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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May 09. 2024

ONE FLEW OVER CUCKOO's NEST

뻐꾸기 둥지로 날아간 새 | NOT CRAZY JUST INSANE

[One Flew Over Cuckoo's Nest] 1975


난 밤을 사랑한다. 먹는 밤(栗) 말고, 모두를 재우는 밤(夜). 햇빛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눈을 너무 어지럽히고 덥기만 하다. 겨울이나 가을의 햇살은 좋긴 하지만 너무 빨리 져 버린다. 저녁이 될 무렵, 빛이 꺼져가면서 이상한 흥분을 불러오는 밤만 되면 낮에 보았던 재미없고 시시한 일들엔 촛불이 하나 둘 켜진다. 친구들을 만나고 영화를 보고 연극도 보고 배도 타고 술도 마신다. 조명이 비춰서 못생긴 친구도 예쁘게 보이게 하는 밤에 서면 알 수 없는 기쁨이 밀려들곤 한다. 


나만의 방을 갖고 싶어 집을 나갔던 적이 있었다. 그때 멋지게 보이려고 방문 창에다 색색깔의 화려한 셀로판지를 붙여놓으려고 했다. 아침잠만 달아나게 만드는 햇빛이 거추장스러웠다. 새벽 무렵까지 놀다가 잠들려고 할 때 눈에 거슬리기만 한 햇빛을 변형시키려고 했다. 보기 싫게 똑같은 빛으로 다가왔던 해를 다르게 보려고 불이 타오르는 모양으로 쭉쭉 찢어 붙이려고 했더니, 주인집 아줌마가 벽지만 맘대로 하라고 해서 할 순 없었다. 


벽만 마음 가는 대로 칠하고 굴러뒀던 상자에 물감도 없어서 신문지하고 색종이로 두껍게 발라놓기만 했다. 바다를 그렸던 방에서 또 덩그러니 나를 비췄던 해가 참 싫었다. 그런데 그 방도 없는 지금엔, 싫었던 그 해도 보고 싶긴 하다. 흰 벽지만 둘러진 방안에 있으니 따질 게 없다.



가끔은 이렇게 빈 방에 앉아 마음이 허전할 때 하늘을 보며 뻐꾸기 둥지로 날아간 새를 그려본다. 밤에도, 낮에도, 숲을 지나면서, 차를 타면서, 길을 걸으면서, 사람을 만나면서, 어디를 갈 때나, 좋은 풍경이든, 나쁜 일이건 간에 그곳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런데 내가 상상한 그림에는 풍경만 있을 뿐 뻐꾸기는 없다. 너무 멀리 날아갔을까? 솔직히 뻐꾸기 소리는 많이 들어봤는데 뻐꾸기 둥지를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뻐꾸기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 바보. 생김새를 모르니 당연히 찾지도 못하는 거지. 내 위를 지나갔을지 모르는데. 

그래도 그게 더 좋을 때가 있다. 내가 보지도 못했던 뻐꾸기가 소리가 들리면, 그냥 옛날부터 저게 뻐꾸기 소리였겠거니 했던 그 소리가 들리면, 가까이서든 멀리 서든 말을 꺼내본다.


- 아, 뻐꾸기네!  


그냥 노래하고 있나 보다 하고 웃게 된다. 


본 적이 없어서 굳이 찾지도 않게 된다. 소리만 듣게 돼도 굳이 찾지도 않게 된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어디선가 잘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뻐꾸기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뻐꾸기 소리를 들었던 그 귀를 쫑긋 세워본다. 혹시, 여기? 

잘 안 들린다. 잠시 사랑했던 영화, <뻐꾸기 둥지로 날아간 새 One Flew Over Cuckoo's Nest>로 달리 들어야겠다. 미친놈의 세계에서 머무는 게 일시적인 놀이라며 툴툴거리던 그곳에서, 모든 잡소리들에 소리 없이 갇혀버렸지만, 그 안의 세계에서 그 미친 소리도 듣지 않는, 미치광이 머피(Randle Patrick "Mac", McMurphy)가 되어 보련다. 



뻐꾸기 둥지로 날아간 새가 없을 때 찾게 되는 사람, 나의 기분을 업그레이드시켜 주는 맥 머피(McMurphy). 상상의 맥머피. 상큼한 욕설을 들고 등장한다.


Monologue : McMurphy | 맥 머피의 독백 

 


야! 이거 꽤 괜찮네. 제 시간이면 밥 주지, 재워주지, 약도 주지, 하릴없이 놀게 해 주지. 그리고 돈도 안 들지. 


오호! 간호사 아가씨 엉덩이 빵빵한데~ 휘이익~! 이따 으쌰 하자고. 캬캬.


에헤. 내가 누구냐고? 맥 머피. 뭐 니 놈도 모를 수 있어. 나 싸구려 잡범이거든. 남을 등쳐먹는 모기가 되기도 하고 여자들 뒤꽁무니 쫓으며 하룻밤을 구걸하지. 


이런 건 신문에 안 나니까 몇 날 밤 깜방에 있다 나오면 거리에 나돌아 다닐 수 있다고! 신문에도 TV에도 이 반반한 얼굴 안 나오니까 몰라보잖아. 


새꺄. 야 이 양아치 새꺄. 너 나 알아?


어이~ 형씨 왜 이러슈. 손 놓고 합시다. 아이, 착각했수다. 그럼 잘가슈.


거봐. 이 새끼. 글러먹을 잡새끼가 어제 지집 턴 것도 모르잖아. 시시한 거에는 사람들 관심 없거든.


어, 뭐라고? 그럼 나 도둑질은 잘하냐고? 도둑질해 먹고 살만 하냐고? 그럭저럭. 


꼴 같지 않은 머피의 법칙처럼 한건 크게 건질 것 같은 데 안 된단 말이야. 뭐, 그냥 마지막이 항상 망조를 놓지만 할 만해.


거 참, 이상하단 말이야. 맨날 싸구려만 손에 쥐니. 어찌 됐든 나 너하고 말할 시간 없어. 아줌씨가 날 밀잖아. 알았어! 간. 다. 구! 담에 봥…! 




쩝. 이 방은 또 뭐야?


지멋대로 누워 눈만 치렁치렁 치켜뜨는 놈. 체스 체짜도 모르면서 판때기 두드리는 놈. 카드판 다 뒤집어놓고 찔찔 짜는 놈. 암것도 오지 않을 창구멍 쳐다보며 미친 눈깔 굴리는 놈도 있구먼. 이거 완전 사이코들 아니야?! 


흐메, 이런! 이런데 처박히면 내가 아깝지. 얼른 제정신 차린 듯 보여서 나가야겠다. 


오~ 저 키다린 누구야? 꼭 인디언 추장같이 생겨 가지군. 


여봐. 여봐!!


이거 말벙어리야? 이거 되게 싱겁구먼. 목덜미에 올라가 농구할 때 써먹어야겠어. 


아이고. 저건 누구야? 웬 아줌마? 하얀 소복입구, 그대가 나이팅게일이슈? 


눈은 왜 떠? 뚱뚱하고 못생긴 것이. 꼭 단발머리 삼순이 같구먼. 


엥…? 뭐? 떫어? 한판 할까? 


종은 왜 치구 그래. 귀 산만하게. 


뭐? 약 받아가라고? 꼴값하군.


여봐? 이거 두 알 맞아? 나 괜찮으니까 한 알만 먹어도 되지? 엉? 여기서 꿀꺽하라고? 그래! 봐봐. 먹었지? 엉?


지랄- 야, 이 썅아. 내가 먹은 줄 아냐? 혀 밑에다 숨겨놨지. 퉤!


아이고, 이건 또 뭔 소리야? 갑자기 왜 다 방으로 들어가는 거야? 


어,,, 이 새끼. 넌 뭐야? 뭐? 손가락은 뭐 하는 겨? 눈깔 찌르려고? 엉? 저 방으로? 뭣하러? 야! 오늘 잼난거 하자나-- 슈퍼발리볼. 


엉? 안된다고? 왜 안돼? 나 보고 싶어. 엥? 디비 자라고?


야,야-! 알았어. 거 치워. 내 발로 들어갈게!


엇허! 내 발로 들어가겠다는 데 밀지 마. 알겠다고. 이거 좀도둑 빨리 자야 되는구먼. 이거 새로운 경험이구만!


그래. 그래! 오늘은 내가 쏜다. 기념으로 일찍 자주지. 




야하- 폭신하다. 깜빵보다  낫구만. 으흐흐. 창두 크고 달도 훤하고. 침대도 널찍하고. 킹 사이즈네. 


아이고! 크면 뭘 하나. 베고 잘 여편네도 없고 이거 쓸쓸하구먼. 


허... 엄…  하품이야. 미친 것들만 봤더니 눈도 아픈겨? 평소 같지 않게 잠만 쏟아지네. 야--햠-- 


에이고. 눈 버려. 이런 미친 새끼 연놈들이 득실득실한 거. 빨리 나가야겠어. 


그래도 미친 척 하긴 잘했어. 크크.. 그 따위 일 어떻게 해? 봉제인형 눈깔 끼우고 세탁하고 망치질하고 신발 닦고. 


으흐~ 여긴 침대두 꽤 좋네. 푹신푹신. 음냐. 여기 있는 거 꽤 시간 잡아먹겠구먼. 


야하암. 졸리네. 정신 차린 듯 보이려면 얼른 자야지. 


아이고, 그래도 맘 편하다. 시퍼렇게 살기로 도끼눈 채우는 놈들. 고놈들하고 어떻게 자? 고것도 등도 시린 차가운 데서. 잠두 안 온다고. 


그래. 여기 온건 잘한 거야. 미친놈들 하구 한두 달 놀아주는 셈 치지. 


하… 미친놈들. 자야지... 썩을노무 색끼들.  뭔 초저녁부터 쳐 자라고 난리야. 낼부턴 여기 나갈 궁리 해야겠다. 


ZZZZZZZ__


2004. 8. 24. THURSDAY



맥 머피도 예상 못했을 것이다. 잠시의 잔꾀가 진짜 미친놈으로 만들 줄은, 그리고 영원히 미친 세계에 갇힐 줄은 말이다. 미친놈의 세상에 대한 충격적인 진실은 역한 가증스러움조차 홍수처럼 쓸어갈 수 없다. 기분이 자질구레할 땐 욕 좀 하고 싶다. 속에서 열불 나면 고상한 말로 잠재우고 있다. 잠시 맥 머피의 입을 빌려봤다. 


우리나라의 뻐꾹새와 외국의 뻐꾸기는 의미가 다르긴 하다. 동요 [오빠 생각]에서 보이듯이 우리의 뻐꾹새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자아냄과 동시에, 뻐꾹뻐꾹 뻐꾸기시계처럼 청아한 소리 때문에 밥줄 시간을 알려주는 친숙한 이미지이다. 그러나 뻐꾸기는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탁란(托卵: Brood Parasitism)의 습성을 가진 <기생수>와 같은 약탈자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영미권에서는 '뻐꾸기짓(Cuckooing)'을 아내가 남편 몰래 바람피고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갖고서 남편 아이라고 속여 기르거나, 범죄자가 남의 집을 약탈하여 은신처로 삼는 모습을 비유해서 사용한다. 그래서 나는 가끔 밥솥 쿠쿠(Cuckoo)에서 밥을 풀 때 내 밥통이 아닌, 뻐꾸기 밥을 약탈하는 느낌이 들긴 한다. 


탄탄하고 완성도 있는 내용의 <뻐꾸기 둥지로 날아간 새 One Flew Over Cuckoo's Nest 1975>는 양아치 같은 좀도둑 잭 머피의 발랄한 입담이 <미저리 Misery 1990>의 애니 윌크스보다 더 극악한 래치드 수간호사에게 잡아먹히면서 침묵하는 순간에 극점을 이룬다. 하얀 옷으로 포장된 권력의 현실은 바로 뻐꾸기 둥지(Cuckoo)이며, 여기로 날아간 한 마리 거위(Goose)는 꿈을 잃어버린 채 하얗고 네모난 세계에서 생각의 눈을 희멀겋게 태운다. 


인간의 뇌에서 전두엽 일부를 절개하거나 긁어내는 '전전두엽 뇌엽전리술(Prefrontal Lobotomy)'은 1949년 노벨 생리학상과 의학상을 받았을 만큼 인간의 광기를 효과적으로 통제한다고 각광받았지만 실제로 잔인한 실험이다. 맥 머피가 받은 뇌엽전리술은 사람의 인간성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사고 기능과 지각력의 태반이 제거되는 시술이다. 


권력자들에게는 기계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일을 시킬 하나의 머리통이며 권력의 표를 상징한다. 그러나 무기력한 의지로 기계적인 일상만 반복하는 초점 없는 영혼을 바라보면, 과연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며 자유의지가 사라진 통제적 삶 속에서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지에 대한 고찰을 불러온다. 현재는 이 시술은 제한적으로 시행되고 있지만, 아직도 정신병원에서는 미치광이들에게 일부 사용되기도 한다. 


<뻐꾸기 둥지로 날아간 새 One Flew Over Cuckoo's Nest>는 조지오웰(George Orwell)의 1984, Nineteen Eighty-Four와 다른 색이지만, 권력자들이 원하는 일률적 통제의 사회적 현실에 대한 자각과 개인의 자유에 대한 방향 설정에 대한 자의식이 크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아마데우스 Amadeus 1984>에서 보여준 정교한 극의 구조와 인간이 갖는 예술에 대한 고뇌와 갈등, 본능적 질투까지 섬세하게 그려낸 밀로스 포먼(Miloš Forman) 감독의 체코 뉴웨이브(Czechoslovak New Wave)의 감성이 담긴, 차갑고도 뜨거운 시네마틱한 진수를 맛볼 수 있는 명작이다.




인간이 비유하는 동물적 습성은 생태계의 생물들에겐 필수적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뻐꾸기는 일반 새들이 싫어하는 송충이 같은 모충이나 해충을 잡아먹는 새이다. 개체수를 유지하기 위한 생물의 선택을 인간의 입장에서 좋다 싫다 할 것도 없을 것 같다. 의학과 기술이 발달할수록 전 세계의 인구는 조절 능력 없이 계속 늘어가기만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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