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THERS

머릿속의 체임버

by CHRIS
[THE OTHERS, Alejandro Amenábar, 2001]


혼자 있게 되는 지금처럼 조금은 괜찮을 때

그것도 아주 멀쩡하게 괜찮을 때
가슴만 조금 아프고 다 괜찮을 때
수십 개의 문을 가진 머릿속의 방들 중에서 어떤 한 곳만 빗장이 쳐 있다.

아픔이 지나치면 현실을 보지 않는다. 언제 보았지? <디 아더스>, 시시했던 영화. 갑자기 그 영화가 생각난다. 그 여자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문을 닫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 어느 한 문만은 굳게 걸어 잠그고 보여주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하고 아끼던 것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상실의 아픔을 인정하는 것이 극도의 공포와 자기 파괴를 불러일으킬 때, 비이상적인 즐거움으로 구역질 나는 환희를 찾아가거나, 참지 못하고 자신의 눈조차 파버리고 귀도 잘라버리거나, 아득한 어둠의 세계에서 자신을 놓아버리거나, 이 여자처럼 한 문을 닫고 보여주지 않으려고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행위의 원천은 타인과 외부가 이유 없이 자신을 압박하며 가장 사랑하는 것을 해치려는 공포라고 말한다.
지금 나에겐 그녀처럼 극도의 공포감은 없지만, 아직 불행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들먹거리며 스스로를 치유할 힘도 없지만, 가끔씩 내지르는 소리가 저주같이 들릴 때도 있고 살인을 불러가며 주변을 파괴하고 싶은 욕구가 불쑥불쑥 나기도 한다.


내 안의 무엇인가가 조금씩 죽어가는 걸 느낄 때

마냥 아름다웠던 것을 아름답게만 보지 못하고 있을 때
속은 끓고 아무렇지 않은 듯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있을 때
화를 내며 눈 안에서만 머물러 경직되어 있는 날 보고 있을 때
머릿속의 어느 방문만은 굳게 잠그고 있는 걸 느낀다.
열면 질려버릴 정도로 뭔가가 튀어나올까 봐.


지금도 그렇다.
닫혀 있다.
그래서 좀 조용하다.
살 수 있을 정도로 조용하다.


2004. 8. 30. MONDAY



심리 호러물을 다룰 때 암수가 맞지 않는 기이한 나사의 회전(The Turn of the Screw)은 굳건히 봉쇄한 기억을 힘겹게 거슬러 올라간다. 삶을 살아가면서 스스로에게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공포감은 자신의 내부에 봉합된 비밀을 풀어내는 작업일 것이다. 쿰쿰한 과거를 앞에 두고 단단하게 밀봉한 포장을 하나씩 펼치면 그 안에 묵혀두었던 사실이 드러난다. 긴장된 표정으로 사람들은 호기심에 두 눈을 크게 뜨고 가슴은 두 근 반 세 근 반 뇌까지 바짝 졸여가며 머리를 강타할 충격을 기다린다. 아, 그런 거였어? 세상에 드러난 것이 생각보다 그렇게 커다란 비밀이 아니었을 때, 보고 싶지 않았던 한 개인의 시간적인 삶의 역사이자 자기 불인정의 슬픔과 먹먹한 애정이었을 때 그것은 과연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의 내면에는 매 순간마다 각기 다른 생각과 감정이 자리하고 있다. 여러 개의 성격을 가진 심방을 혼전하며 오늘에 부딪히는 생각을 꺼내고 어제의 충격을 묻고 내일의 기대는 미뤄둔다. 고립된 사고 공간에서 특정한 생각이나 관점에 갇혀 있는 인간은 자기 암시의 동일한 의견에 사로잡혀서 앞으로 나아가기보다는 현실 부정의 메아리에 묻혀 살게 된다. 오늘과 동반하여 살고자 한다면 지금을 숙고하되 과거에 파묻히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회한의 유령이 되지 않고 내일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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