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LITA OF TAMARA DE LEMPICKA

연상 《롤리타》, 타마라 드 렘피카와 각자의 봄

by CHRIS
[Young Lady with Gloves, TAMARA DE LEMPICKA, 1929]


타마라 드 렘피카(Tamara de Lempicka)의 <장갑을 낀 젊은 여인 Young Lady with Gloves>을 응시하다 보면 《롤리타》가 생각난다. 마약 없이도 강하게 쏠렸던 애정은 반지를 낀 손가락에서 맹세를 제거하던가. 여인의 초상엔 애정에 허기진 남자가 빈번하게 등장하지 않지만 그녀의 시선에는 한 남자가 살고 있다. 검은색 양복 코트와 흰색 머플러를 걸친 채 두 손이 다른 색을 띠는 남자, 그를 바라봐도 여자가 보인다. 젊고 싱싱한 딸과 함께 유랑하는 남자의 허상. 피폐한 남자를 자극하는 것은 상큼한 봄의 여신과 잔디에서 춤을 추는 스프링클러.

블라디미르 나보코프(Vladimir Vladimirovich Nabokov)가 그린 마흔 중반의 고독한 지식인, 그 첫사랑의 살내음. 중년남자의 고백은 롤리타가 되고 싶을 만큼 청소년기 한 때에는 유혹이었다. 아무리 아름답게 그려도 근친상간은 전통적인 불륜의 실한 소재이긴 하나 끝은 처절하게 비극적이다. 우리의 애정형태는 도식적이라 저항해 볼까? 그러나 무인도에 있지 않은 이상, 이 대륙의 섬에서 기형아를 낳을 수는 없는 거겠지.

간혹 그림으로 상상하며 건강한 사람인지, 어두운 욕망에 절은 인간인지 궁금해지곤 한다. 보이는 것 그대로가 전부는 아닌데 밤마다 외출하는 습관을 고수하며 달빛의 양식을 섭취한 흡혈귀의 반항은 어느 날의 병적인 실천이 된다. 비정상적인 본성의 감흥은 화면에서 보이는 선으로 대응하는 재미가 되기도 했다. <장갑을 낀 젊은 여인 Young Lady with Gloves>은 봄을 맞아서 나들이를 하는 도시소녀를 연상시킨다. 뭔가 저지를 요염한 눈빛, 터져버린 경계심. 봄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2005. 3. 20. SUNDAY



한 달 정도 되었나 보다. 타마라 드 렘피카의 그림이 디지털미술로 변용되어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되었다. 요즘의 디지털 미디어 아트기법은 정지된 상상을 넘어 시야의 전망을 광활하게 넓혀낸다. 그러나 가만히 서 있던 그림이 움직인다고 하여 더 감동스럽지는 않다. 몽롱하게 흐르는 움직임 사이로 기억은 과거로 흘러들어 갔다. 가볍게 한들거리는 녹색의 물결을 바라보면서 이십 년 전 어두운 그림에 심취했던 날들이 교차되었다. 아직도 쌀쌀한 삼월은 가볍게 부유하기 어렵다. 각자의 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로 봄이 피어나고 있다. 오늘도 추워서 히터를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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