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LLION DOLLAR BABY

모쿠슈라, 나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

by CHRIS
[Million Dollar Baby, Clint Eastwood, 2004]


봄이라 생각하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섰는데 예상치 못한 꽃샘추위가 무방비가 된 몸을 얼려버렸다. 바람에 몇 번 휩쓸리니 짚더미에서 점프한 기분이다. 그래도 오늘은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 푸근하다. 육 개월 만에 후배를 만나서 영화 한 편 보고 담소를 나눴다. 이 단순한 행위가 그리 대단할 건 없는데 따스한 사람과 함께 보내니 쓰린 마음 한구석도 모두 소강해지는 것 같다. 목청 가득히 웃을 준비를 하고 장난치는 나, 계절의 헛바람이 단단히 든 걸까? 그녀와 나 사이의 인연은 대학 선후배관계에서 이젠 똑같이 나이가 드는 친구 상태로 넘어가고 있다. 서로의 인생에서 커다란 기회를 제공하거나 삶에 대단한 영향을 주는 기폭제로 남은 것은 아니지만 존재 그 자체만으로 위안이 된다.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손금 본 사연, 끊긴 운명, 빗나간 사랑, 태어난 생명, 어떤 죽음과 평상심, 번잡함 속에서 스스로를 달래는 사람들의 위선, 내일을 준비하는 우리의 질긴 노력, 앞으로의 삶까지 밥을 먹은 것이었는지 이야기가 고팠던 것인지 한 시간 반을 입 안에다 쑥떡한 재미로 털어 보냈다. 사람이 끝도 없이 미울 때가 있어도 가슴을 터놓을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문득 감사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그는 묻힌 세월을 이해할 수 없고, 나 역시 그의 삶을 잘 알지 못하겠지만, Whatever.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정식으로 믿는 신은 없다. 독실한 신자가 되기에는 주위에서 믿는 자들의 태도가 거짓되어 보여 한 장소에 갇힌 채 기도를 드린다는 것이 별로 내키지 않는다. 어렸을 때 자주 신의 서랍에 갇힌 모습을 꿈꾼 적이 있었다. 한약방 통처럼 생긴 서랍에 수백 가지의 기회숫자를 넣어놓고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기다란 손가락으로 운명을 집어내는 그림자를 보면서 "제발 장난치지 말아 달라"라고 부탁했었다. 신은 듣지 않았다. 절박한 외침에 관심도 없었다. 그건 그냥 꿈일 뿐이겠지? 끝없이 펼쳐진 서랍은 시야에서 한참은 멀어질 정도로 길게 흘러갔는데, 그 운명의 서랍 108번째쯤 되는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 Million Dollar Baby>는 많이 어두웠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전작, <미스틱 리버 Mystic River>의 불편함이 그대로 전해져 올 만큼 아주 진하게.


서른한 살에 권투를 시작한 웨이트리스의 시원한 펀치에 호쾌하게 웃었고 고약한 성미와 말투를 가진 늙은 트레이너와 관장의 엉뚱한 입담에 킬킬댔지만 피나는 노력과 함성으로 얻은 주먹이 잠잠해지고 아름다운 세상에서 뛰어다니던 다리가 무너진 날, 나는 맹장에서 감각의 추를 뽑아버렸다. 사방에서 흐느낌이 가득했는데 울지도 못했다. 뱃속을 갈고리로 긁어내듯이 배만 아팠다. 강물처럼 흐르는 삶에서 정리되지 않은 과거의 기억과 묻어둔 행복을 지우는 건 힘겨운 고통이다. 우연한 듯하나 이미 배치된 만남, 가벼운 대화 속에 깔린 암시적인 전개, 수많은 모티브를 깔아놓고 그들은 이렇게 될 것이라는 예측 가능한 쓴웃음은 침묵만이 감도는 극장 안에서 공허하게 맴돌았다.


"항상 너를 보호해라. 펀치를 날리기 위해선 먼저 한 발을 뒤로 빼야 한다. 복싱은 모든 게 거꾸로다. 오른발이 나가려면 왼쪽 발가락이 먼저 움직여야 하고, 왼발이 나가려면 오른쪽 발가락이 움직여야 한다. 터프하다고 해서 다가 아니다. 상대의 움직임을 보아가면서 너의 움직임을 결정해야 한다."


스포츠에 문외한인 데다가 치고받는 복싱에는 더욱 관심이 없어서 대사의 많은 부분은 잊어버렸다. 권투만큼 징그럽고 투전(投錢)의 성격이 강한 게 없다고 생각했었기에 빨리 잊고 싶었다. 그런데 계속 생각에 머무르게 하는 문구가 있다. <승자는 패자가 하지 않으려는 일을 기꺼이 할 뿐이다. Winners are simply willing to do what losers won’t.> 매기 피츠제랄드가 샌드백에다 펀치 연습할 때 체육관 벽에 붙어있었는데 시야에 거슬리더니 결국 매미소리다. 기본적으로 인생엔 승패가 없다 생각하지만, ‘기회’란 단어를 대입해 보면 이해가 된다.


109번째 타이틀 매치에서 시력을 상실했던 스크랩이 사건에 휘말리게 된 것을 자책하던 프랭키를 다독이려고 했는지, 몸이 마비된 매기가 침대에서 했는지, 아니면 둘 다 이런 비슷한 말을 번갈아 던졌던 것인지 잘 모르겠는데 매기의 말이라 생각하고 적어본다.


"KO패를 거듭하며 승리한 싸움이나 마찬가지였던 자리에서 내가 쓰러진 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었다. 인생에서 기회를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식당 일을 하며 거리 청소를 하며 하루의 비참함에 허덕이는 사람들은 인생의 마지막 도달해서는 자신에겐 어떤 기회도 없었다고 울부짖는다. 아무런 꿈이 없던 사람에게 당신은 기회를 주었고 나는 이 넓고 아름다운 세상에서 숨 쉬어보았다. 내가 나아가지 못한 세상에서 당신이 지어준 이름으로 불려지면서, 나를 부르는 환호소리를 들었고 뜻도 몰랐었지만 나의 아버지가 부르는 것처럼 따뜻하고 행복했었다. 고맙다."


그 말을 들으며 프랭키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저 밀려오는 착잡함. 끓어오르는 후회.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 없는 것은 자명한 것이기에, 누구의 죽음 앞에서 면죄부를 주고받는 신이 될 수 없는 우리는 그저 끝없이 후회하고 그날을 잊지 못하도록 눈물 흘리는 나약한 인간일 뿐인가.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손쉬운 기회가 하나도 주어지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모든 가능성을 놓아버린 채 더 이상 찾지 않는 사람도, 기회를 잡아도 무너지기만 하는 이도, 매일같이 기회가 놓여있어서 손에 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행복의 척도와 네 고통의 수준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짓이다. 우리는 세월의 흐름이 보이지 않는 강 위에서 임자 없는 나룻배를 타고 떠돈다. 뜻도 모를 단어 속에 가족도 버려버린 혈육의 정을 불어넣고는 정겨운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다. 혼자 살기에는 외롭게 굽은 등을 서로 괜찮다 두드려가며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기대면서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다.


속을 나눈다 해도 함께 하지 못하는 사람에겐 의미 없는 이야기일지 모른다. 매일같이 추락하는 자와 그저 땅을 밟고 살아가는 자, 모든 행복을 누리면서 화려한 삶을 사는 자의 격차는 머나멀 것 같지만 죽을 때만큼은 한 끗 차이도 되지 않음을 자주 목격하곤 한다. 모든 것을 다 놓고 싶어도 삶에 대한 기나긴 애정은 어디에서 샘솟는 것일까? 부유물도 없이 떠오르는 감정이 가끔은 덧없도록 슬퍼지기만 한다. 요새 들어 다시 마음을 다잡고 있다. 그대가 하지 못한 것을 네가 아닌 내가 됐을 때는 간단히 해내고 말 테니 힘내 보자며 조용히 속삭인다. 삶은 긴히 얽혀있는 밀랍의 형상이 아니던가. 아, 정말로 봄이 오긴 왔는가.


2005. 3. 12. SATURDAY



현재의 나를 만든 것에는 고통스럽게 토하던 과거의 외침과 피와 땀과 눈물이 점철된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어떤 사람도 부럽지 않다. 나는 누구나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을 택했던 당시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나를 바닥에 내치고 어둠의 구렁텅이에서 고뇌에 휩싸이게 했던 것들까지도 함께 할 수 있다면 오랫동안 잠을 잘 수 없게 만들던 것들은 사라져 있을 것이다.

모쿠슈라 Mo Chuisle

내 맥박

내 혈맥

내 심장

내 사랑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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