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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KEBACK MOUTAIN, I SWEAR

<브로크백 마운틴> 그리운 사랑의 느낌들

by CHRIS
Le secret de Brokeback Mountain, 2005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 그곳은 우리가 자주 가곤 했던 산이었어요.”

“난 또 술집이거나 고향 어딘가 했죠. 항상 자기가 죽으면 그곳에 묻어달랬어요. 제일 좋아했다고..”


척추뼈가 부러질까 발음을 할 때조차 조심스러운 <브로크백 마운틴>. 이안(李安) 감독은 <브로크백 마운틴>을 아버지에게 바치는 영화라고 했다. 불투명한 자신의 미래를 의심스럽게 바라보던 잘난 아버지에게 수줍게 내민 사랑의 증표 속에는 여전한 그의 장난기가 화면 곳곳에 배어있었다. 십 년 전의 나는 <결혼피로연 The Wedding Banquet, 喜宴>을 비디오로 빌려서 네다섯 번을 틀었지만 끝까지 보지 못한 채 항상 지글대는 화면의 마지막에 시선을 고정시키곤 했다. 후덥지근한 결혼식의 예의가 목덜미를 짓누르자 쏟아지는 잠 속에서 이해할 수 없는 가족의 끈에 절절 매인 세 남녀가 이상하다고 지껄였다. 지금도 그렇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장대한 경관에 짓눌린 오래된 사랑의 고백서임을 다시금 확인했다.


“맹세해. 당신을 사랑했다고. 그리고 영원히 사랑할 거라고.”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가 깊어지면 그들의 가치관을 들을 기회가 있다. 사는 이유, 무엇을 할 건지, 어떤 삶이 좋은지, 어떻게 살아왔고 현재는 왜 힘든지 등등. 대화가 길어질수록 사람들의 이야기가 같게 들린다. 살아온 모양새는 다른데 급할 때 터지는 소리는 “아!”의 변형된 신음이듯이 별다를 게 없는 고백과 자기애로 점철된 애틋한 흩어짐 같다. 영화는 슬프지 않았다. 옆 좌석에 앉은 사람들의 흐느낌이 의문스럽게 들릴 정도로 담담했다. 모든 것이 허무해질 듯한 공허가 밀려왔다.


‘왜 이 영화를 보러 왔던 것일까?’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일주일 전에 만난 친구의 핸드폰 줄에는 브로크백 마운틴의 그림이 달랑거렸다. 그녀는 자주 이 영화에 대해 물었다.


“브로크백 마운틴 봤어?”

“아니. 거기에 뭐 있어?”


<브로크백 마운틴>에는 묻어두고 싶었던 사랑이 있었다. 메아리쳐서 내가 내는 소리가 아니었던 것처럼 착시를 불러일으키게 하는 그리운 사랑의 느낌들. 복잡한 인생의 의무와 벗어나기 힘겨운 가족의 굴레까지도.


2006. 4. 23. SUNDAY



매일의 뉴스 속에서 건져지는 돌발적인 생활의 이야기들이나 우연히 책이나 영화에서 발견한 익숙한 사람의 이름은 급속도로 과거의 기억을 끌고 온다. 우연한 만남과 열정적인 다가감, 반복되는 오해와 단호한 거절, 불현듯 찾아오는 감정에 당황하던 순간이 겹쳐진다. 누구는 순탄하게 흘러가서 삶이 지루할 것이고, 누구는 바쁘게 조여 오는 긴장이 힘들어서 삶이 버거울 것이다. 자신에게만 엄격하게 느껴지는 삶의 태도들은 일생에서 풀리지 않은 숙제로 다가온다. 멀찍하게 밖에서 바라보면 쉽게 해결될 것 같이 보이는 삼인칭이나 전지적 작가 시점은 안타깝게도 뻣뻣한 고개의 주어를 안고 있는 인간 자신에겐 주어지지 않은 혜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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