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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May 08. 2024

THE DEER HUNTER

디어헌터 | 광기의 세상, 사람사냥꾼 對 기억사냥꾼

너무 아름다워.
눈을 뗄 수가 없어.
천국에 닿은 느낌.
널 너무 안고 싶어.
주크박스에서 흘러나오는

Can't take my eyes off you에 맞춰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웃고 있는 너.
주르륵...
실린더 밖으로 탄환들이 흘러내린다.
하나의 총알만 집는다.
추르륵... 탁!
돌아가는 실린더.
너를 향해 웃는다.
원 샷!
너 맥주잔 들어 올리고
나 총구를 댄다.
안녕.
탕!

달려오는 너.

Cavatina가 흐른다.



[PEOPLE HUNTER vs MEMORY HUNTER] 2024. 5. 6. PHOTOGRAPH by CHRIS



소란스레 맥주를 따며 난동질하는 사내들에게 사슴 사냥은 그냥 한철 재미였다. 물고기는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아 즐겨 먹듯, 사슴은 비명을 지르지 않기에 방아쇠를 힘차게 쏠 수 있었다. 서로를 축복하는 생명의 포도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으면 행복할 거라는 이야기가 무색하게 친구의 아내는 하얀 웨딩드레스에 붉은 자국 세 방울을 남겼다.

'난 내 생명이 산에서 꺼져 가도 한 가지만 생각할 거야. ONE SHOT!"


"산의 나무는 언제나 다른 모습으로 서 있어서 좋다!"


친구에게 비실하게 웃으며 사슴사냥을 나가던 사내가 무심히 던진 말은 사슴 사냥이 끝나고 사람 사냥이 시작되었던 날, 빈 한 발에 자신을 잃었던 친구들의 가슴에 남았다. 하나, 둘, 셋! 세 방울은 얼룩이 되었다.

음악으로 먼저 알았던 영화 <디어 헌터 The Deer Hunter 1978>였지만, 바티나(Cavatina)가 흐르면 마음이 이상했다. 그 선율만으로도 속이 상했다.


'너에게서 눈을 뗄 수 없다'면서 'Can't take my eyes off you'를 즐겁게 부르며 사는 것만 고민하면 됐던 사람들이, 허공에서 울리는 장전된 살기에 숨 막혀서 삶을 하나 둘 놓아가는 것을 보고는, 거나한 흥취로 허름했던 공간의 온기를 메우던 그 노래가 더 아프게만 들린다.


2004. 8. 21. SATURDAY



러시안룰렛(Russian Roulette) 게임은 복불복이다. 리볼버에서 언제 장전된 총알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담력이 얼마나 있느냐와 상관없이 누가 죽고 누가 사느냐의 문제는, 게임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공평한 죽음의 확률에 의해 결정된다. 이번에 내가 죽지 않아도, 게임에 참여한 누군가는 죽게 되어있다. 한마디로 미친놈들의 게임이다. 게임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은 손이나 다리를 내놓고 목숨을 부지하기도 한다. 일상에서 벗어난 광기의 공간에서는 부지불식간에 당신을 정신 나간 사슴사냥의 시간으로 초대할지 모른다.  




Dilemma of the Memory Hunter | 기억사냥꾼의 딜레마

디지털 기기로 작업하거나 변환한 조각들의 단점은 저장된 전자기기 속에서 온전한 모습으로 남는 것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갑자기 발작하듯이 시간과 프로그래밍이 안 맞을 때, 혹은 기기의 문제로 아예 '액박(Xbox)'이 뜨거나 화면의 절반이 날아가 있다. 복구도 안 되는 장애의 숫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간다. 글자는 남아있는데, 그림은 하나둘씩 사라져 간다. 가끔 글들도 무질서한(Disorder) 상태로 변해있다. 어떻게 콤팩트한 기록으로 남길 것인가 생각해 본다. 프린트로 남겨도 공간을 차지한다. 실재의 공간에서 자리를 차지하면 간편하게 이동이 불가능하다.


적어 놓은 글이 날아가면 다시 써도 똑같지 않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그려놓은 그림이 사라지면 다시 그릴 때 원래와 똑같이 그릴 수 없다. 사진도 순간이 지나가면 더 이상 그 순간은 잡아낼 수 없다. 꼭 디지털 시대의 문제만은 아니다. 특정 대상을 보관하고 기록화시킬 수 없다면, 양으로 승부해서 계속 생산해야 할 텐데, 번뜩임이 사라진 다작 속에서 정확한 포인트가 존재하던가?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가볍게 만든 한 두 작품으로는 절대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점이다.


카메라를 들고 초점을 맞춘 번쩍이는 순간이 사라지면 아쉬운 마음이 든다. 글도 한차례 적었는데, 날아가서 다시 적으면 의욕이 사라진다. 잡았던 사냥감을 정성껏 요리까지 했는데, 젓가락을 들었더니 식탁 위에서 투명인간한테 음식을 홀랑 도둑맞은 기분이다. 기억의 감각을 사냥한 뒤 요리한 다음, 섭취까지 끝내는 효과적인 방법을 고민해 봐야겠다.




존재론 : 기억 전승과 믿음의 본질

인류의 초창기 기록은 한 인간의 기억 창고에서 다른 인간의 기억 창고로 암송되어 전이되었다. 활자가 개발되기 전, 각 부족들의 역사는 그들 존재와 다름없는 실존적인 증명이었으며, 어둠의 기억 속에서 신성시되었다. 기독교나 불교, 회교, 조로아스터교, 힌두교 등에서는 초창기 구전으로 전해지던 신화나 전설, 믿음의 이야기가 시간을 넘어가면서 합송과 독송을 통해 보편성을 획득하고, 그중에서 가장 핵심은 기억할 수 있는 이를 지정하여 외우도록 훈련시키고 이를 후대에게 알리도록 했다. 그들이 바로 인류 비밀의 문을 쥐고 있는 신의 대리자이자, 인간과 이전의 삶을 소통할 중간자이다. 과연 인간들이 신성하다고 믿고 있는 것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 것인가.


현재는 널린 것이 기억의 소재이지만, 오히려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인지 보편적이고 통합적인 사고관으로 발췌해야 할 정도로 진정한 글들이나 의미로운 그림은 찾아보기 힘들다. 감자밭에서 감자를 캐는 것이 쉬울까? 사금강에서 금을 캐는 것이 쉬울까? 아무리 사랑한다고 외쳐도 하늘에서 별이나 달을 딸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존재의 본질은 하늘에 있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스스로에게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끝나지 않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에서 보듯이, 시간이 지나면서 드러나는 싸움의 우열은 기록의 전승과 유지와도 연결된다. 둥지를 강탈하는 얌체 같은 새들의 날갯짓은 기생충의 비행과 닮았다. 의미로움이 무의미로 변해버린 격전 속에서 지식이 무지(無知)를 억누를 근거가 있는지, 생사의 슬픔 앞에서 냉정함이 무슨 소용인지, 흘러내리는 피의 강에서 옳고 그름이 무슨 의미인지를 묻게 된다.


광기의 인간사냥은 지구 곳곳에서 쓰나미 같은 게릴라전으로 자행되고 있다. 누가 사냥꾼이고 사냥감인지 게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관심 없다. 게임 밖 사람들 또한 죽음을 스포츠 중계 하듯이 경쟁하는 보도전쟁(報道戰爭)에 휘말려 있다. 밥을 먹으면서 남의 죽음을 본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인데, 아무도 자성(自省)이 없다. 죽음 앞에 네 편 내 편이 어디 있는가? 광기로 먹고사는 광기로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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