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NOPTICON, INSPECTION HOUSE, JEREMY BENTHAM SKETCH]
도넛 모형의 원형 감옥(Maison de Pénitence)이 있고, 중앙탑에는 보이지 않는 관제실이 있다. 원형 구조물 속에 수감자들이 배치된 감옥에서 벌집처럼 사방으로 뻗친 통제실의 시선은 갇힌 개별자의 위치에서는 보이지 않으며 중앙의 한 점에서 각 수용실을 위아래로 볼 수 있어 효율적으로 감시의 시선을 발산한다. 갇힌 대상의 진행되는 모든 것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파놉티콘(Panoptique | Panopticon, 패놉티콘 | 판옵티콘)이라고 부른다. 파놉티콘은 인간의 눈을 넘어선 거리를 인식하는 카메라의 등장과 같이 완벽하게 보이지 않으면서 전지전능하게 시각을 통제하는 권력을 상징한다. 이는 권력장치에 있어서도 새로운 방식의 진화를 예고한다. 파놉티콘은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감시로 인해 복잡한 사회구조에 익숙해지고 기술을 배우는 생활양식의 적응을 선고한다. 파놉티콘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모두'를 뜻하는 'Pan'과 '본다'는 'Opticon'을 합성한 것이다.
재판과 형벌을 받기 위한 죄수들의 대기실이었던 감옥은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자본주의와 합리주의가 등장한 경제적 전환기에 이르러 한계에 부딪히기 시작한다. 빈부의 격차와 함께 밀려드는 경범죄의 사람들이 중첩되며 감옥은 모든 악의 소굴이자 질병의 근원으로 인식되었다. 벤담(Jeremy Bentham)은 감옥이 죄수들이 바른 행동을 하도록 교화를 보장하고, 신체적 정신적 타락으로 오염된 건강과 청결, 질서, 근면을 확고하게 하며, 비용을 감소시키면서도 공공의 안전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이 고안한 건축 계획안은 이런 것을 모두 통제할 수 있는 효율적인 건축 설계안이라고 단언했다. 바로 이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감옥에서 진행되는 모든 것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파놉티즘(Panoptism)의 실현인 파놉티콘이다.
1748년에 태어난 제러미 벤담 (Jeremy Bentham)은 유복한 집안의 유능한 소송 대리인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자라났다. 12살에 옥스퍼드 퀸스 칼리지에 최연소로 합격할 정도의 명석한 두뇌를 가진 벤담은 대법관으로 사회적 성공을 바랐던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고 데카르트의 경험주의 철학과 회의적 상대주의 이성을 실현한 볼테르를 위시한 프랑스 사상에 영향을 받아 법이론가의 길을 선택한다. 아버지의 지원이 끊기고 적은 용돈으로 근근이 살아가던 벤담은 매일의 글쓰기를 통해 자신이 상상하던 세계를 구체화시킨다. 《파놉티콘》이 출간된 1년 뒤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벤담은 자기 몫의 유산을 가지고 파놉티콘을 만들기 위해 땅을 구입하여 파놉티콘의 건설에 매진한다. 그는 1786년부터 1813년까지 27년간 파놉티콘의 실현에 전념하며 사회개혁의 최전선이었던 처벌의 공간인 감옥을 이상적인 모델의 형태로 만들기 위해 전 재산과 열정을 모두 쏟아 넣었다. 파놉티콘의 설계안은 프랑스 의회에서 채택되어 법령 조치가 취해질 뻔하다가 프랑스 대혁명의 영향으로 실행이 좌초되고, 영국 정부로부터도 보상금을 받는데 연달아 실패하면서 벤담은 자금난에 부딪힌다. 파놉티콘은 건축이 지연되는 악재가 겹쳐 결국 그는 파산에 이른다. 참담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평생 노동과 검소를 삶의 규칙으로 삼으며 하루 열 다섯 페이지를 기술하는 근면한 작가적 태도를 유지했던 벤담은 당대의 법률에 대해 개혁적 사고와 비판적 시각을 유지하며 《도덕과 입법의 원칙에 대한 서론 An introduction to the principles of morals and legislation》 및 《민법의 원칙 Principles of the Civil Code》 등을 저술하면서 칩거 생활과 고독한 생활의 '죽은 시간(불필요한 시간)'을 떨쳐냈다. 그는 "내 인생의 모든 순간은 계산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벤담은 종교적 자선에 반대하고 모든 것을 경제 질서하에 두기 위해 노동가치설 (Labour Theory of Value)을 따르며 자신의 주검까지도 끝까지 유용하게 쓰이기 바랐던 공리주의학자였다.
18세기에서 19세기 사이, 탁월한 법이론가이자 공리주의 철학자가 정밀한 감옥 설계도로 펼쳐낸 유토피아. 파놉티콘의 설계는 수감자 간의 음모나 반란에 대비해 안정성을 확보한다. 감옥의 수용실은 하나의 섬이며 거주자는 불행한 선원이다.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Surveiller et punir | Discipline and Punish》에서 파놉티콘의 분석은 역사에 묻힐 뻔한 제러미 벤담의 공리적이고 이상적인 감옥건축 계획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벤담은 일생 동안 연구했던 법률이나 구호 제도, 경찰 체계, 교육과 노동, 경제 제도를 현실에서 구체화할 수 있는 표준모델로 파놉티콘을 구상했고, 그는 파놉티콘이 완벽한 감시를 넘어 모든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대 사회를 합리성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로 재배열하여 자신의 신념에 따른 새로운 우주를 꿈꿨던 제러미 벤담은 이익의 중심이 될 세계의 기본 장치인 파놉티콘 설계와 실행을 위해 일생을 살았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흔히 권력은 인간의 본능을 억압하고 제한하며 강요나 강제를 통해 작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푸코에 따르면 권력은 억압의 차원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지어주는 생산적인 힘이다. 특히 권력은 항상 지식과 연계되어 정당하고 옳은 것이라 여겨지는 진리 담론을 상정해 따르게 한다. 권력은 야생으로 존재하는 개개인의 인간을, 진리 담론과 연결된 권력망 속에 삽입시켜 그 진리 담론을 따르는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인데, 푸코는 이를 생산한다고 말한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는 전자 만능시대의 감시 문제나 전체주의 문제를 거론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국가의 정치통제 기구인 집권당(執權黨)은 허구의 인물인 빅 브라더(Big Brother)를 내세워 독재 권력의 극대화를 꾀하는 한편, 정치 체제를 항구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텔레스크린, 사상경찰, 마이크로폰, 헬리콥터를 이용해 당원들이 사생활을 철저하게 감시한다. 사상경찰은 어떤 소리나 동작도 낱낱이 포착할 수 있는 텔레스크린으로 개인을 감시하는데, 사람들은 오랜 세월 동안 이런 삶에 익숙해 있다. 자발적으로 자신을 화면 위로 내놓는데 거리낌이 없어진 현대인들은 디지털 과학기술의 발달로 이루어진 관계망에서 자발적인 감시와 발설을 통해 무작위의 데이터를 생산하며 스스로 디지털 파놉티콘을 형성하는 비주체적 자아가 되고 있다.
파놉티콘의 자기 통제는 정당한 권력의 담론에도 적용될 수 있는가
8월 초 출장 중에 읽었던 《파놉티콘 : 파놉티콘과 근대 유토피아》는 지적인 흥미를 끌어당길 뿐만이 아니라 감옥을 유토피아로 만들고자 했던 한 인간의 열정적인 삶을 해제하는 충만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시간이 지나면 파놉티콘에 대한 기억도 지워질 것 같아서 책 내용을 요약해서 기록해 둔다. 요점을 간추리면서 공리주의 법학자이자 철학자 벤담의 삶에 대해 곱씹어보았다. 원형구조의 감옥을 구상한 벤담은 수감자들이 일정 공간 안에서 언제든지 감시당하고 있다는 의식을 심어주고 스스로를 통제하게 만드는 자기 자율적인 감시체계를 실현하고자 했다. 자신이 원하는 개념을 설계하고 그 이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뇌피셜을 쏟아붓는 학자적 열의와 이상을 현실화하기 위해 빈털터리도 마지않는 도전은 보기 좋았다. 비록 그가 실현하고자 했던 유토피아적인 감옥세계는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했지만, 한풀 꺾이고 미흡하게 치부되었던 파놉티콘의 날카롭고 전방위적인 감시 설계는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Surveiller et punir》에서 다뤄지면서 그의 사후, 굉장한 논란거리가 되었다. 현재까지도 뜨거운 감자로 회자되는 파놉티콘의 모든 것을 보는 능력과 그에 상응하는 인간의 죄에 대한 처벌, 교화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빈틈과 인간 행동의 감시에 대한 회의적 태도는 현대에서 강조되는 인권문제와 결부되어 철학자들과 인문학자들만이 이니라 과학자, 공학자, 건축가, 예술가, 첨단 산업기술을 다루는 경영인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변혁의 세기, 산업화의 발달과 더불어 사회의 보호막에서 버려진 개인들과 급속한 경제 발전에 도취되어 타락한 정치 감시망은 감옥을 죽음을 기다리는 수용소나 처벌을 기다리기 위한 밀집된 장소로 전시되게 만든다. 최악의 사회적 상황에 위기를 느끼고 있었던 벤담은 엉망이 된 인간의 도덕적 질서를 교정하여 최선의 감옥을 만들고자 했다. 철저하게 파괴되는 인간들 사이에서 한 명의 오염되지 않은 인간이 있다면 그에게 안전한 보호처를 제공하고자 했던 그의 의도는 빠른 성장과 성공이라는 욕심에 노출되어 자기 성찰이 사라진 후대에 곡해될 수 있어도, 그가 이런 다방면의 눈을 가진 감시탑 개념을 설정하지 않았다면 공리주의적인 입장이 아닌 이기적이고 악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 그의 개념을 떠올리고 잔인한 방법으로 이를 실행시켰을 수도 있다.
일상의 모든 변화 가능성은 제로에서 시작하여 마지막에 다시 제로로 철저하게 소멸될 것을 고려해야 한다. 벤담의 파놉티콘 설계는 일반 건축공학자의 분석을 뛰어넘는 법설계자이자 법이론가의 논리적인 개념으로 가득하다. 하나의 체계화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개인에서 가족단위로, 집단으로 연결되는 공간 관리와 구조 설계는 이론에 충실한 철학 인문학자들에게 무서운 발언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공리적인 삶에 매진했던 한 인간의 광적인 시도가 미래적이고 투명할 만큼 심리적이어서 꺾여야 할 이유는 없다. 죽은 뒤 자신의 육체까지도 모두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는데 쓰고자 했던 벤담은 개인적 성향을 근면하게 절제하여 공정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일생을 바친 학자였다. 칠 년 전 북경에서 설(春节)을 보낼 때 지인 분이 육체를 병원에 기증하는 서약서를 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암 말기였다. 그녀에게 육체를 타인에게 맡기는 행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본 적 있었다.
"괜찮으세요?"
"암으로 가득 찬 몸을 열어서 연구도 하고 타인의 생명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지. 어차피 죽은 몸, 그땐 나는 이 세상에 없을 텐데."
그해 겨울, 한창 바쁘게 일을 하던 와중에 그녀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의 장례는 중국의 병원에서 대의하고 집에서 가족들은 간단한 조의만 받는 검소한 방식으로 끝났다. 소란함이 없었던 조용한 장례는 이 세상에 왔다감에 충실한 모습이었다. 죽음 뒤에 정신적인 흔적만 남기고 육체의 흔적은 한 톨도 남기고 싶지 않은 개인적인 바람과 달리, 그녀의 무심하면서도 공리주의적인 태도는 서로 대화를 나누던 몸이 살아있던 그날도, 그녀가 세상을 떠난 날도 계속적으로 생각거리를 남겼다. 벤담의 파놉티콘은 한병철의 《심리 정치 PSYCHO POLITIK》와 《오늘날 혁명은 왜 불가능한가, 독일어 원제: 자본주의와 죽음 본능 Kapitalismus und Todestrieb》에서 디지털 파놉티콘으로 변환되어 지금 사회의 정치적인 통제 권력 개념으로 등장한다. 이에 대한 이야기 또한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디지털 파놉티콘에 대한 담론으로 정리해 봐야겠다.
도덕과 입법의 기초 :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한국적 법 체계 형성의 문제점
각 나라마다 채택하고 있는 성문법과 불문법의 차이를 짚어보다 보면, 법 철학과 이론, 법적인 제도 연구가 부족한 한국적 현실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다.
성문법(Statute Law) 체제를 따르는 한국은 법률이 공식적으로 문서화되어 있으며 헌법과 법률이 인간 행위를 판단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국의 법 체계는 헌법, 법률, 명령, 규칙 등의 법적 문서로 구성되어 있다. 1948년 7월 17일에 제정된 제헌 헌법은 대한민국의 최고의 법으로, 국민의 기본권과 국가의 구조 및 운영 원칙을 규정한다. 국민의 주권과 자유, 평등을 기본으로 하여 총 10장 103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법률은 헌법에 따라 제정되어 국회에서 입법 과정을 통해 통과된 법이며 민법, 형법, 상법 등 다양한 법률이 존재한다. 명령은 법률을 집행하기 위한 행정부의 규정으로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 등으로 구분된다. 규칙은 국회, 법원, 헌법재판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에서 내부 규정을 정한다. 한국의 법체계는 성문법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법률이 문서화되고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중점을 둔다.
제러미 벤담의 법이론 분석이 영향을 미치던 영국은 불문법(Unwritten Constitution) 체제를 따른다. 영국은 미국이나 프랑스와 같은 단일한 성문 헌법 문서가 없으며 대신에 다양한 법적 문서, 관습, 판례법 등을 통해 이루어져 있다. 영국의 법체계는 성문법(Statute Law)과 불문법 (Common Law), 관습법 (Conventions)의 조합으로 운영된다. 성문법은 영국 의회에서 제정한 법률로, 이는 법적 효력을 지닌 공식적인 문서이며 대헌장(Magna Carta, 1215), 권리장전(Bill of Rights, 1689) 등은 중요한 성문법적 문서로 간주된다. 오늘날 영국 의회가 제정하는 법률은 성문법의 형태로 추가된다. 불문법은 법원에서 판결을 통해 만들어진 판례법으로, 과거 판결에 기반하여 법적 원칙이 확립되고 해석된다. 즉, 법적 관습과 법원의 판결이 법의 중요한 근원임을 의미한다. 관습법은 헌법적 중요성을 가지지만, 공식적으로 문서화되지 않은 관습과 절차를 의미하며 영국의 군주는 의례상 법을 제정하거나 거부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관습적으로 의회에서 통과된 법안에 대한 재가를 해야 한다. 이처럼 영국은 단일한 헌법 문서가 없는 불문법적 체제이지만, 이는 다양한 성문법과 판례법, 관습법이 결합되어 운영되는 독특한 법적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우리에게 제헌절이 존재하긴 하지만,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법은 일제 강점기를 거친 역사적 배경과 근대적 법체계를 구축하면서 그 근원이 내부의 연구와 기록의 축적에서 발생한 것이 아닌 해방 이후 주로 독일법과 일본법을 차용하여 형성된 것이라 법의 사상체계에서 우리만의 고유성을 만들어내기엔 이론철학이 부족한 현실이다. 일제강점기 (1910-1945) 동안, 한국은 일본의 법체계에 의해 통치되었다. 당시 일본은 독일법을 참고하여 자국의 법 체계를 구축했기 때문에 한국의 법 체계도 자연스럽게 일본의 법률 구조를 따르게 되었다. 특히 민법, 형법, 상법 등의 기본 법률이 일본법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일제강점기 당시 만들어진 법령 중 일부는 해방 후에도 그대로 유지되거나 개정되어 한국의 법체계에 잔재하고 있다. 해방 이후, 한국은 일본법에 의존하는 법체계를 정비하기 시작했지만 결국 이 과정에서 일본이 응용했던 독일법을 참고하게 되었다. 독일은 당시 유럽에서 가장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법 체계를 가진 나라로 평가받았으며, 한국의 법률가들은 독일의 법이론과 법제도를 수용하여 한국의 법체계를 발전시켰다. 특히 민법과 상법의 체계는 독일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 법철학과 법이론에 있어서도 독일 법학자들의 사상이 반영되었다. 한국의 법체계는 근래 고유의 법적 환경과 사회적 필요에 맞춰 독자적으로 발전을 모색하는 한편, 국제화된 법체계와 세계적인 기준을 반영하면서 사법 체계에서는 미국법 체계를 도입하거나 국제법 등의 공통 요소도 포함하는 다각화 방향을 시도하고 있다. 다만, 법적인 근본사상 이론을 체계화할 연구자가 부재하고 응용법학처럼 실무자가 법을 해석하는 형식으로 태도를 전환한 한국의 법은 독자적인 법 개정과 발전을 이루기에는 탄탄한 이론적 법을 형성할 수 없는 현실에 놓여 있음은 분명하다.
"The greatest happiness of the greatest number is the foundation of morals and legislation."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은 도덕과 입법의 기초다."
<제러미 벤담 JEREMY BENTHAM, 1748-1832>
제러미 벤담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은 익숙하고 유명한 공리주의적인 개념이다. 학창 시절 주관식 단답형 문제로 자주 등장했던 문구이기도 하다.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은 영국의 철학자이자 법학자로, 공리주의(utilitarianism)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사회, 정치, 법철학에 큰 영향을 미친 저술을 다수 남겼다. 《파놉티콘》의 해제(解題)의 근본 바탕인 《파놉티콘 (판옵티콘) 서한집 Panopticon Letters 1787》과 《도덕과 입법의 원리 서설 An Introduction to the Principles of Morals and Legislation 1789》을 비롯해 《법률의 한계에 관한 이론 A Fragment on Government, 1776》, 《거짓말의 문제에 관한 에세이 Essay on Political Tactics, 1791》, 《헌법법전 Constitutional Code 1830》, 그의 사후에 출간된 《공리주의론 Deontology or the Science of Morality 1834》과 《법학의 원리 The Principles of Judicial Procedure 1839》까지 벤담은 철학적이고 법이론적이며 사회적인 입법의 기준을 고민하고 체계를 세우는데 온 인생을 걸었다. 그는 인간의 행동을 "쾌락과 고통"이라는 두 가지 요소로 설명하며,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기준으로 도덕적 행위와 입법을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불교의 '인생고락(人生苦樂)'의 개념과도 맞닿아 보인다. 인생의 희로애락 중에서 괴로움과 즐거움이 인간의 모든 문제를 야기한다. 따라서 각자의 신념과 접근 태도를 통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사람들에게 제시하는 것이 종교이자 사상이며 철학이자 법인 것이다. 인간을 구성하는 사상적인 개념이 철학적으로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은 인간사를 연구하다 보면 직면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제러미 벤담은 정치 개혁과 입법 개선에 관심을 가지고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국가 운영을 위한 법적 틀을 제시하는 동시에, 입법 과정에서 거짓과 부정직함이 가득한 정치를 비판하면서 정치적 소통의 투명성과 진실성을 강조했다. 벤담은 법, 도덕, 정치 이론에서 기존의 권위와 비합리적인 전통을 비판하고, 인간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한 실용적 해결책을 제안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의 사상은 근대 법률 체계와 정치 개혁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현대의 윤리학, 정치철학, 법철학에 중요한 근간이 되었다. 83년 한평생 동안, 모두가 행복하고 이상적인 사회의 법체계를 만들기 위해 저술과 연구, 실행에 심혈을 기울인 그를 보면 이 세상은 열정과 꿈이 살아있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의지로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