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né Daumal, in Teaching Photography by Philip Perkis》
각자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먼지를 걸러낸 터에서 움직이는 사람들. 소통을 행하는 매체의 산물들은 몇 겹일지 모르는 다중의 창을 열고 닫기를 반복하면서 왜곡과 굴절에 길들여진다. 셀지에 반사되는 공기 방울이 화려한 프리즘의 분산을 닮은 것처럼 우리는 비슷한 것에서 의미를 찾고 삶의 동기를 부여한다. 나는 현 세계가 열린 공간이거나 닫힌 공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삶의 기운은 무정형의 가능성을 기반으로 형태를 전환하는 전구체이다.
다큐멘터리와 순수 예술의 기점에서 하나의 시각을 거부하고 양방향의 통행을 주장하는 필립 퍼키스(Philip Perkis). 사진이 르네상스의 미술에 근원을 두고 있다는 그의 설정에 공감한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생각과 행동을 쌓아가는 작업들이 하나의 스타일을 완성할 것이라고 믿는다. 외부적인 고찰이 내부의 정적인 기운을 활동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거리의 풍경들은 비상한 느낌을 감지한 만남과 헤어짐의 윤회를 거듭한다. 감정에 충실하며 건조하지 않게 살고 싶다.
2006. 1. 8. SUNDAY
한탕의 대박과 한 편의 걸작을 바라는 사람들이 많지만, 평생의 시간을 공들여 꾸준하고 성실한 다작(多作)을 해낼 수 있는 집념과 실행만이 타인과 구별되는 사고의 깊이를 가져오고 행동의 흔적이 담긴 개성적인 스타일을 보여줄 수 있다. 가볍게 천재성을 발휘하여 만들어낼 수 있는 거장의 일필휘지는 마음속 기대와 달리, 학습된 역사적 신화와 달리 존재하지 않는다. 길어야 백 년에 지나지 않는 동시대 타인들의 찬사가 무슨 의미이던가. 스스로를 만족시킬 수 없는 갈증은 목을 따갑게 짓누르고 눈을 아프게 압박한다. 몸을 타고 분출하는 감정은 타인의 몫이 아닌, 온전히 자신이 감당해야 할 현재의 살아있는 증거이다. 스타일을 찾아가다 보면 개인적인 기호와 생각, 잃어버린 느낌을 찾아가는 탐구의 여정과 같음을 발견한다. 자신과 어울리는 고유한 스타일을 분출하기까지 대상에 대한 표현의 방식을 스스로 어디까지 탐험할 수 있을까 견뎌볼 필요가 있다. 고통스럽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