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롤> 그 겨울의 흔적
케이트 블란쳇의 차가운 금발과 허스키한 목소리, 긴 모피코트가 생각나는 영화 <캐롤 CAROL>, 뜨겁게 캐롤을 불러야 될 겨울에 만난 두 여자의 사랑이 격정적이기보다는 느릿하고 지루하게 느껴졌던 건 요염하고 우아한 자태의 캐롤과 나긋나긋하고 수동적인 테레즈의 궁합이 낯설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보는 사랑의 형태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테레즈와 그 어떤 사랑으로 인해 사회적인 배척을 경험해 본 캐롤의 현실 탈출은 후대 추종자들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사회에서 묻히는 진실이 될지 모르겠다. 현실은 언제나 예측과는 전혀 다른 만남을 준비한다. 그 만남이 우리의 삶에 어떤 자국을 남길지는 알 수 없다. 이미 종결된 누군가의 이야기도 삶의 유속을 따라 계속 흘러가는 것처럼 기억은 순간이 남긴 흔적에 나직하게 대답한다. 캐롤...
2016. 3. 22. TUESDAY
리플리 시리즈(The Talented Mr. Ripley)의 원작자인 퍼트리샤 하이스미스(Patricia Highsmith)의 소설 《소금의 값 The Price of Salt 1952》을 각색한 영화 <캐롤>은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에 놓여있던 사람들이 서로에게 반응하며 만들어가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관한 개별적이고 사회적인 시선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으면서 교과서에 기술된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이 전부일 때가 많다. 그러나 이성 간의 사랑만이 아니라 동성 간의 사랑, 양성 간의 사랑, 무성애(無性愛), 범성애(汎性愛), 로맨틱한 사랑에서 플라토닉한 사랑까지 사랑의 형태와 끌림은 개인적인 성향과 가치관만이 아니라, 정체성과 특정 기호에 따라 각자가 느끼는 매력적인 대상을 향해 다양하게 반응하고 변화한다. 작가들과 감독들의 내적 고백인 사랑에 관한 표현은 흥미롭다. 사랑은 단순히 일생의 한 구절을 장식할 강렬한 양념으로 치부하기엔 평생 군침을 돌게 하고 배고픔에 허덕이게 만드는 뜨거운 감자임엔 틀림없다. 사랑이었던 아니었든 간에, 인간이라는 생명의 탄생은 원초적이고도 배반적인 생의 몸짓에서 시작되었으므로 삶의 본질에 대해 묻다 보면 사랑이라는 관문을 거쳐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