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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May 06. 2024

NON REGRETTE RIEN

파니 핑크 | Nobody Loves Me. 후회하지 않아

[Keiner liebt mich | Nobody Loves Me] 1994. Movie Poster


해골 오르간이 돌아간다.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는다, Non Je Ne Regret Rein'는 에디뜨 피아프(Édith Piaf)의 사투리 섞인 비음이 깔린다. 가부좌를 틀고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 웃고 있는 해골 오르간은 빙그르르 돌아간다. 음악에 맞춰 천천히 춤을 춘다.



영화 <파니 핑크 Keiner liebt mich | Nobody Loves Me>에서 수많은 장면이 흘러갔지만 기억나는 건 에디뜨 피아프의 걸쭉한 노래와 해골 분장을 한 오르페오(Orfeo)의 모습이다. 음악을 들으며 누군가가 찾아와서 반겨주길 바라고, 자기라는 관 속에 누워 운명의 상대를 기대하며, 그 속에서 똑같이 흘러가는 시간을 바꾸려는 파니(Fanny Fink). 그녀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모습도. 목소리도. 움직임도.


파니 핑크를 보면 극 중의 주인공이었던 사람들보다 그 공간을 목소리로 가득 채우고 있던 에디뜨 피아프가 주인공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에게 후회하지 않는 삶이 있을까?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다는 그 음성은 왜 후회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다가오는 걸까? 삶에서 슬픔과 눈물 다 잊고 즐겁게 너와 함께 하겠다는 에디뜨 피아프의 노래는 사는 게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다는 외로움과 상실감, 또한 살고 싶다는 정열이 묘하게 섞여있다. 참새 같은 작은 체구에서 쏟아내는 그녀의 노래들은 사랑을 찬양하고 아름다운 인생을 노래했지만, 우렁찬 목소리 안에 가둬둔 그녀거리의 부랑아였고 사랑했던 사람을 잃은 여인이었고 마약에 빠졌던 중독자였다.


시간이 흘러 사람들에겐 파니 핑크건, 에디뜨 피아프건, 그냥 하루를 채워가는 노래며 영화일 뿐, 그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과 인생과 흔적들은 지워져 버리고 만다.


엉터리 심령술사와 파니 핑크. 그리고 이 노래, [후회하지 않아, Non Je Ne Regret Rein] 과연 이 모든 게 함께 어우러지는 마지막에서야 파니는 행복했을까? 그리고 에디뜨 피아프, 그녀도 죽음에 이르러 안식했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그냥 노래로만 그녀를 느낄 뿐이다.

2004. 8. 28. SATURDAY




시간의 이야기, 난 돌아가지 않아.


"살면서 후회하는 거 있어?"

- 없어.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갈 거야?"

- 아니.

"너를 휩쓸었던 딱 그 시점 말이야. 그래도?"

- 돌아가지 않아.


살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에 하나이다. 아이나 어른이나 누구나 물었다. 수많은 영화에서 그리듯이,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서 혹은 미래로 넘어가서 지금의 구차함을 버리고 새로운 세상에서 새 마음으로 살고 싶어 한다. 어렸을 때부터 현재까지 깊이 고민했던 문제이기도 했다. 그 시점에 돌아가서 현재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다면 나는 그곳으로 돌아갈까?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일을 하면서 항상 살아가는 고민을 한다.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발전을 하지 못할 땐, 현상 유지라도 고민해야 한다. 심리적으로 부담이다. 주변에는 괜찮은 기술을 가지고 있고, 그걸로 자신의 작업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한 지인은 돈을 많이 벌면 파이어족(FIRE)이 되어서 돈에 신경 쓰지 않고 편하게 쉴 거라고 한다. 여행도 가고 취미도 즐기겠다고 했다. 그럼 은퇴해서 그 귀한 기술로 작업 안 하냐고 물었더니, 작업과 취미는 다르다고 한다.

 

누가 은퇴 시점을 물었을 때, 나는 죽을 때까지 일을 할 거라고 대답했다. 일을 안 하면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 다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생각이다. 그게 안 된다면, 돈을 벌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예정이다. 그래서 작업과 일을 일치시키는 수고스러움을 시도하고 있다. 나에겐 일이 작업이다. Work. 작가들은 자신만의 '작업노트'를 적는다. 자기만의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스케치적인 구상을 가져야 한다. 불에서 단련을 충분히 해야 풀무질도 가치 있다. 연마의 과정이 없으면 좋은 작품을 내기 어렵다.



삶에서 만드는 행위가 내 생의 의미이다. 경제적인 자립심을 가지고서 만들 때 남의 의견에 휘둘리지 않고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 난 무엇이든 만들고 싶다.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확실히 정하지 못한 게 단점이다. 사람들이 뭘 잘 만드냐고 해서 그냥 다 만든다고 했더니 헷갈려했다. 전문성이 없으면 어떻게 살 거냐고 해서 천천히 관심 있는 것은 다 해보겠다고 했다. 그 이후로는 질문은 사라졌다. 사람들이 쉬지 않냐고 물을 나는 쉬는 뭔지 모른다고 답했다. 실제로 쉬는 거나 죽는 거나 비슷하다. 가끔 눈을 감으면 내일 눈을 뜨지 못할 땐 아예 암흑으로 묻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난 십 년 간은 책을 들고 다니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선 전자책에 수백만 원을 밀어 넣었다. 글자에서 멀어지지 않기 위해 가벼운 이야기와 잡다한 글들을 봤다. 과거로 돌아가는 이야기, 다양하게 사랑하는 이야기, 자극적인 만남의 이야기, 그중에서 회귀물에 한번 꽂힌 다음에 시리즈로 읽었다. 재미는 있었는데, 보는 내용이 쌓일수록 등장인물 이름만 바꾸면 형식이 같았다. 이야기를 볼 때마다 의문이 들었다. 나는 과거를 바꾸고 현실에서 만족을 얻을 수 있을까? 



나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백 투더 퓨처 Back To The Future>를 열망하며 시간을 여행한다고 해도 나는 가지 않는다. 미래로도 가지 않는다. 시간에서 나는 결정권이 없다. 타인과 함께 사는 공간에서, 혹은 나 혼자 놓인 공간에서도, 일정한 시간과 특정한 공간에 놓인 존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 순간 시간은 움직이고, 존재가 놓인 공간은 배경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변화는 시작된다.


극이 시작된다. 주인공과 주변인과 세계는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작가가 적었던 대본과는 달리, 적혀있지 않는 사건들을 일으키며, 알고 있던 각본조차 다른 이야기로 각색시킨다. 그 유기적인 현실의 움직임은 행위를 취하는 배우(Actor)는 알아챌 수 없다. 배우는 행위에 집중해야만 시간을 소비할 수 있고, 그 극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우가 감독이 되거나 작가가 되려고 하면, 시점의 간섭 때문에 극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이 삶에서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자유의지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뭉텅이의 시공의 결합체 속에서 절대 발휘되지 않는다. 오직, 살고 있는 이 순간, THIS MOMENT, 현재의 시간에서만 인간의 의지는 유효하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고민했던 삶을 움직이는 주체와 생에 대한 의지까지 모두 얽혀있었던 시간의 이야기는 현재에 답이 있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현재를 보지 않는다. 현재를 살면서도 더 많은 내일을 열망하고, 더 많은 과거에 묻혀있다. 아픔이나 즐거움이나 그 모든 시간들의 감정까지 무심하게 볼 수 있고, 지금을 살아갈 수 있다면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내 안의 깊은 세계로의 탐험을 준비하고 있다. 나는 돌아가지 않는다. 그냥 살아갈 것이다. 깊숙하게 나의 세계로 들어가서 언젠가는 나를 반가이 맞는 우주의 문을 열 것이다.




[Nineteen-year-old with Short Hair of Me] Self-Portrait. Sketch by CHRIS


기울어진 나

남아있지 않는 감성

너의 눈이 날 바라보고 있구나.


단발머리 열아홉

오지 않을 너

이젠 안녕.


Tilted me

Emotions that are no longer there

Your eyes are looking at me.


Nineteen-year-old with short hair

You who will not come

Now, goodbye.





'후회하지 않아' 에디뜨 피아프

[Non Je Ne Regret Rein] Édith Piaf



아니, 전혀,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

내게 일어난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모두 마찬가지야.

아니, 전혀, 난 어떤 것에도 후회는 없어

대가는 치렀고, 다 쓸어버렸고, 다 잊어버렸어, 과거는 신경 쓰지 않아

내 추억들로 불을 지펴봤어

내 슬픔과 기쁨으로도 역시.

더 이상 그것들이 필요치 않아

트레몰로 사랑까지 쓸어버려

영원히 쓸어버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

아니, 전혀, 내게 후회라곤 없어

내게 일어난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모두 마찬가지야

내 삶이, 나의 기쁨이

오늘부터 너와 함께 시작될 테니까


Non, Rien De Rien, Non, Je Ne Regrette Rien
Ni Le Bien Qu'on M'a Fait, Ni Le Mal
Tout Ca M'est Bien Egal
Non, Rien De Rien, Non, Je Ne Regrette Rien
C'est Paye, Balaye, Oublie, Je Me Fous Du Passe
Avec Mes Souvenirs J'ai Allume Le Feu
Mes Shagrins, Mes Plaisirs,
Je N'ai Plus Besoin D'eux
Balaye Les Amours Avec Leurs Tremolos
Balaye Pour Toujours
Je Reparas A Zero
Non, Rien De Rien, Non, Je Ne Regrette Rien
Ni Le Bien Qu'on M'a Fait, Ni Le Mal
Tout Ca M'est Bien Egal
Non, Rien De Rien, Non, Je Ne Regrette Rien
Car Ma Vie, Car Me Joies
Aujourd'hui Ca Commence Avec Toi



에디뜨 피아프의 음색은 발걸음을 잡아챌 만큼 아름답고 호소력이 있다. 다만, 그녀를 그렸던 영화 <라 비앙 로즈 | La Vie en Rose (La Môme)>에서 보듯이 그녀의 삶은 장밋빛 인생이 되지 못했다. 어린 왕자를 기다렸던 상처받은 꽃이라고 해야 할까?

2013. 6. 20. THURS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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