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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May 11. 2024

DESIGN WRITING RESEARCH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리포트 | Communication Design

[Andy Warhol, Beijing Department Store] 798 Art Zone. REtake-Photograph by CHRIS @CAZA, 춘추풀아트그룹



내가 목격했던 가장 인상적인 사진전시는 이미지 없이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이 나의 상상에 의존하고 있는지 정말 본 적이 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즉, 흰 벽 위에 오직 글자로만 투사된 사진들은 <강물>이라는 제목처럼 물 흐르는 형상에 졸졸거리는 소리를 전해줬으며, 내 어릴 적 가녀린 발목을 씻어주던 차갑고 정겨운 애무를 동반하고 있었다. 


요즘 글을 읽다 보면, 글을 읽는 것인지 그림을 보는 것인지 음악을 듣는 것인지 혼란에 빠지곤 한다. 동일한 자리를 반복하여 눈을 굴리는 행동은, 수준급의 래퍼가 된 양 기묘한 주술을 외우거나 미약에 빠져 의미 있는 글자들을 뭉치그림으로 말아버리는 모습으로 전이되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들은 뮤지션이 되고 화가가 된다. 그들의 자랑스러운 직업은 나에게서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근래 들어, 텍스트로 작성된 것들에 집중력이 떨어진 이유도 한몫할 것이다. 그래서 혼미한 상태로 마음껏 해석할 수 있는 글에서 해방감을 맛본다. 내용이 어렵다거나 작가의 지성이 역겨워서 책을 손에서 놓는 일은 없을 것이다. 표지가 마음에 안 들거나 책에서 불쾌한 냄새가 나거나 삶이 번잡해 책장을 닫을 순 있어도 말이다. 



“논리란 무엇인가? 내게는, 둘 더하기 둘은 스물둘이다. 넷이 아니라.” 만 레이(MAN RAY)



DESIGN WRITING RESEARCH》는 타이포그래피(Typography)와 글쓰기, 시각언어의 상징성을 디자인영역에서 점검한다. 현대의 문서들은 상형화된 은유를 쓰기 두려워한다. 이것은 상품으로 전락해 버린 의식의 판매와 관계가 깊다. 담론(談論 | Discourse)을 형성하게 되는 사회적인 재료와 작가들의 기본스타일, 구성방식에서의 공동체적인 합의는 상품을 생산할 수 있게끔 만드는 재생의 원동력에 의해 실천을 제약할 수밖에 없는 모순에 빠진 것이다. 


의식전달의 밑바탕이 되는 A4 복사용지의 활용처럼 복제의 가능성은 상업의 마당에서 순수하게 백지로 남아있지 않다. 미디어 드로잉은 대상들의 구성 저변에 의식의 노동을 강요하고 메시지를 마사지하며 복제로 얼룩진 공간에 개성적인 논평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경쟁을 기본으로 하는 현대의 프레임은 자극적 글쓰기와 충격적 영상으로 정형화된 라인을 밟지 않으려고 한다. 새로운 구조는 클리셰를 제거하고 신개념의 바이러스를 생산하지만 폭로와 은폐의 수사들은 이전과 다름없는 사실을 현대적인 언어로 개념화할 뿐이다. 


원본에 대한 해석을 비평할 순 있어도 지각을 비평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의 충돌을 동반한다. 대중의 가독성을 미로에 빠뜨리는 게임들로 비평적 저널리즘의 맥을 잇고 있는 현대의 문화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대중매체는 슈퍼마켓이다. 진공가스로 채워진 포장 속의 내용물은 영양가 없는 기름기로 범벅이 되어 있음에 경악하게 될지 모른다. 익숙하다고 생각된 구조에 차용된 현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지식의 얼굴에 불과하다.


2006. 5. 7. SUNDAY 



사물과의 접촉이 시작되면 감각을 넘어 내부의 지각(知覺, Perception)을 건드리는 지점에서 자극을 받곤 한다. 일상의 감상이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일률적이고 대중적인 호평은 인식의 유리벽을 깨지 못한다. 사물에 대한 전체적 이미지를 인식하고, 자신만의 의견을 정립해야 새로운 형태를 개선시킬 수 있다. 정확함을 규정하지 않는 글쓰기의 태도는 인식의 상(像)들을 혼합시킨다. 창작자로서 감각의 순응보다는 인식된 것들을 갈아엎고 싶다. 감각의 진행 또한 내부의 의식과 결합시키길 원한다. 


외부에서 들려오는 환경적인 차이를 통해 감지된 감각(Sensation)은 경험적인 정보에 의해 공간적인 감각과 색채의 분열을 일으키며 새롭게 지각(知覺, Perception)을 형성한다. 본래의 기억을 재구성한 지각은 곧 정신적인 영역으로 넘어가서 인식(認識, Recognition)을 변화시킨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과 지능에 따른 의식(意識, Consciousness)에 도달하기까지 심리적이고 지적인 경험은 자의식(自意識, self-consciousness)을 건드리며 자신만의 세계를 형성해 나간다. 시간이 흘러 이전의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기억의 열차가 빠르게 지나감을 느낀다. 속도가 빠르면, 시간의 바람만 맞고 만다. 유속의 흐름이 느릴 때 의식과의 동반여행이 가능하다. 


2008년 6월 24일, 북경따샨즈 798 예술구역(北京大山子798艺术区)을 산책했다. 그곳에서 북경백화점(北京百货大楼)을 지나는 앤디워홀의 모습을 보고 재촬영했다. 기억의 흐름은 어떤 곳에선 고여있고, 어떤 곳에는 흘러가버린다. 인간의 대화에도 디자인이 필요할까? 우리는 말들을 쏟아내지만 글의 형태가 아름답다고 해서 내용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영양가가 풍부한 이야기들로 머릿속을 채우러 떠날 때까지 사물에 대한 디자인 리포트는 계속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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