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QUIéTUDE, ANXIETY

마노엘 드 올리베이라 <불안> 영원한 피안으로 가는 매혹의 만화경

by CHRIS
[INQUIéTUDE, Manoel de Oliveira 1998] MOVIE POSTER



탁-탁-탁. 지팡이 세 걸음, 팔순의 아버지는 환갑을 넘긴 아들에게 소리 지른다.


“죽여버려!”

대통령 표창과 주변의 평판, 기록적인 성취, 호화로운 영광, 세기적인 성과. 그런 것이 무슨 상관인가. 대중에게 인상을 남기려면 명예로운 상태에서 소멸되는 것이 중요하다. 죽음이 바로, 그 역할을 한다. 학회, 강연에 초대를 받으며 지위를 얻은 듯 뽐내지만 마음 한구석이 허망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불완전한 기억을 돌릴 때마다 불멸 상태의 파기를 상기한다. 죽는 것은 영원하다는 것과 동의어인가?


아름다운 시절은 멀다. 탁자 위에 놓인 사진 속 젊은 여자는 검버섯이 핀 피크닉용 케이크를 자른다. 불멸(Immortal), 결코 죽지 않는 상태에 놓인 사고(事故)와 자살(自殺)을 객석에서 지켜보는 남녀의 운명은 경박한 어조로 세상을 탐미하는 자들에게 어떤 말도 건네지 않는다. 깡충깡충 뛰다가 어두운 거리를 걸어간다. 죽은 잎처럼 바스락거리는 가는 발목에 반한 남자들. 내일이면 무너질 삶의 목표에 일생의 열망과 쾌락을 희생해도 괜찮다고 말한다. 팔목에서 흩어진 빨간 꽃잎은 한 여름 열기로 끈적거리는 아스팔트를 두드린다. 똑-똑. 일어나. 일어나. 자고 있는 당신 곁에 눕지 못하고 밤새 그대를 적는다.


나의 영혼을 사랑해 주는 사람이 좋지만 곱다운 나이에 매춘에 물든 손짓을 알아보는 이 누구인가? 잠언(箴言)을 내뿜는 담배연기. 경박한 죽음이 흘리는 한숨. 아폴로의 영혼은 돈 많은 자에게 매수당하고 행복만 빼고 내가 가진 것은 보석, 실크 드레스, 숭배하는 애인들. 겨울밤 난롯가에서 생각에 잠겨 장작이 타는 소리에 빠져들 수 있다면! 하지만 쇠약해진 숨을 쉬면서 오늘도 독한 위로주를 마신다.


청춘은 큐피드의 동행을 거부하고

악덕을 참으며 죽음에 매혹된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위선적인 도덕심.

단 한 명의 신비주의자는

미래의 공허 속에서 속죄를 약속하고

그날 밤의 발걸음은 거리를 헤매면서

그녀가 울지 않은 시간을 비춘다.


가죽 끈으로 묶인 머리를 풀고서 강의 어머니는 금빛 손가락을 바라본다. 불가사의한 힘이 지배하는 수수께끼의 기록들. 녹색 비를 맞으며 시간을 잡는 소녀에게 과거가 없는 고독이란 어떤 의미인가. 아지랑이 봄이 솟는다. 잠도 오지 않는 천년(千年). 공허를 메운 수탉의 울음. 치아가 고른 종 치는 소년을 떠올리게 한다. 딸기 과즙은 누구의 앞치마에 떨어졌는가. 열정적인 한 소녀가 이유 없이 슬퍼하니 순진한 마음은 위반을 열망하며 종잡을 수 없는 폐허의 동굴로 달려간다. 천박한 사람들의 입방질. 산 자를 위한 무덤가에서 갈기갈기 찢긴 역사를 보기도 민망하였다. 어제 강의 어머니를 찾았다.


태초에 혼돈이 있었다.

대지와 광대한 혼돈은 밤과 어둠을 낳았다.

그 속에서 하늘과 빛이 태어났다.

대지에게는 덮개가 필요했다.

그리하여 태양과 기억과 달과 별이 생겨났다.


신들의 계보 (신통기 神統記), 헤시오도스 Theogonia(Θεογονία). Hesiodos》


고대에서 태어난 발음은 사라지고 혼돈은 여전히 세상을 뒤덮고 있다. 음유 시인들의 구슬픈 노래는 각 나라 언어로 퍼져나간다. 내 다리는 대지가 속삭이는 것을 듣지 못하고 불과 소금으로 만들어진 태양은 뜨겁게 숨길을 조인다. 자유로워지려면 불을 끄고 소금을 흩뿌려야 한다. 사장된 열정이여! 너의 벌거벗은 가슴과 슬프기만 한 꽃다운 마음은 새들의 발목을 묶고 있는 가죽 신발을 벗기리라.


땅에서 물이 솟고 웃음은 동굴로 퍼져나가 조각상을 거부하는 사랑에 파괴와 행운의 감정이 깃든다. 생소하고 이상한 행동이 날 유쾌하게 하였다. 남자친구를 바람 맞히고 말 거는 모든 이를 거부하였네. 바람은 사람 사이의 벽을 날려버린다. 골목길을 걸으며 저주의 십자가에 키스를, 내 황금 손가락에도. 나를 볼 수 있는 곳으로 떠나가 자유로워지리라. 문명과 멀리 떨어진 석굴에서 천년 뒤, 깨어나리라!


연극을 통하여 바라보는 기억 속의 현실. 그 안에 중첩된 동화. 다시 사소해진 현실의 조각들 속에서 비판과 실재와 판타지가 숨을 쉰다. 제약을 거부하는 비 오는 밤이면 언제나 불멸의 느낌이 불어온다.


하찮다 가장 고귀한 요소들이란

불안을 반기는 당신까지도 모두


2005. 7. 9. SATURDAY




시간 속에 갇힌 , 검은 물과 긴 창을 잡네.

오래된 청량함의 시간들

반기듯이 흔들흔들,

불안으로 꽉 찬 영화적 취향

비순응과 이상한 것들로,

희귀하고 잡을 수 없는 사물들과

혹은 심사숙고하고 적나라한 사실들로,

대중적인 것에서 엇나간 것들로 가득!

비밀스러운 비서는 혼자서

변칙적인 습관에 사로잡,

처음 느낀 불안은

빛 한 방울도 없는 세계 그리고,

소리 없이 속삭이는 움직임

길게 침잠되는 가녀린 선체,

모든 해석과 비평조차도 사라진

찬란한 침묵만이 의미로워지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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