아플지라도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그만큼 스스로를 내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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