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 존재의 꽃
"꽃은 지라고 피는 것, 꽃이 져야 열매가 연다."
《혼불, 최명희》
언제 봤더라, 《혼불》. 한참 최명희 바람이 불 때 책을 집어 들었는데 내용을 다 까먹었다. '심정이 연두로 물들은 듯 어디에 쓰겠느냐', '좀생이', '육련성(六連星)이라 나란히 별 여섯 개가 빛난 듯', '120개 작은 별들이 모여 성군(星群)을 이룬 것', 지금은 이런 몇몇 단어와 어구, 문장만 기억한다.
최명희의 글은 글자 하나마다 의미가 깃들여 있고 그 안에 많은 이야기가 있어서 읽는데 시간이 걸렸다. 솔직히 실패했다. 책방에서 일할 때 사람들이 자주 빌려가서 좀 보다가 손님이 빌려가면 기다려야 했고 좀 보다가 다른 손님이 빌려가면 또 기다려야 했다. 기억도 할 수 없는 내용은 둘째치고 책 속의 글들은 그 글자만으로 참 아름다웠다.
나는 불꽃을 보는 게 좋다. 수많은 빛이 타고 있으면 진짜 불 속에 꽃이 피는 것 같다. 공기를 태우는지 자신을 태우는지 그 속에서 무엇을 속내여 버리는 것일까. 그녀도 봤을까? 불꽃이 죽어가면서 불러내는 혼불을?
사람이 죽기 전에 몸에서 빠져나가는 생명의 불꽃을 혼불이라고 한다. 정신의 뇌리에 박힌 정화의 생명수이기도 하고 속 안에 숨 쉬는 존재의 화력이라고도 말한다. 이제는 예전처럼 민족적인 정기를 내세우는 시기도 아니고 전통적인 의식에 깃들여진 뿌리를 강조하는 세대도 아니지만 심장에 자리한 불꽃을 기억한다면 모두들 각자의 이야기를 담아내며 혼불을 활활 태워야 할 것이다.
그 혼불이라는 게 마음에 피고 있으면 사람들의 가슴은 따스할까. 석가모니도 심장에 꽃을 피우다 한 줌의 재가 됐을 때 사람들이 사리라고 부르는 꽃의 열매를 낳았을까. 혼불이 사그라들 때 열매도 없으면 서럽겠다. 땅이 울겠다. 받아줄 수 없어서 말이다. 바람도 슬프겠다. 걷어가 줄 수 없어서 말이다.
나, 열매를 맺고 싶다. 속 안의 꽃불을 태워서 진한 열매를 맺고 싶다.
2004. 9. 11. SATURDAY
개화는 아름답지만 피고 난 뒤의 소멸, 그리고 다른 모습의 피어남은 알 수 없어서 더 아름답다. 점점이 흩어지는 반짝임 뒤에 완전한 어둠이 전부라고 알고 있다면 우리는 그 뒤의 잔상과 여운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숨결이 사그라들 때 마지막 혼불이 빠져나간다. 그리고 모두가 떠나간 아무것도 없는 적막의 껍질 속에서 태고적부터 품어왔던 삶의 이야기가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