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방
"넌 내가 부끄러워?"
“아니.”
"그런데 왜 나를 소개해주지 않아?"
"누구한테?"
"가족들과 친구들한테."
"그들이 중요해?"
"당연한 거 아니야? 난 소개해줬잖아. 나의 취미와 친구들을."
"그게 서로를 알아가는 것과 무슨 상관이야?"
"너 정말 사람들을 소개한 의미를 몰라?"
"몰라."
"나를 보여줬잖아."
"뭐를 보여줬는데? 부모님과 친구는 당신이 아니잖아. 내가 그렇듯이."
"너 나랑 놀려고 하는 거야?"
"그건 아니야."
"그럼 나한테 아무 기대가 없어?"
"기대가 있으니까 만나고 있는 거잖아."
"넌 왜 나와 같이 하자고 안 해?"
"왜 꼭 같이 해야 해?"
"넌 혼자만 하려고 해."
"나하고 뭐를 하고 싶은데?"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경기도 보고.”
"난 혼자서 조용히 생각 좀 하고 싶어."
"나도 가끔 그런 거 좋아해."
"가끔 하는 정도면 같이 안 해도 되잖아."
"그냥 너하고 보고 싶었다고."
"난 쉬고 싶어."
“쉰다는 게 뭐야?”
"그만해. 시간도 안 되고 어디 가기 힘들어."
“그래서 매번 널 찾아오잖아.”
"그건 고마워."
"넌 나와 함께 할 생각이 없는 거야?"
"지금 이렇게 같이 있잖아."
“그거 말고 왜 나한테 요구를 안 해?”
"필요한 게 없어."
“어떻게 필요한 게 없어?”
"있으면 말할게."
“넌 나랑 그냥 즐기고 싶은 거야?”
".... 그럼 안 돼?"
“아.."
"이게 현재로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야."
준의 불만스러운 이야기를 듣던 밤, 그와의 거리가 느껴졌다. 준은 사회적이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잘 생기고 키 크고 학벌 좋고 집안 좋고 재능 있고 위트 있고 농구도 잘하는 유유자적하던 그와 시간을 때우는 게 좋았다. 준과의 만남은 일탈이었다. 잠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탕 같은 달콤함. 언젠가는 녹아 사라질 여운. 머리를 쓰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당분 같은 휴식. 준이 그의 생활 속으로 초대할 때면 나는 꾸미는 게 싫었다. 물감으로 얼룩진 찢어진 청바지에 맨발의 광녀처럼 오직 긴 머리 하나만이 성별을 알리는 얼굴로 그가 속한 공간에 앉아 있었다.
처음엔 괜찮았을 것이다. 마음이 들뜨고 모든 것이 신기했던 시기였으니까. 예의라고는 전혀 없는 옷차림과 기름처럼 떠 있는 말투에 모두들 뜨악해했던 집들이에서 그의 절친이 내가 동창 모임에 초대된 첫 사람이었다는 말을 넌지시 건넸다. 그 말을 들으니 미안했다. 서로를 알았던 시간이 짧았던 만큼 긴 시간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나를 치장해서 보여주는 것이 편하지 않았다.
재경의 집안사람들도 나를 첫 사람이라 했다. 첫사랑과 첫 사람. 반복되지 않는 한 번의 시도가 그렇게 의미로울까. 다른 사람과 미래를 그려본 적이 없었던 나는 한때나마 함께 했던 그들을 주변에 소개할 여유가 없었다. 살아있는 현재만이 중요했다. 첫사랑이었던 재경은 헌신적이었다. 매일 보는 것도 힘든데 단 몇 십분을 위해 몇 시간이 되는 거리를 매일같이 찾아왔다. 감정이 들끓었던 문을 연 뒤로 오늘이 지나면 더 이상의 삶이 없는 하루살이처럼 그와의 만남에서 순간에 몰두했다. 재경은 내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넌 우리 미래에 대해 생각해?”
"아니. 지금도 모르는데.."
"뭐야. 헤어질 사람처럼. 우리 어떻게 할 거야?”
"모르겠어."
“난 너와 계속 함께 하고 싶어.”
"지금 같이 있잖아."
"내가 다 준비할게."
"뭘?"
"이제 가족들도 다 알아. 너에 대해서"
"뭐? 말하면 어떻게 해?"
"괜찮아. 내가 좋다면 다 좋데."
"왜 혼자서 결정해?"
"네가 내일을 이야기하지 않으니까."
"지금 내가 어떤 상태인지 모르는 게 아니잖아?"
"그래도. 난 뭔가 해주고 싶어."
"안 해줘도 돼."
"뭐가 필요해?"
"아무것도."
“넌 뭘 하자고 이야기를 왜 안 해?"
"그냥 지금만 생각하자."
“넌 날 사랑해?”
"잘 모르겠어."
“나만 좋아하는 거야?”
"그건 아니야."
“매번 이렇게 묻는 것도 지친다.“
"옆에 있는데 무슨 확신이 필요해?"
"넌 곧 헤어질 사람처럼 그래."
"그만해."
"이렇게 매달리기 처음이야."
"안 물으면 되잖아."
"사랑하는 건 맞아?"
돌이켜보니 정언은 나와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딱 여기서 절반만. 그래서 관심이 갔나 보다. 잠이 오지 않아서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있는데 그가 철벽을 치던 삶의 치부가 투명한 유리막에 한가득 쓰여 있었다. 나와 영혼이 절반 정도 닮았나 싶었다. 잠에 취한 마른 얼굴을 쓰다듬어줬다. 그는 내가 죽으면 냉동시킨다고 한다. 내가 사라진 육체가 의미로울까. 난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달라고 했다. 공중에 흩어지면 시원할 거 같다. 묘비도 필요 없다. 언젠가부터 정언은 나를 너무 사랑한다고 한다. 너도 날 사랑하지? 그가 백 번 정도 되물으면 마지못해 한번 정도 대답한다.
“그래.”
확인이 필요한 세상이다. 믿기 어려운 내 마음.
“나도 내 마음을 몰라. 지금은, 당신과 함께 할게.”
나의 비밀스러움은 아무것도 아니다. 주변의 상황을 이겨낼 때까지 젊은 시절의 나는, 그들은, 우리들은 각자의 방에 갇힌 이방인이었다. 다른 삶과 생각들, 감정들을 폐기름이 찐득한 그릇에 섞을 수 없지 않은가.
목 조여대던 현실을 부릴 수 있게 되면서 타인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 관계를 맺으면 정리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니까 상대를 가볍게 보고 싶었는데 열어둔 문틈으로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없었다. 장난을 치다가도 금세 시들해졌다. 나를 얽어맸던 이곳에서 벗어나 마음까지도 방심했던 어느 날 기척없이 틈새로 한 사람이 들어왔다.
길을 떠나고서 만난 사람들 중에서 정언만큼 끈질기게 나를 응시한 사람은 처음이었다. 누구나 그렇지만 그도 자신만을 보느라 바쁘다. 외눈박이 사랑처럼 한 눈으로 비좁게 상대를 바라보는 우리들. 함께 살아가기란 표면적인 시간과 생활 공간을 같이 하는 것이다. 감정을 나누는 것은 각자의 시간과 생각의 방을 공유하는 것과 같다. 말없이 오랫동안 고독했던 나는 그와 일부를 나누기로 했다. 한 번도 곁을 내주지 않았던 나였는데 생활의 작은 틈을 허용했다. 그건 나만이 아니라 정언의 삶도 바꾸게 했다. 그리고 나는 의식의 방을 새로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