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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May 05. 2024

RECONSTRUCTION

복구 불가능한 사랑, 갈증의 거리.

마지막 사랑을 잃어버렸다.

눈물을 참고 걸었다.

과거의 터널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忘者,

조금만 앞을 향해 걸으면

내일에서 반기는 너와 만난다.

‘돌아보지 않는다’ 잊지 않으려는 듯

뻣뻣이 고개 받치던 喉頭,

문득 두고 온 게 있어

뒤를 돌아본다.

위에 앉은 知

아래를 지나가는 美

마법을 거는 汝

회전하는 시야엔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등을 돌린 세 장의 바이올린 나체,

망원경처럼 먼 배경 되어

일렬로 돌았으나

살아있는 너는 없었다.

나는 석상이 된다.

그 자리에 굳어진다.

고정된 창,

빈 플랫폼에서 서성이지만

마법을 풀어줄 그대는 없다.

우리는 서로 사랑했을까?

왜 모두 떠나고 나만 남아 널 그리워하는가.




[RECONSTRUCTION] MOVIE POSTER 2005. 1. 21.


영화 <리컨스트럭션 Reconstruction>은 늙은 소설가의 아름다운 아내와 젊은 포토그래퍼의 사랑을 다룬다.


한눈에 반할 만큼 매력적인 미모의 여인과 그녀에게 빠져버리는 젊은 청년. 너와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밝혀 두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것은 모두 허구이다. 여기에 살을 붙이려면 약간의 마술과 너의 연기(演技), 그리고 이를 도와줄 몇 가지 장치가 필요하다. 사랑, 애증, 질투, 의심, 회의, 망각, 부재, 엇갈림. 연인들이 겪게 되는 감정의 혼란들.


자, 한 시간 반, 시간이 없다. 빠르게 허상을 깨면서도 짧고도 긴긴 추억을 만들 장소는 어디가 좋을까? 호텔, 이왕이면 근사한 일급 호텔은 어떨까? 숨소리가 들릴 듯한 조용한 바(Bar)는? 수수하게 꾸며진 식당과 커피 향이 진한 카페는? 작은 하숙방과 옛 애인의 집은 모두 잊어버린다. 아버지도, 친구도, 이웃도. 모두 망각의 커튼 뒤에 둔다. 오직 현재에 충실한다.

 

그럼, 준비되었는가? 마술이 시작된다. 허공에 뜬 장치 사이로 그녀가 다가온다. 사진을 찍곤 웃는다. 그래, 과거의 그녀와 현재의 그녀, 열차를 타고 과거에서 현재로 미래로 시간여행을 한다. 그녀는 하나지만 둘이며, 모두 너를 사랑한다. 넌 감성을 따라가면 된다. 선택은 너의 몫.

넌 너의 눈을 믿었구나! 눈부신 햇살과 갈린 운명에. 이제 내 목을 두른 스카프처럼 길고 긴 키스를 하고 첫눈에 반한 애정을 지피며 뜨거운 하룻밤을 보낸다. 그리고는 잊는다. 나는 내 삶이, 넌 너의 삶이 있으니까.


말랑말랑한 감정을 가지고 딱딱한 거리를 걸을 순 없다. 빛을 밝힌 아침의 샤워가 어질러진 흔적을 말끔히 지우진 못하겠지만 사랑했던 너는 여기에 없을 거야. 현재에서 걷겠지만 그때의 너는 아닌 거야. 나도 마찬가지.


그래도 우리의 온기가 그립다면, 나를 사랑한다고 느낀다면 날 붙잡으러 과거의 열차를 타고 오겠는가? 그리고 네가 서 있는 자리에 초대해 주겠어?

 
그렇게는 못하겠지. 이해한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못해. 너무 이성적이 된 것일까? 아니면 감성은 제자리에 세워두는 게 살기엔 편해진 것인가.


일에 대한 몰두, 사랑에 대한 추구는 다시 시작되겠지. 모두가 가버린 곳, 나만 남았다. 지성과 아름다움의 갈등, 현재와 미래, 과거의 통행선, 늙어감, 여행, 도피는 반복된다.


‘시간에 머무르기.’


너무 사랑했던 때는 사랑을 알아보지 못하고 한 템포 늦게 발작했을 때 잡고 싶은 미련을 갖는 것. 그것은 추억과 같은 설명이 될까? 달리, 사랑이란 말로도 표현할 수 있을까?


영화 내내 사랑의 마술이 듣지 않았다. 한 여름밤의 꿈, 그 처음처럼 모두가 사랑에 등을 돌렸다. 물론 사랑의 행위는 하고 있었으나 사랑이 어디에 있는지, 자신에게 그 의미는 어떤 것인지 몰랐다.


지나버리고 나서야 무엇이 가장 소중한지 깨닫는 사람들. 외로운 인간의 유일한 도피처, 사랑이란 둥지는 이 세계에선 재건이 불가능하게 보인다. ‘미련’ = ‘복구’ = ‘사랑’ = ‘기억’ = ‘추억’ = ‘존재’ 집에 오는 내내 단어들이 맴돌았다.


2005. 1. 21. FRIDAY



사랑에 관해서는 무심한 편이다. 아무렇지 않게 이별을 고하고 아무렇지 않게 시작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재건이 가능한 사랑이 있던가? 물건은 오래 쓰는데, 사랑만큼은 오래가 아니라면 시작을 하지 않는 게 더 나아 보인다. 가끔 희망차고 아름다운 사랑을 말하는 사람들 사이로, 절망적으로 이야기하고 싶기도 하다. 살다 보면 그럴 때도 있으니까. 닿을 듯 말 듯한 갈증의 거리와 파괴된 사랑은 보편적이고 실재적이라서 아름답게 보이긴 한다. 차가운 자각이란 아름다움을 잡기엔 현실은 평범하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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