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상상
사랑은 여러 형태가 있다. 나에게 사랑은 현실적인 해결책과 같다.
사랑해요. 감사해요.
초코파이 두 박스 가지고 가. 박카스 젤리도 있다.
일을 하면서 효과적인 결과를 이끌어내려면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다만 제삼자의 사생활에 대한 평가와 감상은 대화 당사자들의 문제와 관련이 없고 현실 개선에 있어서도 하등 필요 없는 재료이다. 상대의 관심을 문제풀이에 집중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쓸데없는 말을 줄이게 되고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다.
"다들 웃었어요. 일반적이지 않잖아요. 사랑한다고 말하면 기대하는 답이 있는데, 초코파이와 박카스 젤리라니. 이건 감정의 표본에도 어긋난다고요."
"그래서 안 먹었어? 하나도 없네. 다 먹었으면 됐지. 난 한입도 못 먹었다고."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개념을 잠자는 용도로 말해달라는 귀염둥이가 있다. 괴벨스와 전체주의, 타자적 상태의 윤리학과 같은 용어를 설명하고 있으면 피식 한숨이 나온다. 그래도 바쁨이 사라져 있으면 시간이 용인하는 선상에서는 말해준다. 남을 가르치는 것은 관심도 없고 인내심도 없어서 강의도 하지 않지만 애정하는 이에게 개념적인 의식을 설명하는 것은 귀찮아도 해야 하는 일이다.
나는 박카스보다는 원비디에 더 많은 기억이 남아 있다. 자양강장제는 화학 액기스로 구성된 “병맛”, 순수한 의미의 “병에 담긴 맛”이라 맛이 거기서 거기지만 어렸을 적 부모님 손에 한 박스씩 들려와 집 냉장고에 자리 잡고 있던 원비디와 우루사를 몰래 빼먹으면 원기가 보충되는 기분이 들었다.
약국을 지날 때마다 광고 효과 덕택에 약을 만병통치이자 건강식품으로 알던 어른들의 호출소리가 들린다. 약심부름 담당이던 나는 약 담은 비닐봉지를 손가락에 돌돌 돌리며 심장약, 혈압약, 위장약 이름을 책 이름 외우듯이 암기하곤 했다. <병은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구호처럼 퍼지던 날들을 지나 약사가 의사였던 종합약방도 사라졌다. 국가 건강검진도 안 하고 약국엔 얼씬도 하지 않는 내부적인 반발은 과도한 약에 대한 신뢰와 허약한 몸이 주던 주변의 구속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거부심리에서 기인한 게 아닌가 싶다.
지금은 커피나 차로 약의 기능을 때우고 있다. 길거리에 놓인 병을 보니 열댓 살에 맡던 인삼 냄새와 비타민 냄새가 희미하게 코끝을 맴돈다. 《김약국의 딸들》도 떠오르고 어린 시절의 한 소절도 공중에 흩어진다. 공감각적 심상에 피로회복이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밀려오는 것은 순전히 시절상상의 위약 효과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