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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Jun 23. 2024

THE CONSTANCY OF CHANGE

"변화의 항상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Self-Portrait in the Modigliani Opera] WATCOM DRAWING by CHRIS


"바뀌면 바뀔수록 그대로다." <칼 에릭슨>

"Plus Ça Change, Plus C'Est La Même Chose." Carl Erickson


칼 에릭슨(Carl Erickson) 그림 옆에 인용되어 있던 구절이었다. 그림을 그리면 매번 구상은 달라지겠지만 작가가 그리는 화법이나 미적인 구도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바뀌면 바뀔수록 그대로란 말에 고개를 끄덕여본다. 속담은 민족의 습성과 의식의 경계를 뛰어넘어 세월의 지평에다 지혜의 샘물을 흘린다. 멈추면 멈출수록 세상이 재빨리 흘러가게 보이듯이 바뀌면 바뀔수록 그대로라는 말은 단순히 창조의 법칙만이 아니라 인간 삶에 있어서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예전과 비교해서 사람들의 삶은 뭐가 달라졌을까? 물질적인 편리함과 외관을 장식할 풍성함을 빼고 마음속에 저장된 기본적인 가치에 있어서 과연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인성(人性)이 시간의 선상에서 신선화(仙人化)된 것은 아니잖는가?


옆 자리에 탄 형에게 물어봤다.


- 살면서 무엇이 변치 않는 가치 같아?

- "핑크빛 사랑."

- 오호. 아직도! 소년 같아.


나는 키득키득 웃었다.


- 불에 덴 자는 핑크빛 사랑을 믿지 않아. 그런 건 너무 동화 같다고.


난 볼멘소리로 사랑은 핏빛이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놀란 눈으로 고개를 가로젓는다.


- "너는 너무 파괴를 좋아해."

- 응, 맞아. 비가 온 뒤의 하늘은 파랗다. 그리고 노을이 질 걸 알아. 바다에 살던 자는 거칠음과 죽음에 길들여졌어. 한 걸음 밖에서 구경한 자들은 그 두려움을 알 수 없지. 얼마나 피 말리는지를. 비록 우리가 같은 것을 경험한다고 해도 항상 같은 곳에 시선을 두고 있지 않은 것처럼 그들은 알 수 없어. 마지막에 다달을 때까지. 누군가 긴 비명을 지를 때까지. 어쩌면 그는 입을 다물지 몰라. 말하고 싶지 않을지 몰라.


그나저나 바뀐다는 것은 또 다른 무언가가 다가옴을 의미할까? 아니면 같은 곳에서의 비슷한 전환을 의미할까? 인간의 상상이 볼 수 있고 만져볼 수 있고 맛볼 수 있고 냄새 맡고 들을 수 있게 오감으로 구체화된 것을 염두에 둔다면 구체적인 현현이, 상상을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던 진공포장 속의 강한 바람을 서서히 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나를 달래기 위해 눈먼 사람처럼 중얼댄다. 정신을 잃을 정도로 갑갑할 때는 친구와 통화를 하고 싶다.


- 안녕, 친구. 너의 즐거움은 무엇인가? 우리는 예전보다 약간씩 달라졌지. 너는 나보다 조금 자유로워. 그런데 넌 어떤가? 훨씬 세상을 빨리 접하잖아. 쇠사슬은 한 겹이고."


오프(OFF)라서 쉬고 있는 녀석이 모기만 한 목소리로 말했다.


"즐거움은 많이 사라졌다. 보이는 것과 달리, 사는 것이 그리 재미있지 않아. 단순히 놀면서 지낼 수 없으니 세상이 달라진 것에 비해 자신이 달라진 속도는 가늠할 수 없어."

- 그래, 그리 보여. 그래도 말해봐. 뭐가 즐거워?


그는 나와의 대화를 자신의 기쁨 속에 넣어두었다. 난 허리를 비틀면서 좋아했다. 강요 같지만! 그런데 수화기 너머의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바로 전화를 끊었다. 핸드폰을 바꿀까? 모양만 낡은 것이 아닌 내용물도 흔들리는 고물딱지. 다른 사람에게 자발적으로 전화를 건 적은 거의 없다. 습관을 버리게 만드는 이들은 적다. 그래도 나를 아는 그들에게만큼은 기분을 뜸하게 말하고 싶다.


- 소리칠 수 없다면 속삭여야 돼.


대부분의 음성이 저조하고 심사가 퉁명스러워서 말하고 싶지 않지만 살면서 서로를 전부 다 볼 수 없어도 맞닿은 등이 상대를 향해 온기를 전하고 있으니까. 우리는 너무 다른데. 각자의 공간에서 네가 어디에 있는지 잘 잊는데. 공감할 요소가 마음뿐인 것이 편한 것인가. 기분 가는 대로 행동하고 싶다.


- 욕을 많이 하는 편이지만. 뭐 어때? 관습은 과감히 제치지 뭐.


분쇄기로 정신을 갈아도 시원하지 않을 자에게 도덕과 질서를 요구한다는 것은 번민을 초래할 뿐이다. 시선이 분산되면 본질로 접근하는 길은 멀어진다. 정말이지 몇 년 후에나 일어서야 할 것 같은 어두운 기분이 지속되고 있다. 거울을 보다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얼굴이 서늘하게 느껴졌다. 들끓는 심사에 비해 감정이 없는 눈에 섬광이 없는데도 뚫린 눈이 더 살벌하다. 털어내려다가 주저앉고 웃다가 무표정해지는 변덕이 그저 성질 탓이면 나를 개선하는데 신경을 쓰겠건만 이러다가 돌무더기에 깔리는 것은 아니겠지? 수형생활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해방의 날이 길어졌다고 한다. 그래도 꼭 여길 떠날 것이다. 어디론가 가고 있는 나의 뒷모습을 그리면 입 안이 맹맹해진다. 싱거운 곳엔 넣을 것이 많잖아. 잠시 밋밋한 나에게도 꽃냄새를.


2005. 5. 9. MONDAY



무엇인가 변할수록 더 많은 것이 그대로 남는다. 기다림에 인색한 사람들은 현재에 머무르고 변화를 택하지 않는다. 수많은 가정(假定)과 이유 없는 반목(反目)을 거치며 오늘의 나를 만들어가는 일들은 불어오는 시대의 변화에서 하나의 일정한 느낌을 찾아내길 요구한다. 아름다운 것들은 바뀌면 바뀔수록 아름다울 것이다. 추한 것들은 바뀌면 바뀔수록 추할 것이다. 바뀜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현상에서 바뀜은 발생한다. 이 단순한 진실은 삶의 진행에서 지금의 변화 없음에 실망하여 떠난 이보다는 부단히 변화를 찾아가는 이에게만 존재할 것이며, 변화가 당장 존재하지 않음에도 꾸준하게 작업을 계속하는 사람에게만 자연이 부여하는 선물이 될 것이다.



바뀌면 바뀔수록 그대로다.

그대로임에도 불구하고 바뀜은 진행된다.

그대로인 상태로 머무르는 것을 벗어나서 변화를 향해 바꾸어야 한다.


"Plus ça change, plus c'est la même chose.

Malgré cette constance, le changement se poursuit.

Au lieu de rester dans un état inchangé, il faut se tourner vers le chang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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