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RIS May 19. 2024

DECISION TO LEAVE OR LOVE

박찬욱 <헤어질 결심> | 헤어질 것인지 사랑할 것인지의 결심

[DECISION TO LOVE IN THE SEA] 2024. 5. 18. PHOTOGRAPH by CHRIS


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난 순간 나의 사랑은 시작되었죠.

你说爱我的瞬间你的爱结束了, 你的爱结束的瞬间我的爱开始了。 영화 <헤어질 결심> 중에서



헤어짐에도 결심이 필요할까? 그런데, 보니까 이별만이 아니라 사랑에도 결심이 필요한가 보다. 자동적으로 <헤어질 결심>의 영문명을 적는 손길에 <Decision to Leave>를 <Decision to Love>로 적고 있었다. 그래, 진정한 사랑을 원한다면 사랑을 하는 것에도 결심이 필요하다.


당신은 인생의 쓴맛을 아는가? 경찰과 용의자, 보고 보이는 관계. 관음과 관찰 속에서 알 수 없는 운명(運命)은 어두운 운명(殞命)으로 마무리되곤 한다. 조용히 웃음 짓는 모습이 실성한 여인의 부서진 가슴과 금이 간 뼈들 속에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숨겨놓고 있다.


"슬픔이 파도처럼 덮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는 거야."


공자는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인자한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고 했어요. 나는 인자한 사람이 아니에요. 나는 바다가 좋아요.

孔子说知者樂水, 仁者樂山, 我不是仁者, 我喜欢海



가끔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같은 언어를 쓰고 있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여 내용을 통역해 준다고 해도, 각자 사랑으로 생각하는 포인트와 시점은 다르다. 당신이 잊은 사랑이라고 인식하는 단어가 그녀의 꿈일 수도 있다. 한국어가 자신 없을 때 웃는 여인, 아내에게도 준비하지 않았던 시마스시 모둠초밥은 바다를 좋아하는 여인을 위해 마련한 관찰자의 배려였다.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을 냉장고에 넣지 않고 TV를 켜놓고서 불편하게 잠을 청하는 그녀를 밤새도록 바라보다가 깊은 단잠에 빠진 남자에게 핸드폰 플래시를 터트리며 여자가 경쾌하게 말한다.


굿모닝!


나에게 필요한 것은 친절한 형사의 심장이야. 아, 정정할게. 그 남자의 마음이야. 안개 낀 바다가 좋아.


그녀는 정훈희의 [안개]를 흥얼거린다.


나 홀로 걸어가는

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

그 언젠가 다정했던

그대의 그림자 하나


"살인은 흡연과 같아서 처음만 어렵다."


뭐 이렇게 무섭게만 이야기 한담? 한국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결혼했다고 좋아하는 것을 중단하는가? 이제 안녕히 주무시겠습니까? 내가 당신을 재워 줄게요. 눈을 감고 심장과 당신의 마음과 숨소리까지 들어봐요. 나의 숨과 당신 숨을 맞출게요. 그렇게 물로 들어갈게요. 당신은 해파리예요. 눈도 코도 없는, 생각도 없는,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고 감정도 없어. 자, 물을 밀어내면서 오늘 일을 밀어내요.



사진에 영혼이 담긴다고 믿는 사람들은 같은 종족이었다. 세상을 똑바로 보려고 노력했고 남자는 여자를 좋아했다. 좋아하는 이유? 그녀는 몸이 꼿꼿했다. 긴장하지 않으면서 똑바른 사람이었다. 더러운 세상은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렇게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당신 집 앞에서 서성이며 당신의 숨소리를 맡던 밤. 당신을 끌어안으며 속삭인 나는 품위는 자부심에서 나온다고 믿고 있었는데, 한 여자에 미쳐서 내 품위건 인격이건 모두 망쳐버린 거야.


"나는 붕괴되었어요.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아, 붕괴(崩溃)라! 무너지고 깨진다니. 나로 인해서? 나의 비밀들까지 묻는 당신의 사랑은 잊지 못할 거예요.



영화 속에서도 지적하듯이 중년남성 56%가 심각한 우울증 환자라는 연구 통계가 있다. 살인과 폭력이 함께 있어야 행복했던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의 시절이 끝나면 남성 호르몬은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눈물과 감정이 솟는 40대로 접어들면 에스트로겐(Estrogen)의 비율이 더 커지면서 남성의 목소리는 여성을 닮아간다. 여자의 말투에서 사극과 영화적인 고상한 어투를 발견하고, 비극과 팜므파탈에 대한 환상을 가득히 안는 남자는 그녀에 대한 끌림으로 황폐한 얼굴을 드러낸다.


차돌처럼 단단한 알리바이를 뚫고 남자와 헤어 결심을 하려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그녀는 그리움에 당신을 만나러 살인사건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 안개는 사랑을 떠나게 하는 이유이지 오게 하는 이유는 아닌데, 우리는 형사와 피의자의 관계니까 다시 만나게 된다. 402일 동안 계속된 불면의 밤은 미결사건이 되고 싶은 여자와의 박하향 가득한 키스만 남겨놓는다. 그녀가 숨기고 싶었던 비밀스러웠던 녹음파일은 내가 사랑에 절망했고, 그녀에게 이별을 고했던 날에 남겨진 목소리였다.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청록색 물통이 만든 모래 안 동굴로 들어가 영원히 비밀을 묻어버린 여인을 덮으며 바다의 포말은 무너지고 깨어진다.


당신 영원한 나의 피의자. 마음을 앗아간 그녀는 벽에다 자기 사진을 붙여놓고 오로지 자기 생각만 하라고 한다. 흘러오는 물길 속에서 그녀를 삼킨 바다는 말없이 남자를 회오리친다.


그녀의 바다.

푸른 청록의 작은 바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세상.

만조가 다가오고, 바다가 되어버린 그녀.

그녀의 헤어질 결심은

그녀가 나에게 보여준 사랑.




사랑에 이유가 있을까? 바다 위에 흐르던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Adagietto)를 들으며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영원한 사랑을 묻는 사람과 떠나간 사랑을 찾는 인간의 공허한 외침은 바닷속에 흩어진다. 모든 비밀을 구멍 속에 묻어버린 그녀가 온몸으로 막은 소리는 사랑이었나 보다. <헤어질 결심>, 그건 사랑했던 여인이 한 남자에게 잠들지 않는 영원한 불면의 밤을 선사한, 그 남자가 잊어버린, 사랑을 고백하던 목소리였다.






여운이 가신 뒤에 비평을 해야겠다.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해 순수한 영화감상으로 마무리한다.

작가의 이전글 CHINA's ART DISTRICT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