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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May 16. 2024

RENé MAGRITTE | LA MéMOIRE

르네 마그리트|초현실주의(Surréalisme)적인 기억의 해석과 변용

 LA MéMOIRE
[La mémoire, René Magritte | Die Erinnerung II, 1948]


마술이 낱낱이 해부되면 그것은 유희를 목적으로 한 일종의 시시한 사기로 인식된다. 마술은 영원히 마술로 남겨두어야 한다. 상상이 파괴되지 않도록 꿈같은 세월은 흘러가야 한다. 우아하게 물 위를 유영하는 백조의 자태를 보며 감탄하는 사람들에게 물아래서 쉼 없이 발길질하는 가녀린 두 다리는 새하얀 대상의 신비를 겁탈한다. 잠시 기분전환을 하고 싶었던 사람들에게 모두가 소유하고 있는 일상성으로 회귀하는 일은 참혹한 실망과 회의를 안겨줄지도 모른다.


기발한 상상의 미학을 만들어낸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의 창조성은 끊임없이 다변화된 일상을 포착한 근면한 실행에 기인한다. 단순히 그림으로서의 <기억 La mémoire>을 대했을 때 피 흘리는 여인의 두상은 뇌성을 울릴 정도로 충격적이었지만, 인간이라는 친밀한 오브제에 혈흔의 흔적을 덧댄 탄생을 지켜보는 일은 그리 감격스럽지 않았다. 오묘한 기억을 만드는 과정이 쉬워 보여서 허탈했다고 할까?


가볍게 초현실의 범류에서 하루를 트레이닝할 겸, 친구와 찾았던 미술관은 2006년 겨울의 싸늘한 흔적을 지워내지 못했다. 복장만 트레이닝 데이에 어울렸을 뿐, 짓눌려 살아온 하루에 대한 부담은 재탕으로 내린 탕약처럼 쓰기만 했다. 마그리트의 재능을 살리는데 2% 부족했던 자작의 영상을 보며 그에게 천부적인 재능은 오직 그림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초현실주의(Surréalisme, 超現實主義)는 대립과 경쟁, 생과 죽음, 물질과 정신들로 점철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불굴의 시대정신이 만들어낸 유일한 탈출구라기보다는, 작가 개인의 상상과 단조로운 일상의 요소를 다양한 방식으로 혼합하고자 했던 노력의 결과물처럼 보인다. 그 단순한 과정이 오히려 현실과 상반된 해석의 무한한 고리를 제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따라 길을 나서면 밤이든, 낮이든 내가 살아왔던 한 시절의 기분에 사로잡히곤 한다. 일곱 살에 맛보던 새까만 밤꽃 향기를 다시 느낀다는 것은 너무 황홀하고 눈물 나게 감격스럽지 뭔가! 기억은 갖가지 형태를 지닌다. 내가 서 있는 곳이 나 자신이 알 수 없을 만큼 변했을지라도 기억의 타임머신을 타고 값비싼 세월을 누비는 경험은 굳어진 피가 끓도록 아름다운 일이다. 아직 그럴 수 있어서 살맛이 난다. 어둠 속에서 나를 비추는 기억, 촛불의 그을음으로 피어오르리라.


2007. 4. 30. MONDAY





BEYOND THE SKY
[The False Mirror, René Magritte 1928]


1. "예술가들에게 진실로 감사해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이 볼 수 있는 하나의 세계를 넘어 세상에 존재하는 예술가의 수만큼 많은 세계를 보게 한 점일 것이다."  마르셸 프루스트, Marcel Proust


하늘의 무수한 별들 중에서 내가 특별히 아끼는 별도 있기 마련이다. 그 별의 번지수는 Asteroid 106. 젊게 살고 싶다. 언제나 나의 별을 잊지 않을 것이다.



2. "우리 모두는 진흙 구덩이 속을 뒹굴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 중 몇몇은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꿈을 갖고 산다." 오스카 와일드, Oscar Wilde


모호하기만 했던 꿈은 막막한 장벽을 뒤로하고 시선을 돌림으로써 새로운 방향을 갖게 되었다. 밤에만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별은 낮에도 분명 존재하고 있다. 작은 지구에 갇혀 보는 감각을 제한당했을 뿐이다. 상상이 살아있고 그것을 실행한다! 살맛 난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말이겠지.



3. 인생을 즐겁게 살려면 자신의 일과 삶에 대한 열정이 풍부해야 하며 지그시 어제와 오늘, 내일을 직시할 수 있는 근성과 끈기, 운을 잡을 기회와 적시타를 날릴 수 있는 감각이 있어야 한다. <그녀들과의 대화 중에서>


2006. 7. 4. SUNDAY





Turn On the Modeling Lamp
[The Red Model, René Magritte. 1934]


스튜디오의 모델링 램프는

삼일 밤 내내 불타올랐고

멍하니 포즈 취한 그를 찍는 이,

아무도 없었다.


존재는 강렬하였으나 보는 이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유로웠고 가끔 외로웠다.

너의 흔적, 자취, 여운.

모든 게 그리워지나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당신은 투명 인간의 발을 본 적이 있는가?

이 땅에 나를 벗어두고 훨훨 하늘을 날자.

거칠 것 없는 가슴에 시원한 바람이 불게.


2006. 6. 4. SUNDAY





DEFLOWER
[Le viol, René Magritte 1934]


"모든 성적 일탈 중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순결’이다." 아나톨 프랑스(Anatole France)   


내가 아는 그녀는 날개 한쪽이 상하였다. 아픈 날개 한쪽이 밤새도록 바다와 이야기하면 다른 한쪽은 잠이 들었다. 하늘을 날고 싶은 그녀는 슬픈 이야기를 들으면 허리를 움츠렸고 기쁜 소식을 전할 때는 팔을 벌렸다. 한쪽이 움직이지 않아도 그렇게 한쪽으로만 퍼덕였다.


“행복해요?”


오랜만에 본 그가 물었다.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사랑하면서 상처 입지 않고 현재의 모습 변함없이 약속한 상태로만 머무른다는 것이 가능할까? 게임을 하고 싶다는 마음 반. 아직은 아니라는 생각 반.


나는 도대체 정신이 있는 사람인가? 번잡한 오욕과 고통의 중간에서 명상과 온화함으로 육을 감싸는 사이 얼마만큼의 내가 만들어질지 모르겠다. 인간의 관습은 각자의 취향에 맞게 고쳐 입는 헌 옷이다. 왜 이렇게 일탈이 자연스러운지, 욕심으로 만들어진 천형이 저주스러울수록 웃는 법을 터득해 간 거다. 아무 말 없이 울지만 너무 행복하다는 듯이.


관계의 정의가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평범한 사람으로서 지금 생활이 안정이라 여긴다면, 결코 현재를 엉망으로 만드는 변화를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욕망으로 인해 생기는 파장을 견뎌내지 못할 거면서 왜 우리는 이토록 바보 같은 일을 저지르는 것일까? 자신의 세계를 파괴하고 타인의 세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후(後)폭풍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것이다. 자신에게 강하지 않은 사람과 경주를 하고 싶지 않다. 이해는 한다. 의 일탈을, 아직까지는 마음이 아닌 머리로.



나는 내가 꺾은 꽃을 사랑하지 않았네

흩어진 꽃잎이 아까워

잠시 바라보았을 뿐

그런 것일까.

그런 것일까.


시들기 전에 나를 안아요

어여쁜 꽃이 말하였다네

내 속삭임이요? 네 진심이요?

그건 알 수 없다네.

알 수 없다네.


2005. 12. 30. FRIDAY





Bite you, Eat  you, Feel you. It's my Pleasure.
[PLEASURE, René Magritte 1927]


지평 위로 날아올라 창공을 먹는 너,
폐에 심은 씨앗은 찬 悲音을 내뿜네.
赤色 警報에 황홀하게 겁먹은 여인,
널 먹는 기쁨에 취해서 피를 흘린다.


Rising above the horizon, you devour the sky,

The seeds planted in lungs exhale a cold lament.

A woman, entranced, by the crimson alarm, fearfully consumed.

In the ecstasy of devouring you, she spills blood.



너와 내가 즐겨 먹던

개암나무색의 초콜릿 새는 사라지고

젊은 그녀만이

살아있는 새를 먹는구나.


The chocolate bird of hazel tree's color

That you and I used to enjoy eating disappears,

And only the young woman

Eats the bird that remains alive.


2004. 11. 15. MONDAY





Cutting Me for the Eternity
[The Eternally Obvious, René Magritte. 1948]


마술상자에서 컷팅되는 건 기쁘지 않다. 목은 관객 앞에 놓여있으되 몸은 검은 천 뒤로 숨어버렸을 테니 얼굴만 웃고서 몸을 빼고 있으면 완전 광대나 다름없지 않은가. 사람들은 즐거워하고 놀라겠지만 이미 사실을 알고서 장난치는 사람들은 그 모습에 씁쓸할 뿐이다. 차라리 상자 밖으로 튀어나 온 어릿광대가 훨씬 낫겠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공중에 떠있는 돌들, 새를 먹는 여자, 대 가족.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보고 있으면 유쾌하지가 않다. 다른 초현실주의 그림과 달리 불쾌하거나 생각이 많아진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그냥. 사람들은 ‘르네 마그리트’하며 그의 철학을 논하고 신비를 조장한다. 그는 "누군가의 과거나 자신의 과거에 관심 없다"라며 무심(無心)함을 가장하지만 그 누구보다 자신의 세계에 억압되어 있음이 절로 나타나서 기분이 나쁘다. 그의 그림에선 냉혹함이 많다.

난 그가 신비스럽지 않다. 속이 거북할 정도로 적나라함이 구역질 난다. 어감이 센가? 이 그림을 봤을 때 몸을 자르는 서걱함이 들었기에 기분이 나빠서 골랐다.


2004. 9. 23. THURSDAY





TIME LOOP MEMORY
[René Magritte et Moi] 2017. 5. 16. Castel Nuovo - Maschio Angioino. Napoli. PHOTOGRAPHY by CHRIS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은 신경을 건드렸다. 설명되지 않은 미진하고 현실을 이탈한 듯한 괴이한 형상은 상황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부합되는 지점이 있었다. 그의 그림을 보면서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했다. 지금 보니 르네의 그림은 투정 부리기 좋은 오브제(Object)였다. 내가 뭐라고 하든 말든, 말도 없고 존재도 없다. 2007년 르네 마그리트를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보고, 나폴리의 누오보성(Castel Nuovo)에서 십 년 만에 다시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설렘이 눈 속에서 반짝거렸다. 시원한 저녁바람 사이로 나의 긴 머리가 흩날렸다. 그에게 갖고 있던 수다스러운 불만을 홀랑 잠재우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2017년 5월 16일이었다. 파이프 담배를 물고 누오보 성 길가에서 둥그렇게 표지판으로 박혀 있는 르네에게 포즈 좀 취하라고 했다.



"안녕, 르네! 사진 찍을게요."


하나, 둘, 찰칵!



시간의 벨트가 점프한다. 2024-2017-2007-2004. 돌아보면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2007년 시립미술관에 누구와 갔을까? 언제 갔을까? 완전 추리소설이다. 르네 마그리트전은 집중해서 봤는데, 지금은 르네의 그림만 생각난다. 르네가 찍은 영상도 아른거린다. 영상은 초짜가 찍은 듯이 재미가 없었다. 글에는 감정적인 기억이 몰려 있다. 기억은 왜곡되기 쉽다. 어느 시절에 흘려놓은 글을 보는 것은 인식의 자락을 들춘다. 공백으로 남은 말없는 공간에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던 날들을 그려본다. 





내 기억의 일부가 어디에서 상처받았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오른쪽이 아픈가 왼쪽이 아픈가 가슴인가 머리인가 알 수 없다. 기억은 현재의 상상 속에서 무한히 변용되어 간다.

2013. 8. 1.  THURS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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