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미치스> 대홍수 시대의 모래바람
내 그대를 눈동자처럼 보호하여 주겠소
그러니 형제의 피로
희고 부드러운 손을 더럽히지 말 것이며
내가 없는 동안에
땅이 갈라지고 비바람이 칠 지라도
지친 나의 말에게 먹이를 먹여주고
그대의 방에 들어온 낯선 이로 인해
나의 뜨거운 체취를 잊지 않게 해 주시오
적군의 기마병이 조국을 삼키러 올 때
저 친구가 대장군의 휘파람 소리에
섬광보다 빠른 발굽으로 달려올 수 있도록
죽은 자의 손에서 참회의 횃불이-
감은 그대 눈은 동굴보다 깊고 어둡구려
피를 흘린 신음은 이렇게 줄여보시오
얼음에 구멍을 뚫고 소리를 지르시오
봄이면 풀들은 비명을 삼키고
만발한 얼굴로 피어날 것이며
바닥에 쏟은 당신들의 귀한 혈맥은
연약한 줄기를 타고 뻗어갈 것이네
우리에게는 불타는 집이 있었소
냄새나는 돼지가 애타게 소리치는 밤이
발칸의 부트림 군단에서 차갑게 식어가면
오래된 할머니와 갓 태어난 아이들은
따뜻한 화덕에 앉아 이렇게 말할 것이네
리투아니아에는 크미치스라는 장수가 있었지
그는 최고의 장수였어, 둘도 없는 전설의 군인
이제 이곳에는 그러한 이야기가 흐르고 있소
나라는 겹쳐지고 수많은 발자국이 물러진 오후
곧 여름이고 무성한 젊음이 소리치고 있다고
그대여, 정녕 사랑한다면 무릎을 꿇은 자에게
썰매가 달리던 저 북구의 겨울을 불러오지 않겠소?
달래서 안 주면 빼앗을 가녀린 사람,
전쟁은 잠잠한 부하들의 너털웃음으로 환히 흩날리고
백색 총칼엔 오직 그대 사랑하는 마음만 가득 빛나리
<크미치스, The Deluge>, 투철한 고증과 방대한 스케일이 보여주는 광활한 역사의 파노라마는 변해버린 시대의 가치관과 기술의 격랑 사이에서 벌어지는 어설픔조차 단숨에 접는다. 지명이나 인명에 무척 약한 관심을 두고 있는 나에게 조국과 비슷한 타국의 빗살무늬 위치는 평상의 무관심을 돌려놓는다. 시대의 믿음과 권력의 자만심은 피의 배경을 깔고서 돌진해 오는 침공을 막기에 역부족인 다수의 희생을 요구한다. 그리고 혼란한 와중에 영웅이란 존재는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횃불로 작용한다. 헨리크 시엔키에비치(Henryk Sienkiewicz)의 역사소설 《대홍수 Potop 1886》를 재현한 작품, 영화 <크미치스 The Deluge>는 비극적 트릴로지의 가운데에서 서사극의 삼부작 요건을 충실히 이행한다. 그의 최대 걸작, 《쿼바디스 Quo Vadis》처럼 말이다.
신앙심이 깊은 아름다운 여인과 거칠고 무자비한 본능을 따르는 장수의 운명적인 사랑, 충의와 배신, 우의를 거치며 조국에 대한 의무와 정의를 따르는 의지로 점차 교화되는 심성, 지배권력의 타락과 실권, 파괴되는 마을과 부서진 성곽, 유동적일 수밖에 없는 해일 앞의 모래들. 뻔한 스토리이지만 처음 보는 이의 공간을 엿보는 관찰자가 된 것처럼 보는 내내 경직되어 있었다. 대지에 대한 절대복종이나 충정의 미덕이 드라마나 소설 상의 회자거리로 되어버린 시대에서 정치적인 귀족세력이나 종교적인 입지를 가진 지도자가 여전히 세금유통경제와 밀접하단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현상과 실재의 운용에 있어서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이던가? 작게는 나의 영역까지 모두 침범당한 현재, 주변인들의 일편단심 서약의 종결이 단지 서류만으로 가능한 일이 될는지, 힘차게 달릴 수 있는 해변으로 이사 갔으면 좋겠다. The Invasion and Deluge.
알고 있었네
뿌리를 뽑아도 곧바로
흙을 털어내지 못한다는 것을
굵은 비가 내리고
발틈과 바위틈 사이로
감춰진 잔해가 씻길 때까지
깨끗함이란 없어라
2005. 5. 23. MONDAY
웅장하고 거대한 스케일의 서사는 격변의 세월을 살지 않은 조용한 사람들에게 머나먼 이야기일 것이다. 서울로 향하는 공항 리무진에서 소리는 들리지 않는 뉴스의 헤드라인을 보며 잠시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살펴보았다. 백악관 집무실을 금색으로 도배한 트럼프가 여러모로 주요 세상사에 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역대 대통령들의 초상화로 화려한 배경을 삼아 강력한 미국의 현재를 보여주고자 하는 트럼프식 과시 전략은 선조들의 희생이 없고선 세계의 평화는 오지 않았다는 결론으로 귀결되고 있다. 도움을 받았으면 감사히 토해내라는 답변에 영리하게 응수하지 않으면 간도 쓸개도 내줘야 하는 장사꾼 전략에 휘말릴 수도 있다. 프랑스에게는 양차 대전 중에 미국이 없었다면 독일어를 써야 했을 것이라며 정치 경제적인 결정에 신중하라는 보상적인 태도를 선보이고 있고,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도 미국의 지원이 없으면 지속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기에 모두들 전쟁을 그만두고 생업 전선으로 돌아가라는 압박은 중재자 이상의 효과를 거둬낼 것 같다. 대화에 신중하겠다는 러시아에게 바로 전화 걸겠다는 콜을 사방만방에 퍼트리는 수다쟁이 협상가를 보아하니 구두라도 삶아 먹어야 속이 시원할 <황금광 시대 The Gold Rush>의 부활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다. 확실히 트럼프는 내 취향은 아니긴 한데, 취향이 아닌 사람이 더 많은 게 이 세상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