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GE, STATUS ANXIETY

《불안, 알랭 드 보통》+《피로사회》의 불안과 분노, 거친 실행들

by CHRIS
[Gustave Courbet, Portrait of the Artist, called "The Wounded Man", 1844-54]


불안은 욕망의 하녀다.

보다 유명해지고, 보다 중요해지고, 보다 부유해지고자 하는 욕망.

삶은 하나의 욕망을 또 다른 욕망으로,

하나의 불안을 또 다른 불안으로 바꿔가는 과정이다.

《불안, 알랭 드 보통 Status Anxiety, Alain de Botton


작가는 제목을 잘 골라야 한다. 듣기 좋은 이름이 간혹 첫눈에 호감 가는 인상을 만들기도 하듯이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은 책 이름에 관심을 담는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사랑하는 이유는 알 수는 없지만 궁금해진다. 나는 평온함에서 벗어나 불안해지고 싶어서 《불안》을 읽고 절망적인 불안감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불안》을 읽는다.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지 않는 선에서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랭 드 보통의 말발은 영혼을 녹여버릴 정도로 강력하지 않다. 책장을 넘기며 가볍게 불안정한 삶의 상태를 점검해 보았다. 기억이 나지 않는 책 속의 한 시인이 ‘지상의 삶’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애도와 유혹의 시간. 눈물의 시절. 질투와 고통의 시절. 무기력과 저주의 시간…"


정통한 분석이다. 속물들의 조건적인 관심 속에서 한 자리를 꿰차가고 있는 나, 정말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그래도 한 시간 지속될 영광을 바란다거나 한 순간 사그라들 명성에 목숨 걸지 말아야겠다. 유약한 영혼이 강철 같은 외로움을 견디도록 용광로의 온도로 들끓는 불안에 몸을 달구어야겠다.


"누가 중간에 도달하는 것을 꿈꿨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나요?"

"Have you ever heard of anyone dreaming of making it to the middle?"


세상 끝까지 가고 싶어 하는 몽상가는 중간을 선호하지 않는다.



자주 뱃사람들은 재미 삼아

알바트로스, 그 거대한 바닷새를 붙잡는다,

거칠고 깊은 바다를 항해하며

무심한 보호자인 양 동행하던 새를.


뱃사람들이 갑판 위에 내려놓자,

이 하늘의 군주, 어색하고 창피하여

커다란 흰 날개를 늘어진 노처럼

애처롭게 질질 끄는구나.


이 날개 달린 나그네, 얼마나 꼴사납고 나약한가!

그대, 한때 그토록 멋졌는데, 얼마나 가소롭고 나약한가!

어떤 이는 담뱃대로 부리를 들볶고,

어떤 이는 절뚝절뚝, 하늘 날던 불구자의 흉내를 낸다!


시인은 이 구름 위의 왕자와 같아서

폭풍 속을 드나들고 사수를 비웃는다.

야유와 조롱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상에 유배되니

그 거인의 날개가 걷기조차 방해하네.


《알바트로스, 샤를 보들레르》


2007. 9. 11. TUESDAY



"분노는 현재에 대해 총제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분노의 전제는 현재 속에서 중단하며 잠시 멈춰 선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분노는 짜증(Ärger)과 구별된다. 오늘의 사회를 특정 짓는 전반적인 산만함은 강렬하고 정력적인 분노가 일어날 여지를 없애버렸다. 분노는 어떤 상황을 중단시키고 새로운 상황이 시작되도록 만들 수 있는 능력이다. 오늘날은 분노 대신 어떤 심대한 변화도 일으키지 못하는 짜증과 신경질만이 점점 더 확산되어 간다. 짜증과 분노의 관계는 공포와 불안의 관계와 유사하다. 공포가 특정한 대상에 관한 것이라면 불안은 존재 자체의 문제이다. 불안은 현존재 전체를 붙들고 흔들어댄다."

《피로사회, 한병철 Müdigkeitsgesellschaft, Han Byung-Chul》


불안은 노크 없이 갑자기 찾아오곤 한다. 눈길이 불안정한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 품 안에 담은 감정에 대해 자세히 관찰해 보면 공포심은 별로 없고, 불안감도 크지 않다. 어렸을 때 존재를 터져버릴 굉장한 것이 머리를 강타하고 나서 자각하게 된 감정은 분노였다. 온통 시뻘겋도록 선명한 죽음과 조각조각 파괴되는 이미지 속에서 붕괴되고 훼손되고 해체되고 손상되고 분해되고 파멸되고 파손되는 오열한 구토는 살갗 안에 담아두었던 핏줄기까지 터트리며 창 밖으로 끌고 왔다. 분노는 심장에서 발생하지 않았다. 강렬하게 머리에서 맴돌았고 어지럽게 혈류를 회전했고 그로 인해 가뜩이나 차가웠던 심장은 얼어버렸다. 목소리가 냉소적이고 눈매가 날카로웠던 것은 머리에 담아둔 켜켜이 묵혀둔 분노 때문이었을 것이다.


불안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들 때 찾아온다. 성장의 과정에서 존재적으로 나 이외에 소중한 것은 별로 없었다. 썩은 동아줄에서 나동그라진 한 마리 거친 짐승이 내는 울부짖음은 허함만이 가득했다. 그림자로 서 있는 존재는 한마디로 외딴섬이었다. 그런 무심한 사람에게 어느 날 자기를 돌아볼 권리는 사라졌다. 뜬금없이 뒤통수를 후려치는 기분 나쁜 구타에 왜 맞는지 생각할 여유는 사라진 채 지켜야 할 것과 완수해야 할 책임만이 눈앞을 장식했다. 언어는 드높았고 자존심이 드셌지만 무엇하나 제대로 정리되지 않는 공간에서 존재감을 숨겨야만 살아남는 현실은 한마디로 할 말을 잃게 했다. 육체적으로 이 땅에 서 있으나 정신은 어디선가 불균형적으로 떨어져 나온 존재는 그 분리적인 자각을 통해서만 방향을 상실한 분노를 조절해야 했다. 세세한 감정은 누구의 이름인가 팻말도 지워버렸다. 이성적이었던 머리가 일을 처리하는 순간에 감정을 끌고 와서는 안된다고 막아섰다. 앞에 놓인 현실을 보면 급하게 처리할 것이 산더미였다.


굵직한 덩어리였던 시간 속에서 얼굴 한 조각이 아프도록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문득 관자놀이를 엄습하는 어두운 기운은 목덜미를 심각하게 관능적으로 감싸 안는다. 저 깊은 어둠으로 육체를 끌고 가자고 유혹한다. 불안하고 연약한 감정들은 매력적이다. 사라져 버리는 모든 것에 대해 친밀하게 손을 흔든다. 그럴 때마다 아름다운 세이렌의 경고를 뒤로 하고 자잘하게 신경을 긁는 불안감의 해소를 위해 생활의 범위를 규약하고 계획한다. 세밀한 것에선 민감하게 신경을 쓰다가도 큰일이 다가오면 자동적으로 감정이 정지된다. 결정이 필요할 때 머뭇거리는 사람들을 향해 말한다.


"모든 것은 내가 결정한 거야. 책임은 내가 질 거니까 그냥 가자."


일말의 '나'라는 존재를 획득하고 나서 타인에게 자신 있게 권유를 던져놓으면 어떤 대책이 있을까? 사실 없다. 그냥 앞으로 가는 길밖에 없기 때문에 해보는 데까지 하는 수밖에 없다. 기한은 정해둔다. 계획의 모든 것은 정신이 참을 수 있을 때까지이고, 자본이 살아있는 순간까지이다. 전면전에서 타인을 끌어당기려면 최전선에 솔선해서 나가는 수밖에 없다.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다. 죽음이 이미 설정되어 있다면 하지 않는 것보다 무엇인가를 해보면 답은 나온다. 어떤 일을 시작을 해야 했는지 하지 말아야 했는지 그것은 시작해야만 알 수 있는 일이다. 행동형 인간은 현실에서 부딪쳐서 알아내는 경험을 신뢰하는 이유로 인해 머리를 쓰거나 사상의 회로를 쌓는 것은 한마디로 피를 부를 필요가 없는 휴식과 같은 놀이이다. 다른 사람을 설득시키고 타자의 성을 파괴하려면 온갖 이론적인 형태와 사상적인 태도에서 자신만의 굳건한 형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머리를 굴리는 것은 놓기 어렵다.


불안이나 공포, 혐오나 아픔, 기쁨과 쾌락, 즐거움과 고통, 괴로움과 구토처럼 육체만이 아니라 정신을 단단히 사로잡는 감정에서 벗어나려면 현재의 감정을 인식해야 한다.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알아야 그것에 몰입되는 것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감정의 수도꼭지를 잠그면 알 수 없는 갈증은 심해진다. 타는 목마름 속에서 바싹하게 말라가고 황량한 먼지가 눈 안을 파고든다. 자신을 인식하는 것이 어렵다면 스스로의 현재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소리와 같다. 괴롭지 않기 위해서 부단히 나 자신을 바라보았는데 요즘 목소리가 단단해지고 날카로워지는 것 같다. 하나의 대상에 옳다는 관념이나 이기적인 주장을 펼치는 용도가 아닌, 판단의 시의적절함을 맞춰서 변화를 이뤄냈으면 한다. 발버둥 치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눈밑 아래가 떨린다. 눈뜰 수 없도록 눈꺼풀이 저린다. 문득 살아있구나 하는 불안한 기분이 든다.



Souvent, pour s'amuser, les hommes d'équipage
Prennent des albatros, vastes oiseaux des mers,
Qui suivent, indolents compagnons de voyage,
Le navire glissant sur les gouffres amers.

A peine les ont-ils déposés sur les planches,
Que ces rois de l'azur, maladroits et honteux,
Laissent piteusement leurs grandes ailes blanches
Comme des avirons traîner à côté d'eux.

Ce voyageur ailé, comme il est gauche et veule!
Lui, naguère si beau, qu'il est comique et laid!
L'un agace son bec avec un brûle-gueule,
L'autre mime, en boitant, l'infirme qui volait!

Le Poète est semblable au prince des nuées
Qui hante la tempête et se rit de l'archer
Exilé sur le sol au milieu des huées,
Ses ailes de géant l'empêchent de marcher.

L’albatros de Charles Baudela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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